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를 저어 태평양을 건너다”, 43일간의 처절한 항해로 우승한 최준호씨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4.07.31 10: 48

보이는 것이라곤 작열하는 태양과 푸른 파도뿐이다. 믿어야 할 것은 나 자신과, 나와 팀을 이룬 세 명의 동료. 한국인 최준호 씨를 포함한 4명의 도전자를 태운 작은 보트는 미국 캘리포니아 몬트레이를 출발해 단 1분도 쉬지 않고 태평양 망망대해를 나아갔다.
그렇게 노를 저으며 외로운 싸움을 해 나간 지 43일째. 마침내 저 멀리 하와이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안전하게 호놀룰루 항에 배를 정박시키고 난 뒤에야 안도감과 벅찬 성취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함께 출발한 13개 팀 중에서 그들보다 먼저 항구에 다다른 팀은 없었다. 공식기록은 43일 5시간 30분. 그레이트 퍼시픽 레이스(Great Pacific Race, 이하 GPR)의 새 역사가 4명의 용감한 도전자들에 의해 쓰였다.
초인적 투지를 필요로 하는 이 대회에는 어마어마한 상금이 걸린 것도 아니었다. 한 푼의 우승상금도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거액의 대회 참가비를 내야 한다. 최준호 씨는 사비 4,500만 원을 들여 대회에 참가했다. 남는 것은 처절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성취감’과 ‘기네스북 등재’ 정도이다.

1980년생인 최준호 씨(서울 성북구 길음동)는 대회를 마치고 지난 25일 귀국했다. 최 씨가 포함 된 ‘연합국(Uniting Nations)’ 팀은 43세의 안드레 키에르스(네덜란드), 38세의 캐스퍼 제이퍼(영국), 30세의 크레이그 헤케트(뉴질랜드)로 구성 됐다. 선장격인 키퍼 역은 현직 심해 잠수사라 바다가 친근한 뉴질랜드 청년이 맡았다.
연합국팀은 지난 6월 10일 몬트레이를 출발해 7월 23일 호놀룰루에 1등으로 도착했고 OSEN이 최 씨를 인터뷰한 30일, 영국의 대학 조정선수 출신 참가자로 구성 된 팀이 3등으로 들어왔다. 함께 출발한 13개 팀 중에서 6개 팀이 중도에 포기했고 호놀룰루에 입항하지 않은 4개 팀은 지금 이 시간에도 죽을 힘을 다해 노를 젓고 있을 것이다. 
대회를 마치고 귀국해 일상으로 돌아온 최 씨는 극도의 피로감에서 완전히 회복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도전에 성공했다는 성취감에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몬트레이에서 출발할 때 몸무게가 78kg이었는데 목적지에 도착하니 68.5kg이 돼 있더라”는 최 씨는 “배에서 내리니 걸음을 걷기가 어려웠다. 노를 젓느라 왼손에 무리가 가 지금도 주먹을 못 쥐고 있다”고 말했다.
 
GPR 대회는 올해 창설 됐다. 일본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요트로 6개 월만에 횡단한 경력을 갖고 있는 크리스 마틴이라는 영국인이 대회를 기획해 창설했다. 최 씨가 속한 연합국팀이 탄 배도 마틴이 소유하고 있는 보트다.  
최 씨는 이 대회에 참가하게 된 이유를 “운명적”이라고 설명했다. 마케팅 매니저로 일하고 있던 최 씨는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자신의 생일인 8월 7일에 주목하게 됐다. 도대체 이 날, 과거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를 검색하던 중 1980년 8월 7일 ‘한국의 젊은이 2명이 요트로 태평양을 횡단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된다.
최준호 씨의 가슴이 쿵쾅거렸다. “바로 저것이다.” 한국인이 요트로 태평양을 건넜으니 나는 노를 저어 건너보자. 관련 키워드로 검색을 해 보니 크리스 마틴이 기획한 대회가 눈에 들어왔다. 최 씨는 곧바로 마틴에게 메일을 보냈고, 지난 5월 5일 몬트레이로 날아가 한달 여 간의 합숙에 들어갔다.
 
대회 규정은 엄격했다. 대회 참가 보트에는 ‘옐로우 브릭’이라는 위치 추적장치가 부착 되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의료지원 요트가 참가 보트를 뒤따르는 것뿐이었다. 나머지 모든 것은 참가자가 배 안에서 해결해야 했다.
연합국 팀은 2인 1조로 노를 저었다. 처음 3주간은 주간 1시간 교대, 야간 2시간 교대 방식을 취했다. 그러다 조정의자가 고장이 나면서 밤낮으로 1시간씩 교대를 했다. 한 시간 동안 노를 젓고 나머지 한 시간은 휴식을 취하는 방식이었다.
1시간 휴식하는 동안에 식사를 하거나, 용변을 보고, 수면도 취해야 한다. 식사는 전투식량으로 70인분을 챙겼고 물을 공급받기 위해서는 ‘자동 워터 메이커’ 장비를 구비했다. 워터 메이커는 그나마 1주일만에 고장이 나 예비로 준비했던 워터 메이커를 수동으로 작동시켜 만들어 먹었다.
장비 지원은 방향을 잡아주는 GPS 시스템과 통신을 위한 VHF 라디오, 그리고 위성전화가 전부였다.
 
길이 24피트(약 7.3미터), 너비 6피트(약 1.8미터)의 초라한 보트는 오로지 인간의 힘만으로 대자연과 맞서며 24시간 쉬지 않고 달렸다. 중간에 산더미 같은 파도도 만났다. 첫 주에는 5미터가 넘는 파도가 쳤고 마지막 주에는 폭풍우를 만나 고생했다. 하지만 그 어떤 고난도 그들의 앞길을 막지는 못했다.
최 씨의 모험에는 군 복무 경력도 도움이 됐다. 수방사 특경대에서 복무한 최 씨는 “팀을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정신을 군대 생활에서 배우고 나왔기 때문에 좁은 공간에서 사람과 부딪히며 생기는 갈등을 잘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 씨의 모험을 괴롭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사람’과 ‘잠’이었다. 처음 만난 4명이 한 팀이 되고 짧은 합숙을 거쳐 자신과의 극한 싸움에 나서도 보니 서로가 극도로 예민한 상태였다. 물론 배려는 하지만 작은 행동 하나가 상대를 자극할 수 있는 상황을 이겨내는 게 어려웠다.
자신과의 싸움에서는 잠이 문제였다. 한 시간을 자고 한 시간을 노를 젓는 일을 43일간 지속한다는 것은 웬만한 정신력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 밤 시간을 푹 자고도 아침 출근길 눈 뜨기가 얼마나 힘든 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최준호 씨는 이 엄청난 일을 “나는 도전했고, 그리고 해 냈다”는 성취감 하나를 위해 해냈다. 최 씨는 “4명이 노를 저어 태평양을 처음으로 건넜고, 그것도 그 어느 팀보다 먼저 들어 갔다.  이는 전 세계에서 4명만이 갖고 있는 기록이고, 아시아에서는 내가 유일하다.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고 전환점이고 의미였다”고 웃으며 말했다.
100c@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