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워런 버핏이 군침 삼킬 만한 저평가 우량주 같은 코미디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4.07.25 07: 07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가치투자로 유명한 워런 버핏은 저평가된 우량주를 공략하는 투자법으로 존경받는 글로벌 부호가 됐다. 시장의 오해나 일시적 슬럼프 등으로 주가가 기업 가치를 현저하게 밑돌 때 주식을 사들인 뒤 주가가 제값에 도달하면 매도해 수익을 올리는 방식이다.
만약 오마하의 현인 버핏이 올 여름 개봉하는 국내 빅3 영화 중 하나에 투자한다면 아마 ‘해적’이 그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높다. 외견상 ‘군도’ ‘명량’에 비해 중량감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내실 면에선 가장 실속 있는 저 PBR 주식 같은 속성을 여러모로 갖췄기 때문이다.
조선 건국의 운명이 걸린 국새를 찾기 위한 해적과 산적의 대결이란 식재료도 신선했고, 무엇보다 웃음 포인트가 예상 지점 보다 많이 깔려있었다. 유치한 말장난 식 개그가 아닌 절묘한 상황 코미디를 시도한 감독의 의도가 여러 곳에서 적중했고, 특히 해적에서 산적으로 전향한 철봉 역 유해진은 등장할 때마다 어김없이 크고 작은 폭소탄을 터뜨려줬다.

생전 바다를 본 적 없는 육지 산적들이 한 몫 챙길 생각에 국새를 삼킨 고래잡이에 무모하게 나서며 벌어지는 좌충우돌 고생담이 기본 뼈대다. 허세 가득한 산적 두목 장사정(김남길)이 역시 같은 고래를 쫓는 해적들과 해상 레이스를 벌이고, 이 과정에서 자신보다 검술이 뛰어나고 어른스러운 여월(손예진)과의 달달한 로맨스가 부록처럼 전개된다.
멀티 캐스팅의 착시 때문이겠지만 평균 이하의 오합지졸 멤버들이 팀을 나눠 미션 수행에 나선다는 점에서 예능 프로 ‘무한도전’이 연상되고, 주인공들이 쉴 새 없이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런닝맨’이 겹쳐지기도 한다. 12세 가족 코미디를 표방했지만 유치하지 않으면서 애써 돌려 말하지 않는 정공법 코미디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시퀀스가 연결되는 템포와 속도감도 대체로 경쾌하고 리드미컬했다.
 김남길은 지금까지 어떻게 이런 코믹감을 숨기고 살았는지 의아할 정도로 피트감 좋은 맞춤복을 차려입은 느낌이었다. 입만 살아서 멋있는 척은 혼자 다 하지만 위기 때마다 가장 먼저 꽁무니를 내빼고, 부하들의 서열을 수시로 바꾸며 꼼수를 부리는 장면에서도 적지 않은 웃음이 나왔다. 거창하게 산적이 나아갈 길을 읊조리며 은근슬쩍 손예진을 향한 연정을 고백하는 신도 기억에 남는다.
해적단을 이끄는 소단주 역 손예진도 잔잔한 코믹부터 온 몸을 내던지는 와이어 액션까지 전천후로 소화해 눈길을 끌었다. 이 방면 최고로 손꼽히는 하지원이 긴장해야 될 정도의 숙련도와 열정이었다. 여름 텐트 폴 영화의 유일한 여주인공으로 이제 액션까지 되는 만능 배우라는 수식을 얻기에 충분한 몸놀림이었다. 인위적인 고아인 여월이 어릴 때 인연을 맺은 귀신 고래와 심해에서 교감하는 장면에선 왜 감독이 한사코 손예진을 고집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서로 호흡이 좋아 현장에서 손남길, 김예진으로 불렸다는 두 주연이 ‘해적’의 최전방 포워드라면, 그라운드를 가장 많이 뛰며 열심히 공을 배급해준 미드필더는 단연 유해진이다. 한때 여월이 거느리는 해적이었지만 멀미가 심하고 생선이 입에 안 맞아 뭍으로 도망친 산적 철봉 역을 유해진 만큼 잘 살릴 수 있는 배우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저질 팀워크 탓에 산적 내부에서 구박덩어리 엑스맨 처지이지만, 철봉이 곤경에 빠져 산전수전 겪을 때마다 유쾌 지수는 상승 곡선을 긋게 된다.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았던 컴퓨터그래픽은 ‘미스터고’로 실력을 쌓은 덱스터 스튜디오의 손품 덕분에 크게 흠잡을 곳이 없었다. 다만 웃자고 만든 영화인데 필요 이상으로 조선 건국을 둘러싼 정치 비판과 풍자를 곁들인 것 같아 다소 아쉬웠다. ‘7급공무원’ ‘추노’를 쓴 천성일 작가와 ‘댄싱퀸’으로 400만 관객을 모은 흥행사 이석훈 감독이 만났다. 8월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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