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 난투사](12)1999년, 몰락하는 쌍방울과 김성근 감독의 심판 폭행 진실게임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3.03.22 12: 04

한국야구위원회(KBO)는 1998년 12월 24일 쌍방울 레이더스 구단이 삼성 라이온즈에 현금 20억 원을 받고 김기태와 김현욱을 트레이드시키는 것을 승인했다. ‘쌍방울이 1999시즌 66경기에서 승률 3할을 채우지 못할 경우 이사회를 소집해 조치를 취한다.’는 단서를 달았던 조건부 승인이었다. 
모기업의 부도로 인해 파탄나기 직전이었던 당시 쌍방울 구단은 선수를 팔아서 연명을 해야 할 만큼 절박한 처지였다.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어떻게 잡을 수 있나. 시한부 인생과 같은 쌍방울. 몰락, 다른 말로 해체가 눈에 뻔히 보이는 야구단 감독의 심사를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이 같은 속사정을 깔아두고 1999년 6월 18일 전주구장에서 두산 베어스와 쌍방울의 연속경기가 열렸다. 승률 3할을 내건 경기결과 쌍방울은 1차전에서 0-3패, 2차전에서 연장 12회 4-4 비김으로 KBO와 약속한 전반기(66경기 시점) 3할 승률(14승 4무 45패, 승률 .237) 달성에 실패했다. 남은 3게임에서 전승을 거두더라도 승률이 2할 7푼 4리에 머물게 된 것이다. 쌍방울의 목숨은 그 때부터 KBO의 손에 달렸다.  

 
심판 오심과 김성근 감독 폭행시비의 전말
연속경기 1차전에서 두산이 2-0으로 앞선 가운데 7회 말 쌍방울이 2사 3루의 득점 기회를 잡았다. 장재중 타석, 볼카운트 2-2에서 두산 선발투수 이경필이 투구를 하려는 순간, 윤재국이 찰나의 틈을 비집고 홈으로 파고들었고, 이경필이 황급하게 던진 공을 받은 두산 포수 홍성흔이 태그했다. 이창원 주심은 아웃을 선언했다. 
김성근 감독이 득달같이 덕 아웃에서 달려 나와 주심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어필의 요지는 “주자의 세이프 여부를 떠나 이경필이 어깨를 움찔해 투수보크가 아니냐, 게다가 포수가 홈플레이트 앞쪽으로 나와서 포구를 했기 때문에 타격방해”라는 것이다. 
이창원 주심은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말이 곱게 오갈 리는 만무했다. “심판에게 반말 마세요.” “뭐라고, 이 자식아.” “칠 테면 쳐봐.” 따위의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김성근 감독이 다시 1루 쪽을 바라보면서 허운 1루심을 향해 큰 소리로 욕설을 섞어 “1루심은 뭐하느냐”고 소리쳤다. 그러곤 경기를 더 할 수 없다며 8회 초 수비를 나가려던 선수들의 출장을 가로막고 덕 아웃 농성에 들어갔다.
심판진은 의논 끝에 “5분이 지나면 감독을 퇴장시킬 수밖에 없다”며 1차 통보를 했다. 잠시 후 허운 1루심이 다시 덕 아웃으로 가 김성근 감독한테 “경기 하시죠.”라며 선수단 출장을 종용했지만 김성근 감독은 요지부동. 직후 이창원 주심이 감독 퇴장을 선언했다. 허운 1루심이 덕 아웃으로 가 계속 버티고 있던 김성근 감독한테 덕 아웃을 나가달라고 요청했다. 
그 순간 이홍범 코치가 달려들어 허운 심판의 겨드랑이를 꽉 쥐고 옆구리를 꼬집으며 선수대기실로 끌고 가려고 시도했다. 박상렬 코치는 허리춤을 잡고 여러 차례 흔들어댔다. 허운 1루심이 두 코치에게 퇴장을 선언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김성근 감독이 나서서  “왜 코치를 퇴장시키느냐”며 욕설과 함께 머리와 어깨로 허운 심판을 들이받았다. (KBO에 접수된 사건보고서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것. 바로 이 대목에서 양쪽 당사자의 진술이 엇갈린다)
김성근 감독은 사태 후 기록실 앞으로 가 “제소하겠다.”고 통고했다. 하지만 심판진은 ‘경기규칙 4.19조항(제소경기; 감독은 심판의 재정이 야구규칙에 위배 되었다고 할 때 심의를 청구한다. 심판원의 판정에 대해서는 어떤 제소도 허용되지 않는다)을 들어 “제소사항이 아니다.”고 묵살했다.
경기는 23분간 중단됐다가 이종도 코치가 감독대행으로 나서 속행됐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황석중 경기운영위원(현 대한야구협회 심판이사)은 “김성근 감독이 머리로 허운 구심을 들이받는 것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가슴으로 밀치는 행위는 분명히 봤고 이는 상해에 해당하는 충격을 주는 행위라고 판단했다.”고 KBO 상벌위원회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KBO는 사건 사흘 뒤인 6월 21일에 상벌위원회를 열고 ‘김성근 감독이 심판판정에 항의하다 퇴장 당했으며 퇴장 선고 이후에도 경기장을 떠나지 않고 머리와 어깨로 허운 심판원의 가슴과 갈비뼈 부근을 거세게 들이받아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혔다’며 대회요강과 벌칙내규 1항(판정 불복 퇴장)과 6항(폭행)을 적용, 김성근 감독에게 12게임 출장정지와 제재금 200만 원의 중징계를 내렸다. 
아울러 이홍범 코치는 출장정지 5게임, 제재금 50만 원, 박상렬 코치는 제재금 50만 원의 징계를 당했다. 쌍방울 구단은 이례적으로 재심을 요청했다.
김성근 감독은 21일 징계 결과를 보고 기자회견을 자청, “경기운영위원이나 심판이 무슨 필요가 있나. KBO가 정확한 원인 분석으로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앞으로도 이 같은 일이 계속 반복될 것이다.”며 강한 어조로 KBO 성토했다.  
김성근 감독은 “최근 각 팀 선수단과 심판진의 잇단 충돌은 심판의 매끄럽지 못한 경기운영이 직접적인 원인이고 KBO가 근본적인 대책을 못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18일 경기서 머리로 들이 받기는커녕 어떤 폭력도 행사하지 않았다. 서로 가슴을 맞대고 밀었을 뿐이고 심지어 단 한마디의 욕설조차 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그에 덧붙여  “그동안 누적된 감정이 섞인 조치다. 위장보고도 문제지만 오심을 한 심판원에 대해 징계를 하지 않은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KBO는 6월 23일 상벌위원회를 재소집, 사건 당사자인 허운 심판과 김성근 감독을 출석시킨 가운데 각각 의견을 청취한 뒤 “당시 심판의 판정은 정확했으며 김 감독은 퇴장 조치 이후에 운동장에 다시 들어와 심판과 몸싸움을 펼쳤기 때문에 처벌을 내렸다.”며 애초의 징계대로 원안을 확정했다. 쟁점이었던 폭행 사실과 관련, 김성근 감독은 강하게 부인했지만 허운 심판은 진단서를 제출하고 “김 감독이 달려 나오면서 머리와 어깨로 옆구리를 들이 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 감독의 폭행 장면을 목격한 증인이나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채 상벌위원회를 진행, 논란을 빚었다.
김성근 감독은 1997년에 쌍방울 구단을 맡아 악착같이 팀을 지휘했으나 힘에 부쳤다. 구단이 선수를 팔아먹는 데야 별도리가 없었다.
김성근 감독은 2011년에 펴낸 자서전 에서 이런 주장을 했다.
‘룰이 정확해야 한다. 그러면 둘 다 인정받을 수 있다. 이긴 사람, 진 사람 다 똑같이 인정할 수 있다. 나는 야구 말고 세상일은 잘 모르니까 세상일은 빼버려도 스포츠에서는 반드시 룰이 지켜져야 한다고 본다. 그게 기본이 돼야지, 납득할 수 없는 결과를 그냥 덮고 넘어가서는 절대 안 된다.’ (같은 책 177쪽에서 인용)
 
✍사족(蛇足)
그 사건이 일어난 후 당시 최영언 KBO 사무총장이 김성근 감독에 대해 ‘악질’, ‘저질’, ‘지능적’ 등의 인신 공격성 발언을 해 쌍방울 구단이 KBO에 공식 항의서를 내는 등 ‘실언 파동’이 일었다.
최영언 총장은 6월 23일 김성근 감독에 대한 징계 재심이 끝난 뒤 기자들에게 “지난 18일 전주 두산전에서 경기지연으로 퇴장 당한 김 감독이 다시 운동장에 나와 심판을 폭행한 것은 악질적이고 저질적인 행위”라면서 “김 감독이 상벌위원회에 출석,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자신에게만 유리한 쪽으로 말하는 것을 보고 지능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발언했다.
그의 실언에 대해 당사자는 물론 쌍방울 구단도 발끈, ‘우리는 최영언 총장의 발언에 대해 심히 유감을 표한다. 프런트, 선수단뿐만 아니라 전북도민과 쌍방울 팬까지 실망을 금치 못했다. 최 총장의 발언은 어려움 속에서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우리 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앞으로 언행에 신중을 기해 달라.’는 취지로 항의 공문을 제출했다.
 
최영언 총장은 “당시 김성근 감독과 김응룡, 이희수 감독의 징계건을 비교하면서 본의 아니게 실언을 했다”며 결국 6월 28일에 쌍방울 구단을 찾아가 공식 사과했다.
쌍방울 구단은 올스타전을 마친 7월 14일 밤  김성근 감독을 ‘성적 부진에 대한 문책과 후반기 구단 분위기 쇄신’을 이유로 전격 경질했다. 그 과정에서 쌍방울 구단 측은 ‘김성근 감독이 구단매각을 부추기기 위해 KBO와 약속한 전반기 3할 승률을 고의적으로 채우지 않았다’며 ‘태업설’을 외부에 흘리기도 했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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