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평의 야구장 사람들] 어설픈 덕아웃 TV 설치 금지 규정으로 오심 공인
OSEN 천일평 기자
발행 2014.07.25 07: 59

이상한 한국형 비디오 판독 규정 때문에 심판의 오심이 그대로 인정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7월 24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삼성-롯데의 3회말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롯데의 선두타자 용덕한이 안타를 때리고 1루에 나가자 다음 신본기는 번트를 댔습니다. 삼성 투수 윤성환은 이 타구를 잡아 2루에 송구했는데 김성철 2루심은 세이프를 선언, 무사 1, 2루가 됐습니다.
삼성 유격수 김상수는 투수의 송구가 먼저 왔다고 제스처를 취했고 삼성 류중일 감독은 덕아웃 밖으로 나왔지만 이때 류 감독은 비디오 판독을 곧바로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류 감독은 덕아웃 앞쪽에서 서성이다가, 뒤늦게 김성래 수석코치와 함께 김풍기 구심과 김성철 2루심에게 어필했지만 김풍기 구심은 합의판정 없이 최초 판정으로 속개 시켰습니다.

이날 사직 경기 중계를 맡은 XTM에서도 플레이 직후 리플레이 대신 류중일 감독을 비쳐줬으나 잠깐 나온 다른 각도 화면에는 아웃이 분명했습니다. 류중일 감독은 덕아웃에 TV가 설치되지 않아 코치진이 멀리 떨어진 구단 관계자에게 연락을 받느라 시간이 지체된 것입니다.
롯데는 무사 1, 2루의 기회에서 다음 타자 정훈의 번트 실패로 2루주자가 3루에서 태그 아웃되고 전준우와 손아섭은 삼진과 범타로 물러나 한 점도 내지 못했으나 삼성으로서는 커다란 위기였습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 22일부터 재개된 2014 프로야구 후반기 개막과 함께 심판 합의 판정 제도를 시행하기로 하였습니다.
합의 판정은 KBO가 주최하는 모든 경기(시범경기, 페넌트레이스, 올스타전, 포스트시즌)을 대상으로 하며, 감독이 요청할 경우 TV 중계화면을 활용하여 실시한다고 밝혔습니다. 단, 중계화면에 노출되지 않은 플레이나 중계 미편성 경기, 방송 지연 또는 중단 등으로 판독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심판의 최초 판정을 최종으로 하며, 감독은 심판 팀장의 판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올해부터 실시하고 있는 비디오 판독 제도를 우리도 도입한 ‘한국형 비디오 판독 제도’입니다. 보다 공정한 판정을 위해 TV 중계 화면을 이용키로 한 것이나 TV 중계를 이용한 비디오 판독이라 하면서 어설픈 ‘합의판정’이란 명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잘못된 규정 때문에 제대로 실시되기 어렵습니다. 롯데는 처음 심판 합의 판정을 대비해 사직구장 덕아웃에 설치했지만 TV를 켜지 못하고 있습니다. 덕아웃 가장 가까운 곳에 TV를 설치해 심판 합의 판정의 효율을 높이고자 했던 롯데의 노력은 '덕아웃 내 전자기기 설치 및 사용 금지' 조항에 걸린 것입니다.
롯데는 덕아웃과 라커룸 사이에 50인치 TV를 설치해 코칭스태프가 최대한 빨리 경기 장면을 확인해 심판 합의 판정 요청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KBO는 롯데에 연락해 "TV를 켤 수 없다"고 알렸습니다. TV를 설치한 장소가 규정 위반이라는 것입니다. 대회요강 26조는 '경기 중에 구단 직원 및 관계자는 무전기, 휴대전화, 전자기기 등 정보기기를 사용해서 감독, 코치, 선수에게 그 경기에 관한 정보제공을 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명시돼 있는데 이를 적용한 것입니다. KBO는 2009년부터 각 구단이 덕아웃에서 사용한 노트북 등 전자기기의 유입을 금지 시켰습니다.
롯데가 설치한 TV는 덕아웃에 있지 않지만, 덕아웃에서 시청이 가능한 곳에 자리했습니다. KBO는 이를 '덕아웃 내에 위치한 것과 다름없다'고 해석해 롯데의 'TV 시청'을 금지한 것입니다. 또 사직구장을 방문한 원정팀 덕아웃에는 TV를 설치하기 어려워 롯데가 자기 팀만 유리하게 됐다는 비판도 일었습니다.
하지만 TV 중계 화면을 통해 비디오 판독 제도를 실시하는 한국형 제도에서 감독 등 코칭스태프와 구단 관계자가 10초 내지 30초 이내에 감독에게 심판의 판정 정확성 여부를 알리기 어렵게 만든 것은 올바른 조치가 아닙니다.
TV 중계 화면이 합의 판정에 사용되도록 제도를 만들어 놓고도 감독 코칭스태프가 TV와 멀리 떨어져 시간을 소비해 어필한 기회를 놓치도록 한 것은 분명히 잘못된 규정입니다.
합의 판정 요청은 해당 플레이 종료 후 30초 이내, 이닝 교체 상황이면 10초 이내에 해야 합니다. 시간에 쫓길 수 밖에 없는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당연히 TV를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곳에 두고 싶어 합니다.
뻔히 오심이 났는데도 코칭스태프가 TV를 빠른 시간 내 보지 못해 오심을 알고도 넘어간다면 무엇 때문에 비디오 판독 제도를 시행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OSEN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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