아카데미상 웃겨? 좀비가 링컨 잡는 한국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3.03.16 10: 35

[OSEN=손남원의 연예산책] 국내 극장가 흥행에선 재미가 우선이다. 철저히 관객 본위로 만든 영화가 박스오피스에서 강세를 보인다. 꽤 오래된 전통이다. 그래서 유럽의 칸,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는 물론이고 상업성 짙은 미국 할리우드의 아카데미 수상작들도 국내 관객들에게는 외면을 받기 일쑤다. 그래서 평론가와 감독들, 자기들만의 리그를 위한 고급(?) 영화들은 이 땅에 설 자리가 없다.
올 봄, 미국인들의 자존심 오스카 아저씨에게 한국 극장가는 무덤이다. 아카데미 최초 여성감독 수상에 빛나는 캐서린 비글로우와 흥행+재미+작품성을 고루 갖춘 할리우드의 전설 스티븐 스필버그 가 국내 박스오피스에서는 망신을 톡톡히 당하고 있다. 지난해 부터 미국 내 각종 영화관련 상들을 휩쓸고 올해 아카데미 주요부문을 석권한 수작들이다.
하지만 '아카데미 딱지'와 비글로우, 스필버그 상표가 우리에게 뭐 그리 중요할까. 어찌보면 철저히 미국적인 이 영화들을 한국 관객들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대신에 뭘 보냐고? '7번방의 선물' '베를린' '신세계'로 이어지는 한국영화 돌풍이 잦아드는 시점에서 관객들은 아카데미 허울을 걷고 좀비물 '웜바디스'를 택했다. '연가시'와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맛깔지게 섞인 짬뽕같은 영화다. 이래서 한국의 박스오피스는 늘 예측불허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웜 바디스'는 지난 15일 하루 동안 8만 340명을 동원하며 누적관객수 16만 768명으로 개봉후 이틀연속박스오피스 1위를 달렸다. 영화 관계자들이 깜짝 놀랄 이변이다. 당할 자 없었던 '신세계'-'7번방'의 1,2위 체제를 깨면서 올해들어 처음으로 외화가 박스오피스 1위를 자치했다. 결국 한국영화 전성시대에 일침을 가한 복병은 아카데미 아닌 할리우드에서도 무시하는 좀비였다.
'웜 바디스'는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던 좀비 R(니콜라스 홀트 분)이 어느 날 첫눈에 반한 여인 줄리(테레사 팔머 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점차 사람이 돼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아름답고 생기 있는 줄리로 인해 죽어있던 그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하고 다른 좀비들의 공격으로부터 줄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좀비 호러물 장르지만 '웜바디스'는 전혀 심각하지 않다. 오히려 달달한 로맨스 코미디를 보는 듯 '쿨'한 느낌이 이 영화의 최대 강점이다. 또 운명적 로맨스를 강조하려고 전개를 질질 끌거나 관객 눈물을 짜내려 억지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다. '웜바디스'의 사랑에 비하면 '로미오와 줄리엣'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고 '트와일라잇'조차 세대차이를 절감하게 될 지경이다.
단순히 사랑 이야기만 갖고는 관객 폭풍 흡입에 모자란다. '7번방'의 그것처럼 요즘 관객에게 웃기는 코미디란 필수항목이다. 연기파 존 말코비치를 절뚝거리는 좀비로 변신시킨 '웜바디스'는 영화내내 빵빵 터지는 폭소탄을 터뜨린다. 이러니 요즘처럼 경기 안좋은 시기에 심각하기 이를데 없는 '제로 다크 시티'와 '링컨'이 뒷전으로 밀릴수 밖에.
주인공 좀비R 역을 맡은 니콜라스 홀트를 기억하실런지. '어바웃 어 보이'에서 휴 그랜트의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했던 그 왕따 소년 마카스다. 출중한 꽃미남 배우로 성장한 그는 지금 영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청춘스타란다.
그렇다해도 상대는 바로 '링컨' 다니엘 데이 루이스다. 아카데미에서 음향편집 부문 수상 정도로 만족해야했던 '제로 다크 시티'와 달리 '링컨'은 남우주연상과 미술상을 가져갔다. 메소드 연기의 달인으로 몇 년에 겨우 작품 하나 찍는 루이스답게 이번에도 링컨을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극찬을 받았다. 미국에서는 흥행과 평단의 호평, 두 마리 토끼를 잡았고 '역시 스필버그'란 박수갈채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웜바디스'와 같은 날 개봉한 '링컨'은 이날 1만2037명을 동원, 박스오피스 6위에 올랐다. 누적 관객은 2만6000명. '웜바디스'의 1/5 수준이다. 한 주 앞서 막을 올린 '제로 다크 시티'는 아예 흥행 10위 안에서 사라졌다.
아카데미 오스카 약발이 전혀 안먹히는 한국 극장가. 호환, 전쟁보다 무섭다는 할리우드의 물량 공세도 한국 관객들 앞에서는 찍 소리를 못하는 게 통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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