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웅 "결론은 연기인 것 같아요" [인터뷰]
OSEN 전선하 기자
발행 2013.06.05 14: 49

배우 박기웅은 개봉을 앞둔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장철수 감독)에서 주연 배우에 비해 분량은 짧지만 만만치 않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장렬히 퇴장한다. 노랗게 탈색한 머리에 삐딱한 미소를 짓는 외적으로 도드라진 모습 때문이 아니다. 박기웅이 연기한 로커 지망생 리해랑 캐릭터는 북한 최고위층 집안의 서자 출신이라는 태생적 상처를 안고 남파 간첩을 자처한 만만치 않은 사연을 지닌 캐릭터. 출생부터 삶의 무게가 내려앉은 인물은 박기웅을 만나 웃고 있어도 마냥 웃는 것만은 아닌 인상으로 표현됐고, 적은 분량은 오히려 임팩트 있게 응축되어 영화가 끝난 뒤 담담한 잔상을 남긴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위해 마주한 박기웅은 이 같은 캐릭터가 ‘은밀하게 위대하게’에 출연을 결정한 결정적 이유였다고 말한다.
“제가 작품을 선택하는 이유는 두 가지예요. 하나는 작품이 재밌는지, 또 다른 하나는 연기하고 싶은 캐릭터인지를 보는데 ‘은밀하게 위대하게’와 리해랑 캐릭터는 두 가지가 모두 부합돼 있었어요. 감사하게도 드라마 ‘각시탈’이 끝난 뒤 여기저기서 불러주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리해랑을 택한 건 이 같은 이유 때문이에요. 어쩌면 저를 찾아주셨던 감독님들이 ‘내걸 거절하고 뭘 했나’ 하시면서 작품을 보실 수도 있어요. 그래서 잘 돼야 해요(웃음).”

리해랑 캐릭터의 매력은 삐딱함에 있다. 로커 지망생으로 머리를 샛노랗게 염색하고 기타를 둘러멘 차림으로 입가에 알 듯 모를 듯 미소를 머금은 채 외로운 담배 연기를 내뿜는 게 리해랑 캐릭터의 트레이드마크다.
“잘 어울린다고요? 에이 실제로 제가 그렇지는 않아요. 제 모습과는 거리가 좀 있는 캐릭터에요. 저는 분란을 싫어하고 연기에서도 생활에서도 힘을 빼고 가자 하는 주의거든요. 지금 보다 어렸을 땐 사실 이런 성격은 아니었어요. 그땐 1등 하는 걸 좋아했고 승부욕도 강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이기는 것보다 지는 게 좋고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방방 뜨진 않아요. 어릴 때 부모님께서 매사에 초연하라는 ‘자처초연(自處超然)’을 강조하셨는데 그게 크면서 나타나는 것 같아요. 어쩌면 아직까지 그렇게 좋은 일, 또는 나쁜 일을 겪어보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자처초연의 태도로 살고 싶어요.”
노랑머리 외에도 박기웅이 리해랑 캐릭터의 옷을 입기 위해 들인 노력은 또 있다.
“전작 ‘각시탈’을 했을 때 한 달 반 동안 소금이랑 설탕을 안 먹고 살을 쪽 뺀 적이 있는데, 제가 볼살이 빠지면 굉장히 날카롭게 보이기 때문에 피폐해지는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덕을 많이 봤었죠. 반면에 이번 작품에선 반대로 살을 좀 찌웠어요. 저보다 두 살 어린 수현이랑 동갑내기로 보이려면 실제 제 나이보다는 어려 보여야 했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분장의 힘을 믿는 편이고 또 덕을 많이 보는 케이스라 분장을 적극 추천하는 편이에요. 다이어트든 삭발이든 염색이든 분장을 하면 어찌됐든 그렇게 보이니까요. 하나의 아이템처럼 여기라고 후배들에게 이야기 하는 편이죠.”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2억뷰를 돌파한 동명의 인기 웹툰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그런만큼 원작 팬들을 안고 가는 장점이 있지만 비교 또한 피할 수 없는 게 숙명이다. 이러한 가운데 유독 원작 웹툰에서 도드라지는 건 박기웅이 연기한 이해랑 캐릭터다.
“영화에 출연할 때는 보통 시나리오에 표현돼 있지 않은 인물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 이번 작품의 경우는 웹툰에 다 명시돼 있기 때문에 특별히 상상할 필요가 없었어요. 다만 저는 해랑이를 연기할 때 원작에서 벗어나지 않되 다르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머리스타일이 다른 인물들과 달리 원작과 다르게 등장한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영화에 크게 위배되지 않는 한 박기웅의 색깔을 드러내고 싶었거든요.”
차별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박기웅이 극중에서 맡은 역할의 한 부분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연기한 리해랑 캐릭터는 원류환(김수현 분), 리해진(이현우 분)과는 확실히 다른 성향을 지닌 캐릭터. 류환과 해진이 정석 코스를 밟는 얌전한 모범생 타입이라면 해랑은 어긋나고 일탈하는 게 어울리는 인물이다. 세 사람이서 조화롭게 어우러지되 분리되지는 않아야 하는 게 박기웅에게 주어진 숙제였다.
“해랑은 류환이나 해진과는 다른 성향을 지닌 만큼 차별성을 이뤄야 하는 인물이에요. 그런 점을 가지고 한 축을 담당해야 하는 게 제 역할이었죠. 그렇다고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면 안 되고 잘 섞이면서도 선을 유지하는 게 중요했어요. 셋이서 둘러앉아 멸치를 손질하는 장면에선 알콩달콩 하되 최대한 호흡이 맞아야 한다고 동생들에게 이야기 했던 게 기억나요.”
함께 연기한 김수현, 이현우와는 다행히 호흡이 좋았다. 또래 배우들이기에 보이지 않게 기싸움이 벌어질 법도 하지만 정신없이 장난치고 떠드느라 바빴다는 게 그의 말이다.
“저희가 ‘도미솔’이거든요. 나이로 보나 연기 경력으로 보나 현우가 가장 막내, 수현이가 둘째, 제가 큰형이라 그런 싸움이 없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수현이를 지켜보면서 똘똘하고 영리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관계를 만드는 측면에서도 그렇더라고요. 주연이다 보니 영화의 모든 브릿지 신에 등장해서 여기저기 안 걸리는 사람이 없었는데 모든 사람들에게 잘 하더라고요. 저희 작품의 분위기 메이커는 단연 수현이었어요.”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박기웅이 지난해 ‘각시탈’을 통해 각광받은 뒤 이 같은 기세를 이어갈 작품으로 점쳐지는 영화다. 예매율 또한 80%까지 치솟는 등 작품에 쏠리는 눈이 많다. 무엇보다 내년 군 입대를 준비 중인 그로서는 남다른 성과를 냈으면 하는 바람이 무리도 아니다.
“예매율이 80%던데 솔직히 징그럽더라고요(웃음). 잘 되면 당연히 좋죠.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이 잘 해보자면서 다같이 합심해 만든 작품인데 결과까지 좋다면 더할나위가 없겠죠. 하지만 그렇기 되기까지는 운도 많이 좌우하고 예상치 못한 변수도 있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겠어요.”
지난 2005년 연예계에 입문한 그는 올해로 데뷔 9년차를 맞았다. 험난한 연예계 생활에서 9년의 시간을 보낸 그는 계획대로 되가고 있냐는 질문에 활짝 웃으며 “계획은 없다”고 말한다.
“그때그때 열심히 하자는 주의에요. 장기적인 플랜은 사실 없어요. 그런 걸 가졌던 시기도 있었는데 그대로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어요. 처한 상황에서 최대한 열심히 하자로 갔죠. 무엇보다 저는 직업이 연기하는 사람이다 보니 계획 보다 중요한 결론은 연기더라고요. 아직은 멀었지만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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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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