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또 하나의 야구정서법, ‘개구리 타법’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3.05.15 11: 09

지난 2005년 7월 26일, 9회 말 1사까지 노히트노런 기록행진을 이어가다 KIA 이종범의 1루앞 땅볼 때 베이스커버를 뒤늦게 들어가는 바람에 내야안타를 허용, 대기록을 허무하게 날려야 했던 롯데 장원준 투수의 당시 미스플레이가 왜 실책으로 기록되지 않는 지에 대해 ‘야구정서법’이라는 표현을 빌려 설명한 적이 있다.
 
분명 야구기술 서적에는 땅볼타구가 투수 자신의 왼쪽인 1루 쪽으로 향했을 경우, 투수는 무조건 1루쪽으로 뛰어가야 함을 강조하고 있고, 또한 수비훈련에서도 이와 같은 패턴의 연습을 무한 반복하며 두뇌가 아닌 몸으로 익힐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아울러 이러한 플레이를 게을리 했을 경우 고과에서도 불이익을 주는 등, 기술적으로 투수의 1루 베이스커버는 하나의 자동적 의무로 자리잡은 지 이미 오래다.

 
하지만 투수의 늦은 베이스커버를 비롯한 야수의 굼뜬 수비동작이나 느슨한 송구 등은 명백한 해당 야수의 미스플레이임에도 기록상 실책으로 간주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야구경기의 일반적인 정서에 따른 판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정서법이란 규칙이나 규정으로 딱 부러지게 성문화 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통념상 적용되고 있는 일종의 불문율을 말하는 것으로, 다른 말로 하면 관습법정도가 되겠다.
 
그런데 엄연히 규칙적으로 성문화 되어 있으면서도 야구정서법이라는 명목 하에 선수의 규칙위반 행위를 묵인, 허용하고 있는 부분도 경기에서 가끔 찾아볼 수 있는데, 지난 5월 3일 SK전(대전구장)에서 일명 ‘개구리 타법’을 선보인 한화 이양기의 점프 타격도 그러한 부류 중의 하나다.
 
이날 6번타자로 출장한 이양기는 4회말 2-0으로 리드하던 무사 1루 상황에서 치고 달리기 작전이 걸리자 SK 선발 레이예스가 포수 조인성이 의도적으로 요구한 바깥쪽 높은 공을 두 다리가 공중에 뜬 상태에서 밀어 쳐 기어이 우전안타를 뽑아냈는데, 사실 이는 법적으로 따지면 규칙위반에 해당되는 행위이다.
 
타자가 반칙행위로 아웃될 수 있는 항목들을 모아놓은 야구규칙 6.06의 (a) 항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원주]의 형식을 빌어 기술되어 있다.
 
'타자가 타자석 밖에서 투구를 쳤을 때는 페어볼이나 파울볼에 상관없이 아웃이 선고된다. 심판원은 투구를 치려는 타자의 발 위치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타자는 타자석에서 점프하거나 타자석을 벗어나면서 투구를 쳐서는 안 된다.'
 
규칙 원문 그대로에 의하면 타자석에서 점프 타격한 이양기는 반칙행위로 아웃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법 집행관은 타자가 타자석을 벗어나 타격을 하지 않았다면 야구정서상의 이유로 해당 타자를 아웃으로 콕 집어내지는 않고 있다.
 
투구 궤적 파악과 방망이와 공이 닿는 순간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심판원이 타자의 발이 타격순간 타석에서 어느 정도 들렸는지 확인하기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적용에 있어서도 이를 잡아내는 일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는 것도 문제지만, 이를 묵인하는 주된 이유는 타석을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서의 타격행위는 타자가 어떤 동작을 취했건 간에 야구경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정상적인 부류의 행위로 이해,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6년 타격 시 내딛는 한쪽 발(왼쪽)이 타석을 벗어난다는 이유로 부정타격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박재홍의 타격자세에 대해 자연스러운 타격자세의 여세로 판단 반칙타격 조항을 적용하지 않았던 것도, 1982년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상대 배터리가 공을 뺀 것을 높이 뛰어 올라 배트를 던지다시피 하며 성공시킨 김재박의 스퀴즈번트가 아무 지적 없이 정당화된 것도 모두 타석 안 공간에서의 정당한 공격행위 범주로 이해됐기 때문이었다.
 
비견한 예로 투, 포수가 고의4구로 타자를 내보내려 할 경우, 투수가 던진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나기 전까지 포수는 한쪽 발이라도 절대로 포수석 밖으로 벗어날 수 없도록 규칙(8.05-보크)으로 못을 박고, 이를 위반할 경우 보크를 선언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경기에서 대부분의 포수가 이를 지키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빡빡한 법적용을 하지 않는 근거 역시, 흐름을 살려 원만한 경기가 진행되는 것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있음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야구의 규칙은 경기를 이루는 뼈대요 근간이다. 이를 무시하면 야구는 엉키다 못해 엉망이 된다. 제대로 된 경기를 만들고 가꾸기 위해서는 규칙이 존중 받아야 한다. 그러나 야구의 특성을 무시한 채 규칙을 오로지 이론적으로만 접근해 경기에 접목시키게 되면 야구는 상품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성질도 함께 갖고 있다.
 
간혹 너무 이론만을 앞세워 융통성 없는 판정을 내렸다가 경기 중 물의를 일으킨 신참이 종료 후 베테랑 선배로부터 꼭 듣는 말이 하나 있다.
 
“네가 그렇게 잘 봐?”
 
후배를 무시하는 말이 아니다. 이 말속에는 야구경기를 이론으로만 대하지 말고, 숨을 불어넣어 생명력 있는 야구경기로 이끌어야 한다는 조언이 담겨 있다. 규칙 책 어디에도 없는 ‘야구정서법’이란 바로 이런 경우에 적용되고 있는 관습법인 것이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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