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 때 그렇게 클린했는데, 실전에서 (클린이)안 나오면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여왕의 클래스는 불변(不變)이었다. 2년에 가까운 공백기에도 불구하고 깨끗하게 복귀전을 소화하며 4년 만의 월드챔피언 자리를 탈환한 김연아(23)는 자신이 왜 '피겨여왕'이라 불리는지 당당히 증명해냈다. 쇼트프로그램 69.97점, 프리스케이팅 148.34점을 더해 총점 218.31점, 종전 아사다 마오(205.45점)의 기록을 뛰어넘는 올 시즌 여자 싱글 최고점이자 역대 두 번째 최고점으로 차지한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이었다.
여왕의 복귀전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무대였다. '뱀파이어의 키스'와 '레 미제라블'로 세계를 압도한 김연아를, 갈라쇼 직전인 18일(이하 한국시간) 만났다. 오랜만에 돌아온 메이저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쥔 소감과 롱에지 판정에 대한 이야기, 곧 다가올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쇼트프로그램의 롱에지 판정, 그리고 완벽했던 프리스케이팅
"전에도 한 번 그런 적이 있었잖아요.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어요. 기록경기가 아니기 때문에, 심판마다 개개인의 차이가 있는 법이니까요. 일단 나온 점수를 바꿀 수는 없잖아요".
김연아는 그저 웃었다. 전날 쇼트프로그램에서 있었던 롱에지 판정에 관련, 어땠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2008년 11월 그랑프리 3차 대회 이후 5년 만에 롱에지 판정을 받았으니 순간 당황할 만도 했다. 하지만 김연아는 '신경쓰지 않는다'고 쿨하게 답했다. '어찌됐든 쇼트프로그램에서 1위를 하지 않았냐'고 되묻기도 했다. 롱에지 판정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야 없지만, 일부러 더 신경쓰면서 '오버'하다가는 실수할 수 있으니까 그냥 무시하기로 결정했다는 그다운 답변이었다.
김연아는 롱에지 판정에 대한 '잠정적 불만'을 말보다 행동으로 먼저 보여줬다. 흠잡을 데 없는 클린 연기로 프리스케이팅을 완벽하게 마무리한 것. "마지막 점프가 끝났을 때 아, 클린했구나... 그 생각이 딱 들죠. 그리고 끝났구나, 싶기도 했고." 그렇게 답한 김연아는 "연습 때 그렇게 클린했는데 실전에서 안 나오면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며 짖궂은 미소를 보였다. 수많은 연습에서 클린해놓고 단 한 번의 기회에서 실수해버리면 억울하지 않겠냐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김연아기에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 "연습을 실전처럼? 아니, 실전을 연습처럼!"
사실 그의 우승은 이번 대회 공식연습서부터 예상할 수 있었다. 좀처럼 빈틈을 보여주지 않은 김연아는 한층 더 좋아진 점프의 질을 선보이며 대부분의 연습을 클린으로 끝냈다. '뱀파이어의 키스'도, '레 미제라블'도 클린의 열전이었다. 실전을 방불케하는 진지한 태도로, 집중해서 치른 연습은 분명 실전의 긴장감을 녹여주는데 큰 몫을 했다.
자연히 연습을 실전처럼 했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답은 간단했다. 연습을 실전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실전을 연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것. 복귀 후 부담을 털고, 자신에 대한 기대를 낮춰 이번 대회에 도전하면서 짐을 내려놓은 김연아의 '가벼움'이 느껴졌다. 그 가벼움이 아니었다면 메이저 국제대회 복귀전이라는 큰 무대에서 이만큼의 성적을 올리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많은 선수들이 부딪히는 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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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캐나다)=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