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 난투사](48)‘타임’ 요청 묵살이 부른 김성한 항의의 대가…156연속경기 출장 멈춤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4.03.27 09: 27

타자는 타석에서 호흡을 고르며 타격 준비 자세를 취한다. 짧은 순간이지만, 타자가 투수의 투구리듬과 타격 호흡이 맞지 않을 때 흔히 “타임”을 외치고 주심의 허락을 받아 타석을 벗어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이 사건은 프로야구 초창기, 타자와 주심의 견해가 엇갈려 충돌을 빚어낸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 이 충돌은 그 뒤로 웬만하면 타자의 “타임” 요청을 받아들이게 되는 ‘긍정적인 효과’도 낳게 된다.
1983년 8월 20일 잠실구장. 해태 타이거즈와 MBC 청룡의 야간 경기 도중 해태 김성한이 퇴장을 당했다. 0-0으로 팽팽하던 5회 초 해태는 선두 5번 김종모가 좌전안타를 치고 출루, 득점 기회를 잡았다. 다음 타석에 들어선 김성한은 MBC 선발투수 오영일을 맞아 초구에 파울, 2구째 스트라이크를 그냥 흘려보내 볼카운트가 몰렸다.
3구째를 기다리던 김성한은 오영일이 투수판을 밟은 채 셋 포지션 자세에서 좀체 투구를 하지 않고 시간을 끌다가 투구동작을 취하려는 찰나, 다급한 목소리로 “타임”을 외쳤다. 하지만 김광철 주심은 그 외침을 묵살했다. 그리곤 오영일의 3구째에 손이 번쩍 올라갔다. 삼진 아웃. 오영일은 그 당시 투구 인터벌이 길기로 유명한 투수였다. 

[한국프로야구 난투사](48)‘타임’ 요청 묵살이 부른 김성한 항의의 대가…156연속경기 출장 멈춤

김성한이 열을 제대로 받았다. 타임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주심을 향해 거친 언사로 따지며 헬멧과 배트를 바닥에 패대기쳤다. 그 순간, 김광철 주심이 “퇴장”을 외치자 덕 아웃으로 향하던 김성한은 유니폼 윗도리를 벗어부치고 씩씩거리며 김광철 주심을 향해 무언가 상소리를 날렸다.
김성한은 그 소동으로 이튿날인 21일 한국야구위원회(KBO) 상벌위원회로부터 4게임 출장정지에 벌금 20만 원의 징계를 받았다. 벌금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출장정지는 김성한으로선 뼈아팠다. 1982년 원년 개막전부터 그 경기까지 이어갔던 156게임 연속경기 출장 기록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한국프로야구 난투사](48)‘타임’ 요청 묵살이 부른 김성한 항의의 대가…156연속경기 출장 멈춤
 
김성한은 그에 앞서 8월 10일 경기로 프로야구 선수 가운데 최초로 150게임 연속출장 기록을 세웠던 터였다. 1982년부터 투수와 타자로, 1루, 3루를 보는 것은 물론 때로는 지명타자로 나서는 등 ‘만능선수’로 팬들의 아낌없는 굄을 받았던 그였다. 그의 이른바 ‘오리 궁둥이’ 타법도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1982년에는 빈약한 해태 마운드의 한 축을 맡아 10승 5패, 평균자책점 2.89에 타율 3할 5리, 13홈런, 69타점을 올렸던 김성한은 1983년에도 투수로 뛰었고, 타격은 전년보다 못해 침체, 신경이 곤두서 있던 참이었다.
김성한이 퇴장을 선언 당하자 김응룡 감독이 달려 나와 주심에게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김응룡 감독은 경기 후 “규정에 따라 승복은 하지만 메이저리그의 경우 타자가 정당한 이유로 타임을 요청했을 때 들어주고 있다”며 제자의 항의를 정당화했다.
그 경기를 기록했던 박기철 기록원은 공식 기록지 비고 난에 ‘19:05 김성한의 2-0 때 투수 오영일이 Set Position에 들어가자 타자가 타임을 요구. 주심은 이에 응하지 않고 플레이를 진행. Strike Out 후 심한 Appeal을 한 김성한을 퇴장. 19:12 해태 경기거부. 19:15 경기 속행’으로 기록해 놓았다.  
[한국프로야구 난투사](48)‘타임’ 요청 묵살이 부른 김성한 항의의 대가…156연속경기 출장 멈춤
재일교포 주동식을 완투시킨 해태는 그날 이른바 ‘공포의 KKKKKKK(김일권, 김일환, 김준환, 김봉연, 김종모, 김성한, 김무종) 타선’을 선보이며 오영일이 완투한 MBC에 1-0 영봉승을 거두고 한국시리즈 첫 제패를 향한 한 고비를 넘어섰다. 무려 7명의 ‘K 타자’가 1~7번 타순에 선발 출장했고, 김성한 6번 3루수로 나갔다. 
30년도 더 지난 그 때 그 순간을 김성한(한화 이글스 수석코치)은 아직도 잊지 않고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첫 퇴장이었다. 투수는 오영일이었고 무사 1루였다. 2스트라이크 노볼이었는데 오영일이 셋 포지션에서 공을 오래 갖고 있어 ‘타임, 타임, 타임’을 외치고 타석에서 벗어났다. 김광철 주심이 ‘타임’을 충분히 받아줄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나오고 보니 주심은 보호대를 풀지 않았다. 그 사이에 오영일이 공을 던졌다. 들어온 공은 살짝 낮은 볼이었는데 스트라이크를 외쳤다. 순간 열이 받아서 ‘타임을 왜 안 받아주느냐’며 따졌다. ‘타임’을 안 받아 준 것도  화가 나는데 낮은 공을 스트라이크로 선언해 내가 헬멧을 던지고 나왔다. 주심이 ‘더 이상 어필을 하지마라고’ 했지만 성질나니까 헬멧을 던졌는데 ‘퇴장’을 외쳐서 그러면 유니폼 벗고 한 번 붙어보자는 제스처로 윗도리를 벗어부쳤던 것이다.” (하하)
세월에 희석돼 희미해진 사건이지만 김성한은 그 시절의 기억을 되살리며 호탕하게 웃었다. 김성한은 상황 설명을 좀 더 이어갔다.
“투수가 셋 포지션에 들어가 시간을 끌고 있으니까 타임을 부를 수밖에 없었어요. 내 타격자세가 좀 독특하잖아요.(오리 궁둥이 타법을 연상하시면 된다) 그렇게 오래 서 있으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자세여서 타임을 요청했는데 안 받아주니 열을 받았지요.”
1984년 에는 1983년에 ‘베스트 10’에 뽑혔던 김성한을 설명하는 ‘스타플레이어’ 난에 이렇게 설명해 놓았다.
“선수층이 그리 두텁지 못한 해태가 83시즌을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급한 자리에 어디든지 세울 수 있는 김성한의 공이 무척 컸다.(중략) 김성한의 타격자세는 매우 독특하다. 배트를 비스듬히 세워드는, 마치 사무라이가 日本刀(일본도)를 잡은 폼이다. 그런 폼으로는 도저히 안타를 칠 수가 없을 것 같은데도 계속 맹타를 과시한다. 흠이 있다면 투수가 공을 던지기도 전부터 힘이 들어가 투수에게 타이밍을 뺏기기 쉽다는 것. 8월 20일의 퇴장사건도 김성한의 타격자세가 문제의 시초였다.”고.
그 경기의 주심이었던 김광철 한국야구심판학교장은 “오영일이 투구 동작에 이미 들어가 김성한의 타임 요청을 안 받아들였다”면서 “그해 시즌 후 미국 심판학교에 연수를 갔을 때 그 경우를 물어봤다. 미국 심판들은 ‘메이저리그에서도 그와 비슷한 사례가 많아 시비 거리가 되곤 하지만 타자가 타임을 요청하는 것은 아직 준비 자세가 안 됐다는 신호이므로 자칫 투수의 공에 부상당할 위험성도 있어 받아들이는 게 관례’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뒤로 우리 프로야구도 타자의 타임 요청을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바꾸었다.”고 말했다.
김성한은  타자가 ‘타임’ 요청을 악용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투수가  던지려고 하는데 타자가 갑자기 (타석에서) 나가버리는 일도 있다. 타임을 악용하는 경우인데, 그런 순간에는 투수가 움칫해 보크를 범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런 문제를 없애려면 타자의 타임요청을 받아주면 된다. 투수가 약간 불평불만을 할 수가 있고 기분도 나쁘겠지만 원인무효가 되니까 투수의 보크도 없어지는 것이다.”
김성한은 무엇보다 그 일로 인해 연속경기 출장 기록이 중단 된 것에 아쉬움을 표시했다.
“당연히 연속경기 중단이 아쉬웠지요. 그 뒤로는 의지가 꺾여 (컨디션이)안 좋아도 나갈 수 있었는데도 다음 경기를 포기하고 의욕이 떨어지는 경험도 했어요.”
☞‘타자의 타임 요청을 언제 받아줘야 하는가.’ 같은 것은 명문화된 규칙이 없다. 투수가 투구동작, 즉 다리를 올리는 키킹 동작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정지하면 다칠 우려가 있어 심판 내부에서는 그런 경우 주심의 재량으로 판단토록 해놓고 있다. 투구 동작에 들어가기 전에는 타임 요청을 다 받아들여준다는 것이지만, 거꾸로 투수가 어필하는 경우도 있어 애매하다. 
에는 타자가 타석을 벗어나는 행위에 대한 가능한 경우와 규제를 명시해 놓았다.
‘경기의 스피드업’ 타자 조항을 보면,
‘①타격 중 불필요한 행위로 타석을 벗어날 수 없다. 타자가 타석을 이탈 할 수 있는 경우는 a. 타격 행위를 한 후 중심을 잃었을 때 b. 몸 쪽 공을 피하기 위해 타석을 이탈하는 경우 c. 양 팀 벤치에서 타임을 요청할 때 d. 폭투나 패스트볼이 일어났을 경우 e. 투수가 투구 뒤 벌을 받고 마운드를 벗어났을 때 f. 포수가 수비 지휘를 위해 포수석을 벗어났을 때 g. 부상 또는 선수의 몸에 이상이 생기거나, 배트 교환 등 정당한 이유로 타석을 벗어났을 때 h. 천재지변이나 그와의 경우로 인하여 경기가 중단되었을 때 I.기타 주심이 인정하는 경우(2006.4.4 감독자 합의)
②타자의 불필요한 타임 요청은 불허한다.’로 돼 있지만 ‘불필요한 타임’이라는 추상적인 표현이 들어 있어 ‘귀걸이 코걸이’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2012년 7월 2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렸던 ‘한‧ 일 프로야구 레전드 매치 2012’에서 오랜만에 선을 보인 김성한의 ‘오리 궁둥이 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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