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캐스팅 '관상', 이정재를 보는 즐거움
OSEN 전선하 기자
발행 2013.09.04 07: 30

송강호, 김혜수, 이정재, 백윤식, 조정석 등 충무로의 쟁쟁한 별들이 한 꺼 번에 등장하는 멀티캐스팅 영화 ‘관상’(감독 한재림)에서 단연 돋보이는 배우는 이정재다.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르는 계유정난의 핵심 수양대군 역으로 영화에 출연한 그는 야욕으로 충만하면서도 품위 있고 여유를 잃지 않는 모습으로 ‘관상’에서 도드라진 존재감을 드러낸다.
‘관상’은 천재 관상가 내경(송강호)이 조선시대 정치 1번가 한양에 불려가 왕의 자리를 탐하는 자들을 얼굴을 통해 미리 알아내고 그러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은 영화다. 송강호가 관상가 내경 역에, 그의 처남 팽헌 역에 ‘건축학개론’을 통해 이름을 알린 조정석이 영화 전반부 콤비 호흡을 이루며 유연하게 극의 문을 여는 가운데, 후반부 이정재가 연기하는 수양대군이 등장하면서부터 영화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수양대군의 등장은 139분의 러닝타임 중 60분이 지난 뒤에야 이뤄지지만, 그 모습이 가히 압도적이다 할 만큼 강렬하고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부여된 극에 긴장을 불어넣는 역할을 노련한 연기력으로 펼쳐내며 후반부 극에 드리워진 비극을 확실히 책임진다.
수양대군이 사냥터에서 돌아와 살육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모습은 그가 앞으로 어린 조카 단종에게 드리울 칼날이 날 서게 벼리었음을 암시하고, 그는 이 같은 기운을 극 막바지까지 밀어붙인다.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는 복종의 분위기가 수양대군이라는 인물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가운데, 이정재는 이를 오히려 단정하게 잘 생긴 이목구비와 사람을 끄는 서글서글한 웃음으로 소화하는 세련된 연기를 선보인다.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어 더 이상 청춘은 아니지만 영화 속 이정재의 모습은 야심만만하되 노회하지 않고, 치기 어리지 않는 무게감이 느껴져 더욱 매력적이다. 좋은 배우들이 한꺼번에 나오는 멀티캐스팅 영화 ‘관상’에서 이 같은 이정재의 모습을 보는 건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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