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닝 < 자책점' 노경은, MLB에서도 희귀 사례
OSEN 이대호 기자
발행 2014.10.12 06: 00

힘겨운 시즌을 보내고 있는 두산 베어스 우완 노경은이 또 자책점을 더하고야 말았다.
노경은은 11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LG 트윈스전에 등판,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는 동안 안타 5개에 5실점으로 무너졌다. 이로써 노경은의 평균자책점은 9.20으로 뛰었다. 107⅔이닝에 110자책점이다.
9점대 평균자책점을 찍는 투수는 많다. 그렇지만 100이닝을 넘게 던지면서 이런 평균자책점이 나올 수는 없다. 보통은 감독이 그 정도로 점수를 허용하도록 가만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송일수 감독은 "노경은이 살아나야 한다"며 그를 계속해서 기용하고 있다. 규정이닝(128이닝)에 미치지 못했기에 망정이지 만약 채웠다면 역대 시즌 최저 평균자책점(1982년 삼미 김동철, 7.06) 기록을 경신할 뻔했다.

메이저리그 역사에서도 120이닝 이하를 소화하며 100자책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단 2명 뿐이었다. 가장 먼저 불명예 기록을 세운 선수는 1930년 필라델피아 필리스 소속인 할 엘리엇이었다. 당시 필라델피아는 시즌 100패를 밥먹듯이 하던 약팀이었고, 선발과 불펜을 오갔던 엘리엇은 117⅓이닝을 던지며 6승 11패 평균자책점 7.67을 거뒀다.
연간 100자책을 넘긴 선수 중 가장 적은 이닝을 소화했던 이는 1996년 토드 반 포펠이었다. 당시 그는 99⅓이닝을 소화하며 100자책점을 기록, 평균자책점 9.06을 남겼다. 오클랜드에서 부진한 투구를 거듭하다 디트로이트로 옮겼는데 거기에서 더욱 처참한 성적을 기록하고야 말았다.
포펠은 재미있는 이력이 있는 선수다. 우완정통파였던 그는 1990년 텍사스 알링턴에 위치한 마틴고교에서 11승 3패 170탈삼진 평균자책점 0.97을 기록하며 스카우트들의 이목을 한눈에 끌었다. 고졸선수인 그를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1라운드 감으로 생각했고, 결국 1라운드 전체 14번으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가 그를 찍었다.
당시 1라운드 전체 1번픽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갖고 있었다. 1990년 애틀랜타는 존 스몰츠가 에이스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줬고, 톰 글래빈은 미완의 대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수가 필요했던 애틀랜타는 포펠을 주목했다. 내심 포펠을 1라운드 지명선수로 점찍었던 애틀랜타지만 정작 포펠이 '날 찍어도 애틀랜타와 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애틀랜타는 차선책으로 고졸 내야수를 1라운드에서 찍었는데 그가 바로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스위치히터로 불리는 치퍼 존스다.
6개 구단을 떠돈 포펠은 11년을 메이저리그에서 뛰며 통산 40승 52패 평균자책점 5.58을 남겼다. 1996년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래도 포펠은 2000년과 2001년 시카고 컵스에서 필승조로 활약하며 잠시 전성기를 보내기도 했다.
1996년 이후 포펠을 선발투수로 쓰려는 팀은 거의 없었다. 통산 98경기에 선발로 나선 포펠은 1996년 이전에 64경기, 그리고 이후 9년 동안 34경기만 선발로 출전했다. 1996년 타자들에게 원없이 두들겨맞은 기억은 트라우마가 됐고 그렇게 강속구 선발 유망주는 평범한 투수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투수들도 맞다 보면 버릇이 된다고 한다. 메이저리그 역사에서도 90이닝 이상 던지면서 이닝보다 자책점이 많은 투수는 포펠 한 명 뿐이었다. 노경은도 107⅔이닝을 던졌고 자책점 110점을 기록했으니 불명예스러운 기록 하나를 더했다. 어쩌면 지금 노경은에게 필요한 건 마운드가 아니라 자신을 돌아 볼 시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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