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황제 '빅토르 안'과 러시아 비틀즈 '빅토르 최'[기고]
OSEN 강필주 기자
발행 2014.02.08 08: 00

빅토르 안과 빅토르 최의 평행이론
8일(한국시간) 새벽 개막식을 갖고 열전에 돌입한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을 맞아 한국과 러시아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는 '빅토르 안'(한국명 안현수). 러시아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은 물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까지 적극적으로 빅토르 안을 돕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쇼트트랙 황제 안현수는 지난 2011년 8월 러시아로 귀화했다. 안현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빅토르 안으로 개명한 이유가 '승리(victory)하자'는 의미였다고 밝혔다. 더불어 구소련 록 가수 황제 '빅토르 최'처럼 최고가 되겠다고 다짐도 했었다.

록그룹 키노(KINO)의 고(故) 빅토르 최(Виктор Робертович Цой,1962~1990)는 과연 누구인가?
70년간의 공산주의 치하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던 구소련 젊은이들은 1980년대 중반 혜성처럼 등장한 록그룹 키노(KINO)의 저항적이면서 자유지향적인 노래에 미친 듯이 열광했다. 서슬퍼런 공산독제체제에서 소련 젊은이들은 억압과 분노를 발산하며 빅토르 최의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구소련에서 빅토르 최는 '제임스 딘'이었고, 키노는 '비틀즈'였다. 지난 1990년 6월 모스크바국립경기장 공연에 7만6000명이 팬들이 몰려 러시아 최대의 행사로 기록될 정도였다.
그러나 '구소련 비틀즈'의 '구소련 제임스 딘'은 1990년 8월 15일 라트비아 수도 리가 근교에서 교통사고로  28세의 나이에 요절했다. 그야말로 불꽃처럼 살다가 산화한 것이다. 더욱 애틋한 것은 그의 사망은 자유 러시아연방이 탄생(1991년 12월 25일)하기 불과 16개월 전이었고, 모국 대한민국 공연을 불과 몇 개월을 앞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빅토르 최는 사망한 지 20년이 지난 현재에도 러시아인의 가슴에 남아 살아 숨쉬고 있다. 빅토르 최를 기리는 추모제가 매년 6월 21일(생일)과 8월 15일(기일) 두 차례 모스크바 예술의 거리 아르바트 거리 추모의 벽과 빅토르 최 제2의 고향이자 무덤이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다.
한번은 KBS '세계는 지금'에서 외주를 받아 직접 PD의 입장에서 '빅토르 최 사망10주기 신화는 끝나지 않았다'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한 경험이 있다. 지난 2000년 8월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에서 빅토르 최 가족과 인터뷰하며, 7일간 빅토르 최 추모열기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당시 빅토르 최의 가족들은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빅토르 최 부모는 한 푼의 재산도 받지 못한 채 가난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고,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미망인 마리야나 최와 갈등 관계에 있었다. 마리야나 최는 당시 다른 러시아 남자와 연인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다 지난 2005년 남편 곁으로 떠났다. 아들 알렉산드르는 190cm의 거구에 아빠를 꼭 빼닮았다. 특히 아들은 한국에 가고 싶다는 말을 여러 번 한 바 있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 3개의 금메달을 휩쓸며 쇼트트랙 황제로 등극했던 빅토르 안은 이번 소치올림픽을 앞두고 일체의 인터뷰를 거절하며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빅토르 안의 침묵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안현수는 지난 2009년 무릎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당했고, 이후 번번이 대표팀에서 탈락하는 비운을 맛보았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무대에는 서보지도 못했다. 대한빙상연맹은 그에게 아무런 지원도 해주지 않았고, 최후의 보루였던 소속팀 성남시청마저 해체되어 그야말로 '오갈 데 없는' 신세로 전락했다. 사실상 '황제 안현수' 시대는 끝났고 '비운의 안현수'만 남는 듯했다.
하지만 쇼트트랙의 고질적인 파벌싸움의 희생양인 안현수는 자신를 철저히 버린 대한빙상연맹과 한국을 떠나 러시아 국적을 취득했다. 당시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국적 포기가 "나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제 빅토르 안은 러시아 국적을 가지고 올림픽 금메달을 향해 가고 있다. 빅토르 안이 빅토르 최와 같이 러시아의 국가적 영웅으로 등극할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한승범 맥신코리아 대표
소치(러시아)=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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