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도'같은 영화들은 왜 죄다 천만 프레임에 갇힐까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4.07.17 15: 11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어느 기업이나 자영업자나 돈을 벌려면 다음 두 가지 중 반드시 하나 이상을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는 마진율을 높이는 것이고, 둘째는 회전율을 늘리는 것이다.
두 가지가 모두 맞아떨어지면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동반 상승하지만, 만일 둘 중 하나라도 삐걱대면 순이익은 감소하게 된다. 수중에 돈은 들어오는데 정작 이득은 나지 않는 갑갑한 상황인 것이다. 실탄이 넉넉하다면 그나마 버티기 모드라도 들어가겠지만, 그렇지 않을 시엔 인건비도 못 건지는 그야말로 악순환이 시작되는 셈이다.
최대 황금어장인 7~8월 영화계에도 매출과 영업이익을 위한 빅3 투자사들의 혈전이 예고돼 있다. 쇼박스가 제작에 참여한 '군도'(윤종빈 감독)를 시작으로 한주 간격으로 CJ엔터테인먼트의 '명량'(김한민 감독)과 롯데엔터테인먼트의 '해적'(이석훈 감독)이 잇따라 관객을 모신다. 세 영화 모두 여름시즌 텐트 폴 영화를 겨냥한 작품이라 만듦새는 평작을 상회한다.

쇼박스는 2년 전 이맘 때 최동훈의 '도둑들'로 크게 웃었지만, 작년엔 김용화의 '미스터고'로 흥행 참패를 맛보며 영화가 하이 리턴, 하이 리스크 업종이란 사실을 새삼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제 아무리 업력이 쌓여도 관객들의 외면 앞에선 150억 원이 하루아침에 곱하기 0의 상수가 될 수 있음을 경험한 사례였다. 만약 가을 라인업 '관상'이 아니었다면 누군가 책임지고 옷을 벗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텐트 폴 영화들의 공통점은 모두 천만을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천만이란 상징성은 국내 인구 대비 최고치의 관객 동원력과 투자 배급사 임직원들의 안정적인 고용 보장을 의미한다. 상반기 '우는 남자' '좋은 친구들'의 실패로 사내 분위기가 가라앉은 CJ도 '명량'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명량'이 천만 영화만 된다면 투자 1, 2팀의 모든 과실이 다 용서되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과연 '군도' '명량' '해적' 중 천만 영화가 나올 수 있을까. 천만은 하늘이 도와야 한다는데, 올 여름 하늘은 다소 바쁠 것 같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여름 극장가에 두 편의 천만 영화가 나온 적은 있지만, 올해는 상황이 좀 다르다는 게 배급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적어도 당시엔 두 영화가 2주 이상 떨어져 작품당 집중도가 높았지만, 올해는 일주일 간격이라 스크린 수 싸움이 한층 더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만약 '군도'나 '명량' 위주로 장이 선다면 '해적'은 외롭게 고립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앞선 두 영화가 천만에 근접하면 9월초까지 장기 상영 될 테고 '해적'은 그만큼 후발 주자로서 열악한 스크린 수와 싸워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롯데가 제아무리 지방에 강해도 이미 과녁에 명중된 화살을 뽑아낼 정도의 실력과 힘은 갖고 있지 않다.
이 얘기는 거꾸로 '군도'나 '명량' 중 어느 하나가 300~400만 언저리에서 다리가 풀리면 '해적'에겐 커다란 호재가 될 것이란 말이기도 하다. '병맛' 코드가 가미됐지만 '군도'나 비장미 넘치는 '명량'이 모두 진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만큼, 웃기기 위해 태어난 가족 코미디 '해적'에게로 손님이 몰린다면 이 영화가 뜻밖의 천만 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심심찮게 나온다. 여러모로 객관적 전력이 뒤지는 '해적'이 코믹을 담당한 유해진의 '음파음파'에 잔뜩 기대를 거는 배경이기도 하다.
한편에선 CJ와 롯데가 자사 멀티플렉스 CGV와 롯데시네마를 동원해 신경전을 벌일 경우, 오히려 쇼박스의 '군도'가 반사이익을 챙길 수 있다는 흥미로운 분석도 나온다. CGV가 롯데표 '해적' 보다 '군도'를 더 걸어주고, 롯데시네마도 '명량' 대신 '군도'에게 스크린을 더 열어줄 경우 오히려 극장이 없는 쇼박스가 두 회사 싸움의 진정한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학습효과다. 실제로 쇼박스와 NEW는 CJ와 롯데 영화가 서로 세게 맞붙을 때 조용히 매복했다가 최후 승자가 된 사례가 몇 번 있다. '너희들은 피터지게 싸워라. 관객들은 우리들이 모시겠다'는 영리한 개봉일 데이팅 전략이었다.
최소 2000만 관객의 표심을 놓고 빅3 투자사가 시즌마다 사활을 거는 건 익숙해진 풍경이지만, 이제는 해묵은 천만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될 때라는 생각이다. 자본주의의 자유 경쟁과 승부욕이 발전의 동력인 건 부인할 수 없지만, 천만 프레임에 갇히기 보다는 손익분기점 넘는 300만 영화 세 편 나오는 게 한국 영화 산업을 위해선 훨씬 이롭기 때문이다.
도박판에서 돈 버는 건 하우스이고, 내기 당구의 승자는 결국 당구장 주인이라는 말이 있다. 상반기 죄다 적자였던 멀티플렉스들이 올 여름 대첩의 최종 위너가 될 것 같은데 잔뜩 부풀려진 팝콘 가격부터 정상화해줄 기특한 생각은 없는지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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