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수, 또 한 번 인천 울린 '여우같은 독수리'
OSEN 김희선 기자
발행 2014.09.14 06: 30

"1.5군으로 나오니까 살살하라더니... 여우같은 놈이라고 그랬죠."
김봉길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최용수 FC서울 감독에게 '여우같다'고 촌평을 남겼다. 이 말을 전해들은 최 감독은 "김 감독님이 나를 얼마나 아끼시는데"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이내 "지은 죄가 있다보니 피하고 싶다"고 멋쩍게 웃었다. 연세대 선후배 사이로 평소 누구보다 돈독한 사이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했다. 지난 21라운드 5-1 승부가 두 팀 사이에 묘한 기류를 남겼기 때문이다.
최 감독이 이끄는 서울은 지난달 1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4 21라운드 경기서 5-1 대승을 거뒀다. 리그와 FA컵,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하는 서울은 박희성, 고광민, 이상협, 김남춘 등 벤치 멤버를 대거 기용하며 1.5군으로 경기에 나서 거둔 승리이기에 의미가 각별했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인천은 그만큼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원정에서 5골이나 내주며 패한 것도 답답한데 상대는 정예멤버가 아닌 1.5군이었다. 5-1 패배가 트라우마로 남지 않도록 선수들을 다독인 김 감독은 한 달 후인 9월 13일 다시 한 번 서울 원정에 나서 그 때를 반추했다.
"어린 선수들이 많다보니 상암이나 수원처럼 많은 관중이 오는 경기장에서 긴장하는 것 같다. 이런 경기를 만힝 해봐야하는데, 지난 경기도 분위기에 압도당한 감이 없잖아 있다. 긴장하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라고 이야기했다"며 쓰디쓴 패배를 곱씹은 김 감독은 "그 때 당한 패배가 선수들 자존심을 자극했을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돌아봤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최 감독과의 사이에서 있던 짧은 에피소드 한 토막도 들려줬다. 보통 최 감독은 경기를 앞두고 상대팀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곤 한다. 하지만 이번 26라운드 '경인더비'를 앞두고는 전화가 오지 않았다는 것. 김 감독은 "지난 번 경기 때 전화했던 것이 미안했는지 전화를 안하더라"며 웃었다. 내용인즉슨, 지난 21라운드 경기를 앞두고 최 감독으로부터 "1.5군으로 경기에 나가니 살살하라"는 전화가 왔는데, 그러고는 냉큼 5-1 대승을 거뒀다는 것이다. 김 감독은 농담 섞어 "여우같은 놈"이라며 웃었다.
김 감독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최 감독은 그럴리가 없다며 한사코 고개를 저었다. 김 감독과의 돈독한 친분을 거듭 강조하며 "그러실 분이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친 최 감독은 이내 "우리가 당시 주전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4연승 쉽게 하시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다"며 순순히 시인(?)했다.
"지은 죄가 있다보니 피하고 싶다. 지난 경기 때 전반전 끝나고 (터널로)들어가는데 슥 보고 가시는 눈빛이..."라며 말꼬리를 흐린 최 감독은 넉살 좋은 미소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하지만 부산전(23라운드) 승리 후에 최고의 경기를 하셨다, 축하드린다고 했다"며 형님에 대한 예우를 차렸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변함없이 냉정한 법. '여우같은 독수리' 최 감독은 이날 경기서도 3-1 승리를 챙기며 인천을 다시 한 번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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