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형제’ 장진 영화엔 따뜻한 피가 흐른다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4.10.15 07: 45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손이 차가운 사람에게 건네는 상투적인 위로 멘트가 있다. 바로 ‘괜찮아. 수족냉증인 사람들이 알고 보면 마음은 따뜻하대’이다. 모처럼 전매특허인 휴먼 코미디로 돌아온 장진 감독의 손발은 그런 면에서 분명 차가운 겨울왕국일 것이다. 신작 ‘우리는 형제입니다’를 통해 그의 세상을 바라보는 따스한 온기와 휴머니즘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장진은 위기의 남자로 불리기 시작했다. 딱히 녹슬었다고 하긴 그렇지만 왠지 반 박자 느려진 것 같은 유머 코드와 자기가 가진 패를 모두 꺼내 보인 사람의 헛헛함 같은 게 오롯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빠른 컷으로 호객하는 현란한 영화에 익숙해진 것일 뿐 장진은 느려지지 않았다. 모처럼 잡힌 소개팅을 앞두고 백화점에 가기 보단 가장 익숙한 옷을 꺼내 입을 줄 아는 자신감과 여유라면 모를까.
때아닌 여름 보릿고개 이후 공복감을 느낄 쇼박스의 ‘우리는 형제입니다’가 넘어야 할 관문은 크게 두 가지. 일단 연기파에는 동의하지만 과연 관객의 지갑을 열 정도인가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따라붙는 두 주연 배우 조진웅 김성균의 구매력이 첫 과제다.

먼저 조진웅은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 ‘추노’ ‘뿌리 깊은 나무’로 성실히 인지도를 쌓았고 영화 ‘범죄와의 전쟁’ ‘화이’ ‘명량’에서 주어진 서브플롯을 훌륭히 소화해내며 작품에 기여했다. 하지만 작년 첫 주연작 ‘분노의 윤리학’에선 기대를 현저히 밑도는 냉담한 반응을 마주해야 했다. 그나마 ‘끝까지 간다’에서 서늘한 악역으로 호평 받았지만 이는 엄밀히 말해 이선균과의 앙상블 덕을 본 게 사실이다. 이문식이 되느냐, 아니면 류승룡으로 가느냐의 중대한 교차로에 서있는 그에게 이번 영화는 꽤 비싼 비용의 시험 무대가 될 것이다.
 ‘범죄와의 전쟁’으로 하정우와 판타지오에 픽업되며 인생이 바뀐 김성균은 최근 3년간 송강호 보다 더 바쁘게 살았다. ‘남쪽으로 튀어’ ‘577 프로젝트’를 제외하고 출연한 7편의 영화가 모두 흥행하는 행운을 맛봤고, 케이블 드라마 ‘응답하라 1994’로 난생처음 광고까지 찍었다. 이쯤 되면 자본에 책임지는 주연 욕심 낼 자격, 충분히 갖췄다.
스스로의 상품성 향상에 관심이 많은 두 남자의 영민함은 각자 감당할 만한 예산과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장르와 캐릭터를 택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우리는 형제입니다’의 순제작비는 22억 원. 극장 수입만으로 약 120만 명이 BEP이며, 한국 관객이 가장 좋아하고 익숙한 가족 코드를 담고 있는 휴먼 코미디다. 어릴 때 보육원에서 헤어진 형제가 방송에서 30년 만에 만나 재회의 감격을 누릴 찰나, 실종된 치매 엄마(김영애)를 찾기 위해 전국을 헤매게 되는 일종의 로드 무비 형식이다.
미국으로 입양된 형(조진웅)은 우여곡절 끝에 목사가 돼 고국 땅을 밟고, 동생(김성균)은 만신을 모시며 굿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박수무당이 된 만큼 둘은 사사건건 부딪친다. 하지만 이런 소소한 ‘형제의 난’은 후반부 감동을 배가시키기 위한 극적 장치일 뿐 영화가 정작 의도하는 메시지와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
이 영화가 극복해야 할 두 번째 관문은 바로 감동의 진폭 여부다. 각자 숨겨진 사연이 하나씩 있는 형제가 진심을 털어놓으며 상대를 원망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배우들의 연기가 얼마나 관객의 누선을 건드릴 것이냐가 이 작품의 승부처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감독은 조진웅의 샤워신과 그의 독백 형식의 인터뷰를 통해 복선을 까는데 이게 얼마나 적중할지 흥미롭다.
 동네 양아치들에게 봉변을 당하는 동생을 구하기 위해 싸움에 뛰어드는 형의 모습에서 또 한 번 울컥한 지점을 만나게 되는데 다소 상투적임에도 둘의 불우했던 과거와 서로를 향한 진심을 확인하게 된다는 점에서 적잖은 울림이 있었다. 또 천신만고 끝에 만난 엄마와의 병실 장면은 하이라이트로 꼽아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세 배우의 호흡이 최고조에 달했다.
 아쉬운 지점도 있다. 누구도 정치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지만, 굳이 타이트한 102분에 표리부동한 국회의원을 등장시키며 한국 의회 정치의 후진성을 새삼 들출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물론 블랙 코미디의 수위를 잘 지켰지만 두 형제의 에피소드에 시간을 더 할애했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덧붙여 ‘군도’에서 걸쭉한 나주 사투리를 기대했지만 끝까지 한양말로 일관하며 감칠맛을 떨어뜨린 강동원에 이어 조진웅의 대사도 아쉬웠다. 영어와 어눌하게 보이려고 애쓴 한국어 대사가 귀에 착착 감기지 않았다. 미국인 아내와 통화할 때 구사하는 영어가 30년 거주자답지 않게 덜 유창했고, 한국말도 일부러 교포 느낌 나게 하려다 보니 교통정리가 잘 안 된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장진의 휴먼 코미디에는 어쩔 수 없는 따뜻한 피가 흐른다. 깜짝 반전이나 엄청난 폭풍 감동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그가 떨어뜨린 조약돌을 믿고 따라가 볼 만 하다. 12세 관람가. 23일 개봉.
bskim0129@gmail.com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