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 난투사](44)‘프로야구 1호 몰수게임’ 백인천 감독의 이유 있는 항변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4.02.25 08: 07

‘몰수게임(Forfeited Game)’은 입장료를 내고 야구를 구경하러온 관중의 ‘관전권’이 타의에 의해 박탈당한다는 점에서 야만적이다. 책임을 져야하는 팀은 0-9라는 패배의 너울을 쓴다. 한국프로야구가 1982년에 항해를 시작한 이래 몰수게임은 딱 두 번 있었다. 출범 첫해 8월 26일에 일어났던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즈의 대구게임, 1985년 7월 16일 OB 베어스와 MBC 청룡의 경기였다.
두 경기 모두 감독의 심판판정 불복이 가장 큰 이유였다. 1호 몰수게임은 ‘원시적인 충돌’이 그 발단이었다. 그라운드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일이 확대 재생산 돼 급기야 경기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한 심판이 ‘원만한 경기진행을 포기하고’ 임의로 차단막을 내린 결과였다. 
1982년 8월 26일 밤 대구구장.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즈가 후기리그 4차전을 벌이고 있었다. 삼성이 2회 말에 3점을 따내고 4회 초에 삼성 선발 성낙수가 MBC 5번 이종도에게 2점 홈런을 내줘 3-2로 쫓겼다. 삼성은 4회 말 MBC 두 번째 투수 이길환을 집중 공략, 손상득, 박정환, 오대석, 배대웅의 4안타로 2점을 보태 5-2로 달아났다. 계속된 삼성 공격 1사 1, 2루의 기회에서 타석에 들어선 3번 정현발의 타구가 MBC 유격수 조호 앞으로 굴러갔다. 조호가 이 공을 잡아 2루수 김인식에게 연결했고 김인식은 2루를 찍은 다음 1루수 김용윤에게 던져 더블플레이를 성공시켰다. 그 과정에서 일이 터졌다.

김인식이 1루로 공을 던지려는 순간, 2루로 돌진해오던 삼성 1루주자 배대웅이 슬라이딩을 하면서 왼발을 높이 들어 김인식의 하복부를 걷어찬 것이다. 김인식은 배대웅과 뒤엉켜 넘어졌다가 일어나면서 일차 발길질을 했고, 분김에 다시 뺨을 후려갈겼다. 양 팀 선수들이 덕 아웃에서 우르르 몰려나와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였다. 그 장면에서 김동앙 주심이 박명훈 2루심 등 네 심판을 불러 모아 숙의를 한 다음 김인식에게 퇴장을 선언했다. 그 시각이 저녁 7시 57분.
당시 현장을 포착한 사진을 보면 배대웅의 발이 김인식의 아랫배를 향하고 있음이 명확히 드러나 있다. 퇴장을 선언 당한 김인식이 박명훈 2루심에게 대들었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백인천 감독도 덕 아웃에서 뛰쳐나왔다. 백 감독은 “왜 발로 찬 가해자는 그냥 두고 피해자만 퇴장을 선언하느냐”고 펄펄 뛰면서 김동앙 주심에게 격렬하게 따졌으나 반향이 없자 수비에 나가있던 선수들을 그라운드에서 철수시켰다. 판정의 형평성에 대한 항의 표시였다. 
김동앙 주심이 몇 차례 백 감독에게 경기 속행을 종용했지만 울화가 치민 백 감독은 요지부동이었다. 경기가 중단 된 지 25분이 지나자 김동앙 주심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밤 8시 22분에 몰수게임을 외쳤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첫 몰수게임의 기록이 태어난 것이다.
경기가 불과 1시간 51분 만에 중동무이 되자 그날 대구구장에 입장했던 1만 여명의 관중 가운데 400여명이 구장 정문 앞에서 환불을 요구하며 거칠게 항의, 나중에 대구북부경찰서권오달 서장까지 나서 관중들을 설득해 겨우 진정시켰다.
사건 뒤에는 으레 상벌이 따르기 마련.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이틀 뒤인 8월 28일에 상벌위원회를 열고 무더기 징계를 내렸다. MBC 구단에 제재금 100만 원과 입장료 환불 등에 따른 전액을 배상케 하는 한편, 백인천 감독에게 제재금 100만 원과 출전정지 5게임, 김인식에겐 제재금 10만 원, 김동앙 주심과 박명훈 2루심에게 나란히 5게임 출장정지 외에 각각 제재금 20만 원과 15만 원을 부과했다. (KBO 역대 징계일지에 근거한 것임)
당시 상벌위원회는 징계 이유로 ‘대회요강 15항 경기포기의 금지에 의거 MBC 구단은 몰수게임 책임, 김인식은 상대선수 폭행 퇴장, 백인천 감독은 경기속행 거부 몰수게임 선고 유발, 박명훈 심판원은 과감한 판정 미비로 심판원의 위신 손상, 김동앙 주심은 효과적으로 규율과 질서유지 책임 완수치 못함’을 들었다.  
김인식은 그 징계에서 경기 출장정지 처분까지 받았다면 프로야구 최초의 606경기 연속출전 기록이 중단될 뻔했다. 몰수게임이 그의 61경기 연속 출전무대였다. 김인식의 기록연장은 KBO가 ‘유효’한 것으로 유권해석을 내려 일단락 됐다. ‘베트콩’이라는 별명대로 까무잡잡한 얼굴에 악착같은 플레이로 한국 프로야구 몸에 맞는 공 1호 선수였던 그는 그 고비를 용케 넘기고 연속경기 기록을 이어갈 수 있었다. 김인식이 출장정지 징계를 받았더라면 훗날 1987년 10월 3일까지 계속된 6년 연속 전게임 출장과 606 게임 연속출장기록(역대 개인통산 4위. 1위 최태원 1014, 2위 김형석 622, 3위 이범호 615게임))은 싹이 잘려 아예 역사 속에 파묻혀버렸을 것이다. 
서영무 감독이 진두지휘한 삼성은 그 경기를 이겨 3연승의 상승세를 탔고, 9월 2일 대전 OB 베어스전까지 7연승 행진 끝에 결국 OB를 1.5 경기 차로 밀어내고 프로야구 첫해 후기리그 우승을 일궈냈다.                                            
김인식의 증언이다.
“(배)대웅이가 스틸(실제론 1루 주자였던 배대웅이 후속 타자 정현발의 유격수 앞 타구 때 더블플레이를 피하기 위해 슬라이딩을 한 것이었으나 그는 배대웅의 도루 시도로 기억했다)을 해 내가 들어가 태그를 했다. 그런데 대웅이 완전히 까고 들어와 내가 넘어졌고 벌떡 일어나면서 내가 (대웅이에게) ‘뱃길을 질러 까고 들어오면 어떻게 하냐’라고 소리치며 발을 내질렀다. 대웅이와 친구지만 옥신각신 싸움이 됐는데 김동앙 주심이 다짜고짜 나를 퇴장 시켰다. 어떻게 깐 사람은 그냥 두고 왜 당한 피해자인 사람을 퇴장 시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백인천 감독도 피해자만 퇴장을 준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따졌다. 그 중간에 묘한 상황이 있었다. 참으셨으면 되는데…. 당시 여러 가지 여건이 그랬다. 백 감독이 일본에서 오셨는데 게임도 잘 안 되고, (주심이)시간 재서 안 들어오니까 몰수게임을 선언해버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견제가 있었다고 봐야한다. 심판들이 백 감독을 별로 안 좋아했고, ‘이번 기회에 한 번 혼을 내주자’하는 마음이 있었지 않았을까.”
백인천 감독은 오래 전의 일에 대해 웃으며 “사실 여론의 비난을 받고 팬 난동의 빌미가 됐으니까, 불명예스런 기록이지만 어떻게 보면 그런 기록도 한국야구에 남아야 재발방지 대책도 마련하고 그럴 게 아닌가.”라며 역설적인 표현을 했다.
백 감독은 “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 심판이 일방적으로 김인식 만 퇴장을 시켰는데, 양 선수를 다 퇴장시켰어야 했다. 심판이 미숙했다 뭐다 얘기하는 것보다, 나도 반성했지만, KBO와 선수, 심판도 느낀 바가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출장정지 된 5게임에 나갔더라면 원년 4할 타율(.412) 기록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알 수 없다.”고 그에 덧붙였다.
백 감독은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는 생각과 태도가 남달랐다.
“프로야구가 직업이다 보니 그런 상황은 장난이 아니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죽기 살기로 경기에 임하는 게 단련이 됐다. 우리나라 팬들의 야유는 일본 관중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장훈 선배도 그랬지만, 타석에 나가 ‘야, 이 조센진아!’ 소리 들을 때면 순간에 머릿속에 ‘휘익’, 뭔가 온다. 나 혼자 몇 만 명의 관중을 상대하는 심정은 어떻게 형언하기 어렵다.”
백인천 감독이 그날 끝내 심판과 타협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그런 장면과 오버 랩 돼 심판들의 편향된 시각이 서럽게 다가왔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배대웅은 지난 2009년 2월 이재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 때를 돌아보면서 “김인식은 절친한 친구다. 국가대표도 같이 하고, 걔가 쇼맨십과 액션이 강하다. 심판은 운동장에서 손찌검했다고 퇴장시켰지만 친구가 장난으로 그랬는데 경고도 없이 퇴장을 시켰다. 실제로 우리 사이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다음날 술 한 잔 하면서 둘이서 엄청 웃었다.”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아무튼, 공교롭게도 그 사건 5시간 전 메이저리그 홈런왕(개인통산 755홈런) 행크 아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부사장이 방한했다. 애틀랜타의 친선경기 협의차 내한했던 행크 아론은 입국 기자회견에서 “25년 프로선수 생활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심판으로부터 경고나 제재를 받지 않았다. 물론 나도 인간이니까 때로는 화도 나고 심판판정에 불만도 품었으나 그럴 때는 돌아서서 발로 땅을 차거나 흙을 한줌 움켜잡고 뿌리는 정도로 불만을 삭혔다.”고 말해 그날의 사건을 곱씹게 만들었다.
8월 28일 잠실구장에서 타격지도와 시범을 보이기도 했던 행크 아론은 전날(27일) 저녁 환영 만찬 석상에서 워커 주한 미국 대사의 “슈퍼스타 치곤 너무 점잖고 겸손하다”는 말에 “슈퍼스타는 그냥 되는 게 아니다. 타고난 재능보다는 꾸준한 노력, 자랑과 오만보다는 인내와 극기가 필요하다”고 답변해 대스타다운 태도로 칭찬을 받았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김인식이 뒷짐을 지고 심판에게 항의하는 모습. 김인식의 표정이 웃음을 자아낸다.(제공=일간스포츠)
몰수게임 당시의 KBO 공식기록지(제공=KBO). ‘沒收(몰수)게임’이라는 글자가 아직도 선명하다. 
1982년 8월 26일에 서울을 찾은 행크 아론이 8월 18일 잠실구장에서 삼성 선수들에게 타격지도를 하는 모습(제공=일간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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