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핫스팟] '해적', 진지함 입은 코믹 사극…웃음 카운터
OSEN 박현민 기자
발행 2014.07.24 08: 41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감독 이석훈, 이하 해적)이 베일을 벗었다. 육해공을 오가는 해적과 산적의 칼부림, 관군들과의 피 튀기는 격돌, 잔악무도한 악역, 공 들인 CG의 향연…. 사뭇 진지함이 묻어날 듯한 이 해양 어드벤처 액션 사극물은, 곳곳에 포진한 의외의 웃음 씨앗들로 결국 유쾌한 코믹 사극으로 꽃피었다.
24일 오후 서울 광진구 자양동 롯데시내마 건대입구점에서 첫 공개된 '해적'은 여느 진중한 사극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비장함이 감도는 역사적 사건과 숨을 잠시 멈추고 전율을 돋게 만드는 검술 액션이 결합해 몰입도를 높였다. 하지만 이 영화의 본질은, 단언컨대 코믹이었다.
'해적'은 조선의 국새를 삼켜버린 귀신고래를 잡기 위해 바다로 내려온 산적 장사정(김남길)과 바다를 호령하는 여자 해적 여월(손예진), 그리고 야욕과 복수심에 불타는 두 남자 모흥갑(김태우 분)과 소마(이경영)가 한데 뒤엉켜 발생하는 이야기가 큰 줄기다.

시선이 쏠리는 곳은 단연코 여자 해적으로 변신한 손예진이다. 여러 작품을 수시로 오갔지만, 대중들의 머릿 속엔 여전히 청순하고 가냘픈 미인의 대명사로 깊숙하게 박혀있는 그의 이미지가 여걸, 게다가 바다의 도적으로 등장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관객의 안구에 신선함을 부여한다.
변신이 강렬한 건 분명했다. 초반 등장부터 거친 남자들의 무리에 뒤섞여 화려한 와이어 액션과 검술신이 스크린에 펼쳐지기 때문. 과격함에만 치중하지 않은, 가볍고 섬세한 동작들이 '떼액션' 속에서도 여월의 존재를 단연 돋보이게 만든다. 물론, 가려도 가려도 빛이 나는 외모 역시 함께 눈에 들어오는 건 도무지 어쩔 수 없다.
김남길은 무거움을 내려놨다. 앞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봤던 비담과 유사 캐릭터를 예상했다면, 제대로 오판이 될 것. "김남길 본연의 모습"이라 자타가 입을 모았던 장사정은 가볍고 허술해 정감이 가는 인물이다. 배신의 상처와 진중함은 가려놓은 채, 언제나 한없이 가벼운 모습으로 일관하며 상황을 유연하게 이끈다.
영화를 통틀어 가장 웃긴 이를 꼽자면 철봉(유해진)이다. 해적이면서 생선을 싫어하고, 배멀미에 시달린다는 독특한 캐릭터 설정은 유해진의 코믹함에 시너지를 얹혔다. 해적을 관두고 산적으로 이직해 두 조직의 교집함에 서 작품 전반에 걸쳐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해적'의 진짜 웃음 복병은 예상 범주를 벗어난 곳에서 등장한다. 여러 작품에서 웃음 선봉대로 나서왔던 유해진, 박철민, 조달환, 김원해 등이 시종 잽과 스트레이트, 훅을 곁들인 웃음 펀치를 날려 관객의 허파를 자극한다면, 진짜 차별화된 웃음은 의외의 상황, 의외의 인물에게서 촉발된다. 예상 못한데서 얻어맞는 카웃터 웃음은, 분명 그 통증이 컸다.
'해적'이라는 영화의 타이틀로부터 시작되어, 언론배급시사회 및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이석훈 감독의 "'캐리비언의 해적'보다 더 재미있다"는 파격 발언이 이틀간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지만, 실상 두 영화의 비교는 무의미하다. 심지어 '해적'에서 등장한 거대 물레바퀴 추격신이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망자의 함' 속 명장면을 연상케도 했지만, (이석훈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오마주는 아니다.
잭 스패로우(조니 뎁)를 압도할만한 인물은 '해적'에 없다. 그 대신에 좀 더 폭 넓고 다양하게 곳곳에 포진한 여러 인물들이 짜임새 있게 펼쳐져 조직적인 웃음의 얼개를 짜맞춘다. 시도는 좋았으나, 스케일 면에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따라잡긴 역시 역부족이다. 특히 선박 CG나 거대 물레바퀴 장면은 왠지 아쉽다.
오히려 많은 이들이 우려했던 귀신고래 CG는 (김남길의 표현을 빌리자면) 다큐멘터리를 떠올릴 만큼 꽤 볼만하다. 귀신고래라고 해서 영화 '칠광구' 속 괴물처럼 주인공의 목숨을 위협하진 않으니, 혹 조선판 '칠광구'를 속으로나마 기대했던 이가 있다면, 그대로 넣어두길 바란다.
'어디 한 번 웃겨보라'는 생각으로 가면, 초반 30~40분이 엄청 지루할 수 있다. 진지한 3년 전 장면들이 끝난 이후에도 입가에 주름만 생기는 '피식'이 연발한다. '대체 어디가 웃겨'라는 생각이 스물스물 떠오를 때쯤 본격적인 웃음 연타가 시작되니 조금의 인내심은 필요하다. 이 영화는 분명 '빅잼' 보다는 '꿀잼'이다. 웅장하게 울려퍼지는 BGM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묵직한 카운터성 웃음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다분하다. 12세 이상 관람가. 8월 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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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포스터 및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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