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자들' 정우성, 악역에도 품격이 있는걸까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3.06.30 07: 44

옛날 영화 속 '나쁜 놈'은 '착한 주인공'을 해칠 때마다 뜸을 들인다. 칼 한 번 휘두르거나 총 한 방 쏘기 전에 긴 대사를 읊조리고 온갖 인상을 다 쓰다가는 되레 주인공에게 호되게 당하곤 했다. 또 악역 단골 배우들은 따로 있었다. 일단 미남은 빼고, 인상파 우선으로.
이같은 예전 악역들의 전형적인 공식으로 따진다면, 정우성은 '나쁜 놈' 캐스팅에서 가장 먼저 탈락할 배우 가운데 한 명이다. 신성일을 잇는 미남 스타로 199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청춘을 보냈던 그는 40대 접어든 지금까지 늘씬한 키와 조각같은 용모를 바탕으로 출중한 경쟁력을 자랑한다.
김지운 감독의 흥행 대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긴 코트 날리며 멋지게 장총 휘두르는 굿 가이로 그가 발탁된 건 당연한 일이고 그 이미지는 여전히 굳건하다.

그런 정우성이 생애 첫 악역을 맡았다. 조의성 김병서 공동감독의 신작 스릴러 '감시자들'에서다. 정우성의 악역이 과연 잘 어울릴까? 의혹은 영화를 보면 풀린다. 정우성은 정우성답게 정우석 스타일로 악역을 소화했다.
만약 그가 '달콤한 인생'의 백사장 역 황정민이나 '악마를 보았다' 살인마 최민식처럼 야비한 야수처럼 거칠게 굴었다면 기묘한 악역이 됐을 지 모를 일이나 배우경력 20년 정우성은 나름대로의 99점 답안지를 관객들에게 제출했다. 쿨하게 범죄를 저지르고 시원시원하게(?) 사람 죽이는 냉혈한 킬러로서다.
초 단위로 완벽한 계획을 세워 완전 범죄를 추구하는 범죄조직의 리더 제임스가 정우성이 맡은 역할이다. 지하철 2호선을 탄 그가 큰 키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걷는 포스부터가 기존의 악역들과 다르다. 잡티 하나 없이 백옥 피부에 오똑한 콧날, 단저하게 빗은 헤어스타일도 '정말 나쁜 놈 맞아?' 물음표를 요구한다.
그러나 별 다른 감정 표출없이 범죄에 나서고 조직원을 단죄하며 순식간에 자신을 추적하는 걸림돌들을 해치우는 장면들에서 정우성의 나쁜 놈은 빛을 발한다. 한 치의 주저나 머뭇거림없이 냉정하게 악행을 저지르는 무신경 또는 단호함이 오히려 관객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든다. 잘 생긴 얼굴에서 나오는 냉소적 미소가 때로는 더 잔인해 보일수 있다는 걸 정우성이 '감시자들'에서 그대로 보여준 셈이다.
영화 속 제임스(정우성 분)은 빠른 두뇌 회전과 판단력으로 범죄를 설계하고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강렬한 카리스마로 현장을 지휘한다. '빌딩숲 가장 높은 곳에 올라 긴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감시반과 조직원의 사투를 내려다보는 제임스의 모습은 정우성의 깊은 눈매와 특유의 분위기와 만나 긴장감 넘치는 상황 속에도 그 자체로 그림 같다'는 게 영화를 본 한 여기자의 '감상'일 정도다.
김병서 감독도 이에 대해 “제임스 역할을 영화에 갈등을 일으키는 데 사용되는 무조건적인 악역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게 가능했던 건 캐릭터를 연기한 정우성의 힘이 컸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우성은 최근 스타채팅을 통한 팬들과의 전화연결에서 "체력이 허락될 때까지 영화를 계속 해나갈 것이다"며 "로맨틱 코미디도 해보고 싶다. 로맨틱 코미디가 그런데 사실 어렵다. 만들기도 어려운 장르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정우성 씨, 로맨틱 코미디 속 달콤한 남자 정우성도 좋지만 '감시자들' 제임스같은 나쁜 놈 역할도 자주 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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