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 펜싱] '2관왕' 정진선과 이라진의 무게감, 더 아름다운 눈물
OSEN 이균재 기자
발행 2014.09.24 06: 15

'2관왕' 정진선과 이라진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동료에 대한 미안함과 동시에 그동안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환희의 눈물이기도 했다.
지난 23일은 한국 펜싱의 날이었다. 여자 사브르와 남자 에페 대표팀이 나란히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지연, 이라진, 황선아, 윤지수로 구성된 여자 사브르 대표팀(6위)은 고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안게임 단체전 결승서 혈투 끝에 중국(7위)을 45-41로 꺾고 정상에 올랐다. 정진선, 박경두, 박상영, 권영준이 피스트에 오른 남자 에페 대표팀(3위)도 숙명의 한일전서 25-21로 힘겹게 일본(18위)을 제압하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여자 사브르는 3전 4기 끝에 만리장성을 넘어섰다. 지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2006년 도하, 2010년 광저우서 중국의 벽에 막혀 3회 연속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지만 12년 만에 숙원을 이뤘다. 중국의 4연패를 저지하며 새 역사를 썼다. 남자 에페도 도하와 광저우의 영광에 이어 3연패의 금자탑을 쌓았다.

스포트라이트는 단연 2관왕의 주인공 정진선과 이라진이었다. 둘은 금메달을 확정지은 뒤 믹스트존서 눈물을 쏟아냈다. 인터뷰 도중 눈물이 앞을 가렸다. 말을 쉽사리 잇지 못했다. 눈물을 쏟고 가슴을 진정시킨 뒤에야 말을 이어나갔다. 비슷한 이유였다.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정진선은 "내 몫을 하지 못한 것 같아 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결승전을 앞두고 후배들에게 '부담감 없이 해라. 내가 마무리를 하겠다'고 했다. 근데 후배들이 더 잘했다. 1점 차로 쫓겼을 땐 죽고 싶었고, 머릿 속이 멍했다"면서 "개인전 결승전이 끝난 뒤 (박)경두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단체전 우승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고, 뛰는 내내 내가 잘해야 겠다는 부담감도 컸다"고 남 모를 속앓이를 털어놨다.
'맏형', '에이스'로서의 부담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개인전 결승서 본인에게 져 은메달의 아쉬움을 삼킨 절친 후배 박경두에겐 금메달을 선물하고 싶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1, 5번 주자로 제 몫을 해낸 정진선은 17-12로 크게 앞선 마지막 9번째 주자로 피스트에 올랐다. 미노베 카즈야스의 기세에 밀렸다. 20-19까지 추격을 허용했다. 눈앞에 다가온 2관왕과 단체전 3연패의 꿈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다. 종료 22초 전 정진선의 칼이 번뜩였다. 전광석화와 같은 공격으로 귀중한 득점을 뽑아냈다. 사실상 승기를 굳히는 결승점이었다. 정진선은 이후 마음이 급해진 미노베를 손쉽게 요리하며 25-21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이라진은 반대의 경우였다. 1, 4번 주자로 피스트에 서 단 5점 획득에 그치며 부진했다. 개인전 금메달리스트의 자존심은 짓밟혔고, 한국은 기선을 제압 당했다. 이라진은 당시 어려웠던 상황을 떠올리며 "개인전 보다 단체전이 부담이 돼 몸이 굳었고, 긴장을 했었다. 경기를 치르면서 내 플레이를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동료들이 다시 기회를 줬다. '신예' 윤지수와 '베테랑' 김지연의 추격이 이어졌다. 이라진은 동료들 덕에 35-32로 앞선 상황에서 8번째 선수로 피스트를 밟았다. 상대는 중국이 히든 카드로 내세운 리페이. 거침이 없었다. 예열을 마친 이라진은 마음껏 칼을 휘둘렀다. 40-33으로 크게 리드를 안긴 채 피스트를 내려왔고, 김지연이 승리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라진은 "우리는 눈물이 나올 정도로 많은 훈련량으로 너무 힘들었다. 뒤지고 있을 때 누구보다 동료들을 믿었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고된 훈련과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해준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이 한데 어우러져 나온 눈물이었다.
'펜싱 영웅' 정진선과 이라진의 눈물은 그 어떤 눈물보다 아름답고 위대했다.
dolyng@osen.co.kr
정진선-이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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