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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야구 난투사](19)인천구장 관중들의 위험한 ‘곡예’, 그물망 방화와 난간 추락사고



그 치열했던 1989년의 개관

한국프로야구사에서 1989년은 처음으로 단일 시즌제를 채택한 해이다. 그해는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에 맨 꼴찌였던 태평양 돌핀스가 김성근 감독을 영입, 돌풍을 일으킨 해이기도 했다.

태평양이 강세를 보이긴 했지만 1986~1988년에 한국시리즈를 3연패, ‘명가(名家)’를 이룬 해태 타이거즈가 선동렬을 앞장세워 전무후무한 한국시리즈 4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던 해였다. 선동렬은 1986년(24승)에 이어 다시 20승(21승)대 승리를 기록하며 두 번째로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그의 위력은 ‘나는 새도 떨어트릴’ 만했다.

정규리그에선 해태가 빙그레 이글스(승률 .604)에 이어 2위( .558)에 머물렀지만 태평양의 돌풍을 플레이오프에서 3연승으로 잠재우고 끝내 한국시리즈마저 제패했다.

태평양은 신인왕에 뽑혔던 박정현(19승)의 맹활약 덕분에 3위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꺾고 플레이오프에 나갔다. 하지만 한국시리즈 3연패 팀 해태를 넘어서기에는 모든 면에서 힘이 부쳤다.

태평양의 도약은 관중석을 뜨겁게 달궜다. 인천 관중들은 시즌 중 태평양이 패하면 툭하면 빈병과 깡통을 날려댔다. 인천 도원구장은 팀 성적에 비례해 기대치가 높아진 관중들의 소란이 끊이지 않았던 곳으로 악명이 높았다.  

온 힘을 다해 가을잔치에 나간 태평양, 그러나 관중들은 지나치게 흥분했다.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불길한 조짐이 드리웠다. 


10월 11일, 인천 관중 추락 불상사

태평양은 삼성과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10월 8일)에서 박정현이 연장 14회까지 완투, 김동기의 연장 끝내기 3점 홈런으로 기선을 잡았으나 2차전을 3-4로 내주었다. 10월 11일 인천구장에서 열린 최종 3차전에서 태평양은 박정현을 다시 내세웠다.

박정현은 선발 정명원에 이어 5회부터 9회 2사까지 단 1안타만 내주며 역투했으나 마지막 한 타자를 남겨둔 상황에서 허리를 부여잡으며 그대로 마운드에 주저앉았다. 허리 통증이 재발한 것이다. 박정현은 부축을 받으며 마운드에서 물러나 구급차를 타고 인천중앙병원으로 실려 갔다.

그 경기는 양상문이 마지막 주자로 나가 삼성 타선을 누르고 연장 10회 말 3번 곽권희의 끝내기 안타로 태평양이 2-1로 이겼다. 하지만 에이스 박정현의 부상으로 ‘상처 많은 영광’ 이었다.  

태평양으로선 믿는 도끼를 잃어버린 셈이었다. 이미 1차전에서  14이닝을 완투했던 박정현은 신인 최다승 달성을 위해 정규리그에서도 무리를 해왔던 터. 190cm가 넘는 큰 키가 더욱 부담스러운 잠수함투수였던 박정현은 3차전 4회 1사 1, 3루의 위기 상황에서 또 마운드에 올라 9회 투아웃까지 혼을 쏟았다. 그해 태평양의 가을은 박정현의 희생을 딛고 2승 1패로 삼성을 제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박정현 개인으론 그 후유증으로 선수수명 단축이라는 뼈아픈 결과를 낳게 된다. 

준플레이오프에서의 무리한 등판을 지켜본 기자들 사이에서 “원년(1982년) 박철순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새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정규리그에서 242⅔이닝(19승 2세이브 10패)을 소화했던 박정현은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무려 173개의 공을 던졌고, 3차전에서도 투구수가 75개나 됐다.

요즘 투수들 같으면 그런 투구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노릇일 것이다. 

그야 어쨌든, 준플레이오프 3차전 도중에 일어난 관중 사고는 당시 인천구장의 ‘안전 불감증’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3차전 경기를 관전하던 관중 한 명이 4회 경기 도중 본부석 맨 위쪽 난간에서 구장 밖으로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목격자의 말을 빌린 <일간스포츠> 기사에 따르면 ‘그 사람이 본부석 맨 위 난간에 앉아 있다가 4회에 갑자기 몸의 중심을 잃고 실족, 구장 밖 30여m 아래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위중한 상태였던 그는 앰뷸런스로 즉각 인천 길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처지를 받았다. 혈액검사 결과 알콜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다. 

당시 정진구 태평양 이사의 기억에 의하면 추락한 그는 심한 부상을 입었고 나중에 태평양 구단측이 배상을 해주었다고 한다. 

10월 17일, ‘투병전’, 그물방 방화…총체적 관중 난동
 
태평양은 플레이오프 1차전(10월 14일, 광주구장)에서 해태에 1-10으로 대패했다. 2차전(광주구장, 10월 15일) 역시 해태의 몫(1-0승).

2차전이 끝난 다음 태평양 김성근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원원근 타석 때 제4구째를 스트라이크로 판정하는 바람에 졌다”고 말해 판정시비를 불러일으켰다.

태평양은 0-1로 뒤져 있던 8회 1사 1, 2루의 기회를 맞아 좌타자 원원근이 타석에 나가 해태 조계현을 상대로 볼 3개를 얻어 냈는데, 4구째를 이일복 주심이 스트라이크로 선언하자 김성근 감독이 “공이 낮았다”며 강력히 항의했다. 볼카운트 3(볼)-1(스트라이크)가 된 가운데 5구째 원원근이 때린 타구가 3-6-3으로 이어지는 병살타가 돼 버리는 바람에 태평양의 아쉬움을 더욱 컸다.

김성근 감독의 그 같은 발언은 태평양 응원 관중들의 울분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다. 

경기 전부터 인천구장 3루 쪽 안전망에 2차전 심판판정에 항의(태평양에 불리한 스트라이크 판정)하는 플래카드가 나붙었다. 관중 난동을 예고한 셈이었다.

급기야 3-0으로 앞선 상황에서 해태가 선동렬을 내보내자 그라운드에 병과 오물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관중석 곳곳에서 태평양과 해태 응원관중들이 난투극을 벌였고, 빈병과 깡통이 여기저기에서 날아 다녔다. 부상자가 속출했다.

관중들이 던진 술병과 오물로 인해 해태 선수들은 헬맷을 쓰고 수비에 나섰다. 김응룡 해태 감독은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5회에는 “몰수패를 당하더라도 경기를 하지 못하겠다”며 선수들을 한 때 덕아웃으로 불러들이기도 했다. 

10월 18일치 <일간스포츠>는 ‘흥분이 지나쳐 난동으로 번져 관중들이 무수히 던진 빈병과 깡통 따위로 경기를 제대로 치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경기 도중 양측 응원 관중들이 서로 ‘치열한 투병전’을 전개했다‘고 보도했다. 일부 관중들은 안전 그물망에 불을 지르는 등 난동의 극치를 보였다.

관중 소요 속에 선동렬은 그 경기에서 6이닝 동안 22타자를 상대해 무려 11타자를 삼진으로 처리하는 등 엄청난 위력을 과시했다. 해태가 3-0으로 앞서 있던 3회 1사 1루에서 선발 이강철을 구원등판 했던 신동수가 4회 말 태평양 선두 타자 김윤환에게 우월 2루타 허용하자 김응룡 감독은 지체 없이 선동렬을 투입했다.

선동렬은 이광길을 1루 땅볼로 처리 한 다음, 다음 타자 김동기부터 8타자 연속 줄줄이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태평양으로선 속수무책이었다. 경기는 결국 해태가 5-1로 이겼다.

관중 소란이 위험 수위를 넘어서자 경기 후 야구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 경기를 지켜본 관계자들의 말을 정리해보자

강창호 태평양 돌핀스 단장=체육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해 차라리 구장 내에서 자유롭게 술을 마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순간의 인간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어떻게 막겠는가. 문제는 외부에서 술병을 들고 들어오는 것인데, 구장 내에서 종이컵 등에 주류를 판매하면 된다. 팬들도 8년이 흘렀으면 자제할 시점이 됐다.

김소식 MBC 해설위원=경기장 시설이 보다 좋았다면 인천구장 소란 같은 것은 없어질 수 있다고 본다. 주류 판매 문제도 음성거래가 공공연한 만큼 적극적으로 양성화 시켜야 한다.

박현식 KBO 심판위원장=17일 인천구장 관중소란은 태평양이 지면 반드시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던 일이다. 하지만 감독이 패인을 외부 여건으로 떠넘기는(김성근 감독의 심판판정 불만 노출을 일컬음) 발언을 함으로써 한층 고조됐다고 본다.

노주관 해태 타이거즈 전무=17일 인천의 경우는 플레이오프전이라 상황이 다르나 소란을 일으키는 구단에 몰수게임 패를 선언하는 강경조치 만이 해결책이다. 물론 완전 방지책은 아니지만.

이용일 KBO 사무총장= 술이 만취된 상태에서 야구를 관전하는 팬들도 반성해야겠지만 현재 야구장 시설이 더 큰 문제다. 운동장에 들어가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이는 현실에서 팬들만 나무랄 수가 없는 형편이다. 미국이나 일본 같이 지정석에 서 편안하게 야구를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처럼 복도에 앉아서 구경하면 자제력을 잃고 거칠게 행동하게 될 소지가 많다.

7년 뒤, 인천구장 관중들은 달라졌는가…'곡예사'의 등장도 
 
1996년 4월 13일 인천구장. 현대 유니콘스 개막전이 열렸던 그날 ‘아찔한 관중 곡예’가 등장했다.  한 관중(사진)이 경기 막판에 내야 그물망을 타고 여 보란 듯이 만용을 부린 것이다.  

현대는 그해 시즌 개막에 앞서 ‘질서 지키는 인천시민, 양보하는 야구 팬’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정하고 1루 스탠드에 플래카드까지 내붙였다.

그 같은 캐치프레이즈는 그야말로 구호에 그쳐, 개막전 3회 초에 LG가 4-0으로 앞서나가자 외야석에서 현대 응원 일부 관중들이 개막전 기념품으로 나눠준 유니콘스 사인볼을 그라운드로 마구 던져 경기가 한 때 중단됐다. 

소란은 ‘질서를 지켜 달라’는 장내 방송 후 간신히 진정됐다. 그러나 9회 초에 현대가 다시 4점을 내주고 패색 짙어지자 이번엔 1루 관중석에서 술에 취한 한 관중이 그물망을 타고 넘어 경기장 안으로 난입했다. 곡예 하듯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한 그의 모습은 마침 중계 중이던 TV 카메라에 잡혀 전국에 생생하게 전파됐다.  오죽했으면 중계하던 아나운서가 “저런 사람은 크게 사진을 찍어서 걸어두고 창피를 줘야한다”며 혀를 찼을까.

경기 후 관중석엔 온통 오물더미, 쓰레기 천지로 변했다. 그날  ‘인천구장의 곡예사’는 청원경찰에 의해 경기장 밖으로 끌려 나갔으나 훈방에 그쳤다는 후문이다. 관중 소란은 현대 선수들에게 심적인 부담을 안겨 결국 6-8패배로 귀결됐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사진=일간스포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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