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우 연기력과 티켓 파워가 송승헌에게 밀리나?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4.10.17 17: 32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얼마 전 한 영화사 직원과 밥을 먹다가 캐스팅을 둘러싼 씁쓸한 뒷얘기를 접했다. 그가 오래 전부터 박용우의 열혈 팬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날따라 줄담배까지 피우며 좋아하는 배우의 안타까운 소식을 성토하는 모습이 꽤나 격정적이었다.
 사연은 이랬다. 박용우가 얼마 전 ‘멋진 악몽’이라는 영화의 남자 주인공으로 거론됐는데 송승헌으로 교체 확정되는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일을 겪었다는 것이다. 제작사는 많은 배우 중 박용우와 송승헌 카드를 놓고 고심했고, 감독과 투자사 메가박스 플러스엠의 난상토론 결과 송승헌이 최종 결정됐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배우 섭외 과정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상다반사로 여겨졌다. 대체 이게 왜 문제가 되는 걸까? 그런데 그 대상이 박용우라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는 항변이 이어졌다. 박용우는 나홍진 감독의 데뷔작 ‘추격자’의 주인공으로 일찌감치 기용된 바 있고 심지어 감독에게 김윤석을 추천한 이도 박용우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추격자’에 등장하지 못 했다. 강제로 하차해야 하는 비운을 맛본 것이다.

 이에 대해 영화사 비단길과 나홍진의 주장은 많이 엇갈리지만 적어도 박용우가 ‘추격자’의 원래 주인공으로 잠정 결정됐었고 본의 의지와 무관하게 ‘까였다’는 건 바뀌지 않는 팩트다. 계약서를 써도 촬영 당일 캐스팅이 번복될 수 있다지만, 박용우 입장에선 한 동안 대인기피증이 올 만큼 쇼크였을 것이다.
 누구도 속 시원히 확인해주지 않지만 다들 박용우의 하차가 투자 과정에서 빚어진 일이었을 거라며 혀를 찼다. 수십억을 투자하는 입장에선 원금 손실 리스크가 으뜸인 만큼 연기력과 별개로 호감도와 티케팅 파워를 따질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 논리를 부정하는 건 낭만적이거나 돈을 크게 잃어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다.
 애석한 건 박용우 대신 송승헌이 엄정화의 남편으로 최종 결정되는 과정에서 소소한 몇 가지 부작용이 더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이미 출연이 확정된 일부 조연들의 캐스팅이 뒤바뀐 것이다. 송승헌이 촬영하면서 자주 만나게 될 직장 상사도 그중 하나였는데 송승헌 쪽에서 ‘이왕이면 이 사람과 하면 좋겠다’며 누군가를 추천했다는 거다.
한 달 전부터 자신의 페이스북에 ‘차기작 멋진 악몽 들어갑니다’라며 크랭크 인 날자만 기다렸던 한 배우는 영문도 모른 채 대사 없는 단역으로 밀려났고, 사정을 안 뒤 깊은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주연배우 쪽에서 생판 모르는 사람 보다 친분 있는 배우와 연기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내며 자신이 까였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울트라 을이었던 그는 헛웃음 외에 별로 할 게 없었다고 한다.
세 달 가량 낯선 현장에서 생면부지 사람들과 서먹하게 지내는 것 보단 평소 호흡이 맞는 지인들과 연기하는 게 배우와 작품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다. 또 어렵게 모셔온 주연 배우의 ‘사소한’ 부탁을 뿌리쳐서 시작부터 그의 기분을 언짢게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송강호도 작품마다 신뢰하는 프로듀서와 함께 하고, 최동훈도 하정우 전지현 이정재와 랑데부하지 않는가. 언론은 그런 모습을 ‘사단’ ‘의리’로 포장해준다.
하지만 그들의 아름답고 멋진 연대감 이면에는 어디선가 피눈물 흘리는 배우와 스태프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유도 모르고 역할을 빼앗기는 조단역 배우와 힘없는 스태프들은 당장 밀린 월세와 카드값 걱정에 택배 알바를 뛰어야 하고 점점 본업과 부업이 역전되게 된다. 억울하면 출세해야 하지만, 영화계에도 언제부턴가 투자사 높은 분들과 왕래하는 귀족 배우들 때문에 기회균등이 요원해지고 있다.
 개런티 7억원도 모자라 러닝개런티, 심지어 제작 지분까지 요구하는 배우들도 증가 추세다. 물론 무한 경쟁 시장에서 그들만 탓하는 건 루저들의 못난 콤플렉스일 수 있다. 수요가 있기 때문에 공급이 가능한 것이다. 다만, 지나친 의리와 패밀리 정신 때문에 선량한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 만큼은 삼갔으면 좋겠다. 99개 가진 사람이 한 개 있는 사람의 그것마저 빼앗아 100개를 채운다면 그건 욕심을 넘어선 탐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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