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난 건 감독, KIA가 잃은 건 레전드
OSEN 조인식 기자
발행 2014.10.26 06: 03

한국 프로야구사 최고의 레전드 투수가 불명예스럽게 물러났다.
KIA 타이거즈 선동렬 감독은 지난 25일 감독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허영택 단장에게 전달했고, 구단은 이를 공식 발표했다. 지난 19일 2년 재계약에 합의한 뒤 6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가장 표면적인 원인은 선 감독을 향한 팬들의 비난여론이었다.
불과 3일 전에 스스로 명예회복을 하겠다고 구단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까지 올렸던 선 감독이 마음을 바꿔 스스로 유니폼을 벗기로 결심하게 되기까지는 제 3자가 상상하기 힘든 정도의 회의감과 번뇌가 있었을 것이다. 선 감독은 그 72시간이 마치 일생처럼 길다고 느꼈을지 모른다.

광주에서 야구를 시작해 해태의 전성기 주역으로 활동했던 야구인 선동렬은 고향 팬들로부터 버림받았다. 구단이 쫓아낸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존재인 팬들의 마음이 돌아섰기 때문에 지금 KIA와 헤어진 선 감독이 향후 어떤 형태로든 팀에 돌아오는 것은 쉽지 않다. 이제 선동렬과 타이거즈의 연결고리는 팬들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게 됐다.
팬들은 감독 선동렬이 물러나기를 바랐을 뿐이지만, 그런 생각들을 목소리로 옮기자 자신들이 그토록 아끼던 ‘무등산 폭격기’마저 함께 폭격해버린 꼴이 됐다. 선수 시절을 포함한 야구인 선동렬의 명예에 깊은 상처가 났다는 의미다. 조범현 감독이 물러나고 선 감독이 KIA의 지휘봉을 잡았을 때 들려오던 환호와는 180도 다른 풍경이다.
선 감독이 KIA를 이끌었던 지난 3년 내내 각종 야구 커뮤니티와 포털 사이트의 선 감독 관련 글들의 댓글은 그를 조롱하는 내용들이 주를 이뤘다. 감독 선동렬은 KIA의 몰락에 대한 책임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인간 선동렬에게까지 그런 모욕적이고 원색적인 비난을 가할 필요는 없었다.
스타 선수는 지도자가 되고 나서도 높은 기대를 받는다. 선 감독 역시 삼성 감독으로 부임한 뒤부터 ‘선동렬이니까’, ‘그래도 선동렬인데’, 통합 2연패 후에는 ‘역시 선동렬이다’ 라는 시선과 싸워야 했다. 게다가 감독생활 초기에 승승장구하자 기대치는 점점 높아져만 갔다.
그리고 그 높던 기대들이 무너졌을 때 선수로서 쌓았던 명성까지 함께 잃어버리게 됐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돌이 더 잘게 부서지듯 삼성 시절 최고의 투수조련사이자 떠오르는 40대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다 몰락한 선 감독의 명예도 작아져 흩어지고 말았다.
KIA 역시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 팬심을 올바르게 읽지 못한 것이 KIA의 잘못이다. 차라리 구단이 애초에 선 감독과 재계약을 하지 않고 다른 인물을 사령탑에 앉혔다면 이런 불명예스런 퇴진 과정 없이 자연스럽게 관계 정리가 됐을 것이다. 공식 기록은 아니지만 사상 처음으로 팬 여론에 의해 감독이 사퇴하는 사건은 구단의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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