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현의 ML통신]한국야구와 인연 깊은 크리켓 그라운드
OSEN 박승현 기자
발행 2014.03.18 07: 59

[OSEN=LA(미국 캘리포니아), 박승현 특파원]  호주 시드니 크리켓 그라운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우리에겐 낯설기만 한 경기인 크리켓 전용구장이다. 하지만 한국야구와는 깊은 인연이 있다.
2000년 시드니에서 열린 올림픽. 뉴 밀레니엄을 맞아 열리는 첫 올림픽이자 남북이 개막전 동시 입장을 성사시킨 대회이면서 한국야구로선 올림픽에서 첫 메달을 따낸 대회다. 앞서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야구가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후 2000년 시드니에서 프로선수들에게도 출전이 허용됐다. 아마추어로 구성된 대표팀이 잇달아 입상에 실패한 뒤 KBO와 대한야구협회는 올림픽에 처음으로 프로아마 대표팀을 구성해 출전하기로 합의해 드림팀이 탄생했다. 
올림픽 첫 메달권 진입은 당시 선수협 파동 등으로 어수선했던 야구판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고 팬들의 관심도 끌어 올릴 수 있는 기회로 꼽혔다. 물론 야구 종주국임을 자처하는 미국 역시 올림픽 금메달을 아마 최강자 쿠바에게 넘겨 줄 수 없다는 의도로 트리플 A 선수들을 주축으로 대표팀을 꾸렸다. 말이 트리플A 선수들이지 벤 시츠, 로이 오스월트 등 주축 투수들은 올림픽 이듬해 메이저리그에서 대활약을 펼친다.  일본 역시 괴물 마쓰자카 다이스케 등 프로와 사회인 야구 선수들을 섞어 대표팀을 구성했다.

한국은 4강전에서 당시 경희대 재학 중이던 언더핸드 투수 정대현이 예선전에 이어 호투를 펼쳤지만 미국에 아깝게 역전패 했다. 미국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고도 심판의 석연치 않은 세이프 판정으로 패한 경기여서 더욱 아쉬웠다. 
이어진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 물러설 수 없는 승부에서 구대성(당시 한화)과 이승엽(당시 삼성)이 맹활약을 펼쳤다. 이승엽은 일본이 자랑하는 마쓰자카를 상대로 2타점 결승타를 날렸고 구대성은 1실점 완투승을 거뒀다. 구대성의 구위에 삼진으로 쫓겨난 타자가 모두 11명이었다. (사전에 알려지진 않았지만) 등판 전 날 팔도 들지 못할 만큼 통증에 시달렸던 구대성이 홀로 마운드에서 분투하는 모습은 Tv를 지켜보던 국민들에게 깊은 감동을 줬다.
당시만 해도 WBC 가 생기기 전이었기 때문에 한국프로야구에 대한 '객관적 위상'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일본에는 한 수 뒤진다던지 미국과 비교하면 더블A나 프리플A  어디쯤이라든지 하는 별 근거 없는 말들만 오가곤 했다. 아무리 야구가 단기전으로 리그 전체 수준을 평가할 순 없다고 하지만 태극마크 붙이고 맞붙은 경기에서 일본을 제치고 동메달을 따낸 것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과 함께 야구에 대한 애정을 심어준 것만은 분명했다.  미국이나 일본 프로야구 관계자들이 한국 야구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도 됐다. 이 때의 성과가 이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WBC에서의 선전으로 이어진 것은 모두 알고 있는 대로다.
이런 인연이 있는 크리켓 그라운드 마운드에 23일 LA 다저스 류현진(27)이 다시 선다.  한국을 대표 선수는 아니지만 당당히 메이저리거가 되어 본고장 야구를 호주에 전파하는 전도사로 나서는 것이다. 올림픽 당시 크리켓 그라운드 전광판에는 경기 중간중간 야구규칙을 알려주는 메시지들이 올라왔다. 이 구장에서 1914년 시카고 화이트 삭스와 뉴욕 자이언츠의 시범경기가 열렸다는 점도 알려줬고 'TAKE ME  OUT  TO  THE  BALLGAME'이라는 미국 야구장에서 늘 불리는 노래도 가사와 함께 틀어줬다. 모두 호주인들에겐 낯선 야구를 알리기 위한 시도였다.
이런 점에서 보면 태평양을 건너 메이저리그에서 성공 신화를 쓴 류현진이야 말로 메이저리그 호주 개막전에 적합한 선수인지도 모르겠다.
류현진의 전 소속팀 선배이자 류현진에게 체인지업을 가르쳐 준 스승이기도 한 구대성이  호주대표팀으로 이번에 다시 크리켓 그라운드 마운드에 선다는 것도 하나의 인연을 더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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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올림픽서 동메달을 딴 뒤 김응룡 감독을 헹가래치는 대표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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