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착각이 빚은 멸종규칙 ‘역주(逆走)’의 부활 (1)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3.04.29 13: 33

그저 그림책이나 만화책 또는 과학서적을 통해서나 이야기를 접할 수 있고,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선 박물관을 부러 찾아야만 실체를 어렴풋이 들여다 볼 수 있었던 멸종된 동물인 공룡의 부활을 주제로 다룬 영화 ‘쥬라기 공원’.
1993년 이 영화가 개봉되자마자 사람들은 마치 현실에서 공룡을 만난 듯, 입 소문에 끌려 흥분된 마음을 안고 극장 안으로 모여들었다. 보호 철책을 부수고 현실 안으로 들어와 날뛰는 거대한 공룡들 앞에서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가상의 설정이 다소 공포스럽기는 했지만, 당시 쥬라기 공원은 우리들에게 약 2시간에 걸쳐 마치 공룡이 살던과거 그 어느 시점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회귀한 듯한 묘한 기분을 만끽하게 해주었었다.
이제는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과거시대로의 여행은 이처럼 어디까지나 상상 속의 이야기로만 가능한 것이라 알고 있었는데, 야구에서 지금은 사라져 없다고 믿었던 멸종규칙 ‘역주(逆走)’가 부활했다는 단신은 참으로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것도 야구의 최상위리그라 자타가 인정하는 메이저리그에서라니 더더욱.
상황을 우선 정확히 알아야 이해도 가능한 법. 내용은 이랬다. 지난 4월 19일 밀워키 브루어스와 시카고 컵스 전에서 밀워키의 도미니카출신 내야수 ‘진 세구라(Jean Segura)’는 5-4로 리드하던 8회 말 선두타자로 나와 내야안타를 치고 당당히 1루에 출루했다. 이후 도루에 성공하며 2루에 안착했고 다음 타자의 볼넷으로 상황은 무사 1, 2루.
사건은 지금부터다. 루상에 나가 있던 진 세구라를 비롯한 밀워키의 주자 2명은볼카운트 1B-2S 상황에서 더블 스틸을 시도. 그러나 이를 눈치챈 투수의 3루 견제에 2루주자(진 세구라)가 걸렸고, 시카고 3루수는 도망가는 2루주자를 2루쪽으로 몰아가며 추격. 다급해진 2루주자는 본래 있었던 2루로 황급히 엎어지며 루를 먼저 짚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2루에는 이미 1루주자도 도달해 루를 점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 루에 주자 2명(이 경우 점유권은 선행주자에게 있다). 3루수는 일단 2루주자와 1루주자를 번갈아 태그(점유권없는 1루주자가 아웃)하며 상황을 주시.
그런데 갑자기 점유권을 갖고 있어 아웃되지 않은 2루주자가 루를 버리고 1루쪽(밀워키 덕아웃 방향)으로 터덜터덜 걸어나갔다. 아마도 자신이 아웃된 것으로 착각한 모양. 등 뒤에서는 2루에 대한 점유권이 없는 1루주자에게 아웃선언이 내려지고 있었고,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었던지 시카고 유격수는 3루수의 공을 빼앗다시피해 1루 쪽으로 가고 있던 2루주자를 향해 달렸다.
이때 2루주자 역시 주루코치의 사인에 이상한 낌새를 느껴 비어있던 1루로 얼른 달려와 1루를 점령. 그러자 공을 들고 쫓던 유격수는 '닭 쫓던 강아지' 모양 태그 대신 타임을 요청했는데…. 이후 심판진은 2루주자 였던 진 세구라의 1루 점유권을 인정하고 1사 주자 1루 상황에서 경기를 재개시켰다.
그리고 2사 후, 1루로 기사회생 컴백한 2루주자 진 세구라는 다시 한번 2루로 한 이닝 2번째 도루를 감행, 이번에는 포수의 송구로 2루수에게 태그아웃되며이닝이 종료되는 황당한 상황을 끝으로 그 이닝은 마무리되었다.
정리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사법부의 판단 미스였다. 그러면 앞서 말한 일련의 상황에서 과연 어느 대목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당시 심판진이 원래 2루주자였던 진 세구라가 1루까지 역주했음에도 아웃으로 선언하지 않았던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첫째는 뒷 주자였던 1루주자가 이미 아웃된 관계로 2루주자의 비어있는 1루진루는 문제가 없는 것(정황은 맞다)으로 판단을 했던 것이고, 둘째는2루주자가 수비를 혼돈시키거나 우롱하기 위해 일부러 1루 쪽으로 걸어간 것(이때는 수비방해로 아웃이다)이 아니라 자신이 아웃된 것으로 상황을 착각해 벌인 것으로 플레이 의도를 정상참작(?)했던 것이다.
규칙 7.08 (i) 항에는 '주자가 정규로 루를 점령한 뒤, 수비를 혼란시키려고 하거나 경기를 희롱할 목적으로 역주하였을 경우, 즉시 그 주자에게는 아웃을 선고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지만, 이날 심판진은 의도가 지극히 순수한(?) 거꾸로 가고 있던 2루주자에게 이 규칙을 적용할 수는 없었다.
물론 위의 고려사항들은 틀린 판단이 아니다. 그러나 가지가 아닌 규칙의 보다 큰 줄기를 보았어야 했다.
야구규칙주자관련 7조 들머리 [원주]에는 다음과 같은 원문이 실려있다.
'주자가 루를 정규로 차지할 권리를 얻고 투수가 투구자세에 들어가면 주자는 앞서 차지했던 루로 되돌아갈 수 없다' 라고. 이는메이저리그 규칙서에도 똑같이 실려있는 내용이다.
이를 그대로 대입하면 2루주자 진 세구라는 처음 도루를 성공하고 볼넷으로 출루한 후속 타자를 상대로 투수가 투구자세에 돌입한 순간, 이전에 있었던 1루로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신분이었던 것이다. 이는 지금은 허용되지 않고 있는 역도루 금지 조항과도 일맥 상통한다.
따라서 2루주자가 2루를 버리고 1루쪽으로 떠난 순간, 규칙 위반이며 주루 포기로도 해석해 아웃을 선언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수비방해가 아니라 주자의 착각이라는 선수 의도를 배려하거나, 포스상황과 태그상황을 구분해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면 새로 시작된 플레이 이후, 주자에게 먼저 있었던 루로 되돌아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근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 부분은 내용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관계로 야구의 ‘역주(逆走)’ 얘기와 함께 한 이닝에 2번이나 도루를 시도한 부분에 대한 기록적인 해석을 곁들여 다음에 이어 다루기로 한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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