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필주의 36.5] 히딩크의 조언과 '준비된 감독' 홍명보의 결단
OSEN 강필주 기자
발행 2013.06.26 08: 29

공식적으로 닻을 올린 홍명보호. 이제 한국 축구대표팀은 홍명보(44) 시대를 맞이했다.
홍명보 신임 대표팀 감독은 25일 경기도 파주 NFC(트레이닝센터)에서 취임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출발을 알렸습니다. "원팀, 원 스피릿, 원 골이 가장 중요한 방침이 될 것"이라고 선언한 홍 감독은 "최고의 선수를 뽑아서 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2014 브라질월드컵 출사표를 분명하게 던졌습니다.
홍 감독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거스 히딩크(67) 안지 마하치칼라 감독을 몇차례 언급했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의 영광을 함께 했고 러시아에서 지도자 수업 기회를 제공해 준 은사였기에 당연했습니다. "재충전 시간을 가지면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홍 감독은 "히딩크 감독의 배려로 안지에서 코치 수업을 받았다. 그 시간이 내게는 정말 중요한 시간이었다. 축구 뿐만 아니라 인생을 배우게 된 시간이었다.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찾게 된 계기였다"고 밝혔는데요. 히딩크 감독은 기자회견에 앞서 이메일을 통해 홍 감독의 대표팀 감독 취임을 축하했습니다.

실제 히딩크 감독은 2002년 한일월드컵의 영광을 이룬 애제자 홍 감독에게 많은 배려를 했죠. 2012 런던올림픽 후 지난 1월부터 홍 감독을 러시아 안지에서 어시스턴트 코치로 활약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는 홍 감독에게 지도자로서의 경험을 좀더 풍족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홍 감독은 히딩크 감독의 따스한 온실에만 있지 않았다는군요. 홍 감독은 러시아에서 아예 바닥부터 다시 한다는 각오로 부지런히 움직였답니다. 코칭스태프는 물론이고 선수단 구석구석에까지 신경을 썼고, 선수들과 직접 대화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히딩크 감독의 측근에 따르면 홍 감독의 이런 생활 면면을 지켜 본 히딩크 감독은 칭찬을 넘어 감탄해 마지 않았습니다. 러시아 뿐 아니라 다양한 국가에서 온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모습에 오히려 "감동했다"고 털어놓았을 정도라죠. 안지는 코칭스태프가 러시아, 네덜란드, 몬테네그로, 선수는 러시아, 브라질, 모로코, 카메룬, 우즈베키스탄, 코트디부아르, 프랑스 등 다국적으로 이뤄진 구단입니다. 홍명보 감독 역시 "가장 힘든 시절"이라고 인정했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지난 5월 대표팀 사령탑 제안을 받은 애제자 홍 감독에게 구체적이면서도 진심어린 조언을 해줬습니다. "지금 대표팀을 맡게 된다면 최소 2018년 러시아월드컵까지 보장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히딩크 감독은 "브라질월드컵을 보고 대표팀을 맡기란 위험이 크다. 홍명보의 색깔을 표현하기에는 1년도 남지 않은 시간이 너무 짧다"고 홍 감독에게 조언했습니다.
또 "월드컵 조별예선 3경기로 모든 평가가 결정될 수 있다. 천당과 지옥을 왔다갔다 해야 하는 대표팀 감독의 자리가 단 3경기로 판가름 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며 "나처럼 외국인 감독은 이런저런 구체적인 조건을 내걸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인 정서상 그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최대한 필요한 도움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결국 히딩크 감독은 계약기간의 중요성을 이야기 한 것이죠. 히딩크 감독은 홍 감독이 20세 이하, 23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 지도자 생활을 착실하게 밟아 온 만큼 오는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그 지도력이 빛을 발하리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일찍 젊은 나이에 대표팀 사령탑 호출을 받은 데 대해 다소 놀랐다고 하네요. 더불어 브라질월드컵을 얼마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대표팀을 맡게 된 홍 감독이 혹여 여론의 뭇매를 받을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죠. 지도자 생활 전부가 걸려 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죠.
실제 히딩크 감독은 홍 감독이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떠나기 전 식사자리에서 "대표팀에서 제안이 오면 주변 사람들의 말들이나 상황을 모두 냄비에 넣고 끓여보라. 그래서 뭔가 나오면 대표팀 감독을 하지 말라"고 마지막 조언을 하면서도 "만약 대표팀을 맡지 않을 경우 안지에 더 있어도 좋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습니다.
홍 감독도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소위 독이 든 성배가 바로 대표팀 사령탑이란 것을 말이죠. 하지만 홍 감독은 스스로를 시험하기로 했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계약기간 2년에 대한 물음이 나오자 홍 감독은 "협회는 지금보다 더 나은 조건을 제시했다.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자리를 영원히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적이 안 좋으면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래서 동기부여가 필요했다. 2018년까지 계약이 보장된다면 자세가 180도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나 자신을 채찍질해서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하기 위해 내가 협회에 2년을 제안했다"고 당당하게 밝혔습니다.
특히 홍 감독은 "사람은 안락할 때보다는 도전과 갈등에서 평가를 받는다. 1년이라는 시간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1년이라는 시간이 대표팀 감독을 수락하는데 움직인 것은 사실이다. 1년이라는 시간동안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는 머리 속에만 남아있다. 결정을 하고나서 대충 그림을 그려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홍 감독의 생활을 바라보면서 "한국대표팀의 준비된 감독"이라며 측근에게 고개를 끄덕였다고 합니다. 자신의 뒤를 잇는 한국 대표팀 수장으로서 인정을 한 것이죠. 그렇지만 자기 스스로를 철저하게 벼랑 끝으로 내몰며 위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는 홍 감독의 모습은 히딩크 감독에게 또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제 지도자 홍명보 감독이 2002년 한일월드컵의 영광을 또 한 번 재현, 청출어람을 실현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게 됩니다. 그래서 2018년 러시아까지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OSEN 스포츠부장 letmeout@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