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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환의 사자후] 농구팬-KBL 총재, 넘을 수 없는 소통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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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서정환 기자] “경기당 85점이 안되면 언론사에도 야단을 쳐 달라.” 


요즘 많이 쓰는 신조어 중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란 말이 있다. 도저히 좁힐 수 없는 간극을 가리키는 말이다. 외국선수 2인 동시출전을 강행한 김영기 KBL 총재와 농구팬들의 의견 사이가 바로 ‘넘사벽’이었다. 각종 커뮤니티에서 2인 동시출전을 반대하는 의견이 전체의 80%를 넘고 있다. 하지만 총재의 굳건한 결심에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한국프로농구연맹(KBL)은 10일 오후 언론사를 상대로 규칙변경 설명회를 열었다. 본격적인 설명회를 앞두고 예정에 없던 김영기 총재가 취재진을 만났다. 지난 6일 있었던 외국선수 변경 안에 대해 해명하기 위해서였다. 김영기 총재는 미디어데이 도중 자리를 비운 것에 대해서는 “거북해서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언론사 간담회가 있어) 비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이날 김 총재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외국선수 제도변경에 대한 긍정적인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수많은 오류가 발견됐다.


▲ 마이클 조던 이전 NBA에는 속공이 없었다?


김영기 총재는 KBL에서 속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NBA를 예로 들었다. 김 총재는 “KBL은 점수가 낮아 만족도가 50% 수준이다. 속공이 나오지 않는다. 점수가 곧 만족도다. 작년의 73점을 올해 85점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NBA에서도 마이클 조던 이전에 속공이 없었다. 일부러 속공을 자르는 플레이가 흔했다. 골밑에서 파울이 난무하니 힘만 센 윌트 채임벌린이 100득점을 달성할 수 있었다”고 설파했다.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다. 미국선수들은 기본적으로 속공을 미리 자르기보다 오펜스파울을 유도하는 플레이를 펼친다. 쓸데없는 파울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지도자들이 속공을 자르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농구를 대하는 마인드자체가 한국과 다르다. 1 대 1을 강조하는 미국에서 먼저 파울을 범하는 것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격이다.


예로 든 NBA도 사례가 잘못됐다. 1950년대부터 활약한 전설의 포인트가드 밥 쿠지의 별명은 ‘속공의 마스터’였다. 농구에서 원핸드 점프슛이나 3점슛보다 역사가 오래된 것이 속공이다. 가장 쉽게 득점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마이클 조던이 활약한 1990년대는 NBA에서 가장 수비가 치열했던 시대다. 보스턴 셀틱스가 8연패를 달성했던 1965-66시즌 리그 평균득점은 115.5점이었다. 마이클 조던이 처음 우승한 1990-91시즌 NBA는 경기당 106.3점을 넣었다. 조던이 데뷔해서 속공이 늘었고, 리그 평균득점이 증가했다는 김 총재의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 다양한 수비전술이 발전하면서 평균득점이 점차 줄어드는 것은 세계적 추세다.






채임벌린이 힘만 센 선수였다는 주장도 사실무근이다. 기자는 채임벌린의 모교 캔자스 대학, 미국 스프링필드 농구 명예의 전당에서 채임벌린의 현역시절 경기를 시청했다. 채임벌린이 216cm의 압도적인 신장과 운동능력을 갖춘 것은 맞다. 다만 그의 기본기와 테크닉은 현대농구와 견주어도 세련됐었다.


채임벌린은 1962년 3월 2일 뉴욕 닉스를 상대로 100점을 넣었다. 채임벌린은 결코 쉽게 100점을 넣지 않았다. 야투 63개를 시도해 36개를 넣었다. 자유투 32개 중 28개를 적중시켜 100점을 완성했다. 상대가 필사적으로 채임벌린을 막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 센터 중 자유투 32개를 쏴서 28개를 넣을 수 있는 선수가 있을까. 채임벌린은 어시스트에서도 발군이었다. 당시 필라델피아는 169-147로 뉴욕을 이겼다. 채임벌린의 동료들도 69점을 넣었다는 말이다. 김영기 총재 기준에서 만족도 169%인 경기였다.


▲ 지금 KBL에 맥도웰이 와도 행세 못 한다?


김영기 총재는 외국선수 장단신 구분, 2인 동시출전제도의 당위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장신선수 2명을 쓰면 77.7점이다. 단신과 장신을 쓰면 90점이 넘었다. 장신자 둘은 재미가 없다. 과거 90점대 점수를 냈을 때 작은 외국선수들이 잘했다. 작지만 표범을 데려와야 한다” 외국선수가 2명이 뛰어도 평균득점만 올라가면 재밌는 농구라는 주장이다.


이어 김 총재는 “우리나라 장신자도 잘한다. 적응력이 좋아졌다. 반면 작은 선수들은 적응력이 떨어졌다. 유재학 감독이 연습상대를 구성해달라고 했을 때 작은선수 3명을 데려왔다. 월드컵에 갔다 와서 바로 그런 적응력이 생겼다고 한다”며 단신선수 애찬론을 펼쳤다. 


키만 앞세운 장신보다 테크니션 단신 선수들이 볼 재미가 있다는 것은 설득력이 있는 말이다. 하지만 각 구단들이 193cm 이하로 가드들을 뽑을 것이라 믿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발상이다. 가드보다 언더사이드 빅맨을 뽑은 것이 전력강화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맥도웰 같은 선수가 또 오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이에 김 총재는 “맥도웰은 191cm였다. 실제로 그보다 컸다. 내 생각에 맥도웰이 지금 와서는 행세 못한다. 그 때 우리 선수들이 너무 작았다. 정재근(193cm) 전희철이 198cm였다. 그런 선수들은 맥도웰을 못 막았다. 내 생각에 그 키로 골밑에서 활약하는 것은 지금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전희철이 1997년 아시아선수권 MVP였다. 한국팀 센터였다. 외국선수들과 해봐서 활약이 좋았다. 그때 현주엽이 잘했다. 2002년 아시안게임서 중국 200cm 선수들과 부딪쳤다”고 덧붙였다. 전희철이 맥도웰 같은 선수들과 맞붙어 기량이 늘었다는 것. 아울러 지금 국내선수들이 맥도웰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이다. 국내 프로구단에서 왜 ‘제2의 맥도웰’을 제쳐두고 가드를 뽑아야 하는지에 대한 해명은 없었다.



전희철에 대한 김영기 총재의 기억도 맞지 않는다. 1997년 KBL 원년리그서 전희철은 평균 23.1점으로 전체 득점 8위에 올랐다. 정재근은 21.1점으로 13위에 랭크됐다. 국내 빅맨 중 단연 돋보이는 활약이었다. 하지만 당시 전희철이 상대했던 외국선수는 클리프 리드(190cm), 네이트 터브스(196cm), 빈스 킹(196cm), 제이슨 윌리포드(194cm) 등 200cm가 넘는 선수가 없었다. 전희철과 맥도웰은 아직 만나기도 전이다.


전희철은 고려대시절부터 국가대표로 뛰며 아마추어 최고센터로 군림했다. 하지만 프로에서 외국선수에게 자리를 내주며 스몰포워드로 변신이 불가피했다. 1999-2000시즌 전희철이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오자 동양은 ‘맥도웰형’ 선수인 루이스 로프튼을 뽑았다. 로프튼은 신장이 192cm에 불과했지만 전희철을 3번으로 밀어내고 주전 파워포워드로 뛰었고, 20.2점, 8.9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전희철은 프로에서 살아남기 위해 3점슛을 연마할 수밖에 없었다. 2000년 1월 18일 전희철은 SK를 상대로 한 경기 3점슛 9개를 성공시켰다. 이는 변기훈, 방성윤, 오용준, 김병철, 양경민 등 내로라하는 슈터들과 함께 프로농구 역대 5위 기록이다. 전희철의 이런 남모를 노력을 김영기 총재는 알고 있을까. 외국선수 2인 출전제에서 전희철보다 기량이 떨어지는 대부분의 선수들은 출전 자체가 힘들었다.


▲ 국내 유망주들, 필리핀 리그에 진출하는 방법도 있다?


외국선수 2인 출전으로 국내 유망주들이 농구를 기피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이에 대해 김영기 총재는 “점수가 올라가서 95-6점이 나오면 용병 2명이 뛸 필요 있냐는 소리가 나올 것”이라며 점수가 높아지면 외국선수 비중을 다시 축소하겠다고 했다. 이어 “개인적으로 200cm이하 선수 2명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큰 국내선수(하승진)이 있어 구단의 반대에 부딪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설자리가 좁아진 유망주들에 대해서는 “최근 살루드 필리핀리그(PBA) 총재가 한국 선수를 좀 보내달라고 하더라. 필리핀은 내년 5월 중순부터 2명의 외국선수 중 한 명을 아시아선수로 한다. 필리핀에 신동파의 좋은 이미지가 있다. 최근 우리와 좋은 경기를 하면서 한국선수 이미지가 좋다”고 했다. KBL 진출에 실패한 국내 유망주들은 해외리그에 진출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이어 김 총재는 “시대가 그렇게 간다. 일본은 외국선수 3명이 뛴다. 물론 국내선수를 보호 안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FTA시대의 흐름”이라고 강조했다.



해외리그와 KBL의 현실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농구가 국기인 필리핀의 경우 경기당 1만 5000명이 넘는 관중들이 온다. 필리핀에 ‘농구 TV’가 따로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프로농구 중계권 계약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KBL의 비교대상이 아니다. 필리핀은 1년에 3개의 컵대회를 치른다. 외국선수를 전혀 배제하고 치르는 대회도 있다. 하지만 KBL은 정규리그만 54경기를 한다. 대입할 수 있는 현실 자체가 다르다.


일본의 경우 NBL과 BJ리그의 통합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외국선수가 동시에 3명이 뛰는 바람에 국내선수 기량이 정체되는 문제가 있었다. 오히려 일본에서 KBL을 성공모델로 삼는 마당에 일본의 사례를 든 것은 부적절했다.


올 시즌 프로농구 2군이 폐지되면서 예년보다 적은 수의 신인 선수들이 프로데뷔를 했다. D리그의 출범도 늦어졌다. 이런 현실에서 프로농구 수장이 ‘한국에서 못 뛰면 외국으로 가면 되지 않느냐’는 식으로 발언한 것은 무책임하게 들릴 수 있다. 


jasonseo34@osen.co.kr


<사진>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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