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매니저, 마지막 선물로 '삼선 슬리퍼'를 산 사연
OSEN 이혜린 기자
발행 2014.10.29 11: 10

[OSEN=이혜린의 스타라떼] 신해철의 매니저가 신해철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다음 날 아침 제일 처음 향한 곳은 서울의 한 스포츠 의류 매장이었다. 
지난 27일 꿋꿋하게 잡고 있던 희망의 끈을 끝내 놓아야 했을 때, 그는 의류 매장이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매장이 오픈하자마자 달려가 삼선 슬리퍼를 하나 샀다.
이 삼선 슬리퍼를 빈소에 고이 가져다둔 매니저는 “이렇게라도 약속을 지킨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신해철과 했던 약속은 브랜드 정품 슬리퍼를 사주겠다는 것이었다. 때는 최근 진행된 JTBC ‘속사정 쌀롱’ 녹화날. 평소 패션에 ‘아무’ 관심이 없었던 신해철은 프로그램 녹화로 향하면서 삼선 슬리퍼를 신고 집을 나섰다. 어차피 녹화에 들어갈 땐 옷을 갈아입으니까 방송국까지는 편한 차림으로 나선 것이다. 매니저의 눈에 포착된 것은 신해철이 신고 있던 슬리퍼. 하물며 ‘짝퉁’이었다.
“슬리퍼를 보고 놀렸더니, ‘짝퉁’도 자기가 신으면 ‘진짜’ 같아 보인다며 웃으시더라고요. 그래서 형님께 슬리퍼 하나 사드리겠다고 말했었어요. 웃으면서 ‘그래!’ 라고 하셨던 게 기억이 나서..”
신해철과 함께 일해온 매니저들이 기억하는 신해철은 일반 대중에 알려진 그의 이미지와는 달랐다. 여러 톱가수를 거치며 잔뼈가 굵은 매니저들은 철 안들고 아이 같은 면은 신해철이 단연 최고였다고 입을 모았다.
주위 사람들에게 금방 정을 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했다는 그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애교를 자주 부리며 매니저를 당황케 하기도 했다. 힘들고 어려운 스케줄을 해야 한다고 설득할 때에도 신해철은 금세 고집을 꺾고 ‘이거 하는 대신 주말에 놀아주기’와 같은 조건을 달았다고 한다.
“사실 이미지가 세다보니, 같이 일하게 됐을 때 걱정을 했죠. 한번은 방송을 앞두고 옷이 마음에 안드셨는지 ‘이게 맞는거냐’고 물으시더라고요. 보통 가수들이 그럴 때 엄청 예민하거든요. 그런데 코디가 ‘완전 맞는 거예요!’라고 하니까, 또 금세 ‘아 그래?’하고 웃으시더라고요. 불의를 보면 못참아서 그렇지, 의외로 둥글둥글한 성격이었어요.”
가요계 동료들이 가득했던 그의 빈소도 그런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조용필부터 god까지 가요계 톱가수는 거의 모두 빈소로 향했는데, 신해철이 아무리 천재적인 뮤지션이었다 해도 인간적인 호감이 바탕에 깔리지 않았다면 이같은 추모 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사실 미디어에 노출된 그는 대부분 날이 잔뜩 선 독설가의 모습이었다. 집에 가본 사람들은 모두 책이 그렇게 많았다고 증언하는 그는 대한민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정치인과 맞짱 뜰 수 있는 달변가이자 뮤지션이었다. 그는 어느 한쪽에 섰을 때 나머지 대중을 모두 잃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바로 그런 면에서 늘 자기 의견을 숨겨야 하는 동료 연예인들의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같은 모습은 팬들에게 멋진 선배 같은 매력으로도 남아있다. '음악도시', '고스트스테이션' 등을 통해 청취자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촌철살인의 평을 날리던 그는 직접 닮기는 어려워도 곁에 한명쯤은 있으면 좋을 것 같은 '인생 선배'였다. 남들과 다른 의견을 당당하게 밝히고, 감정이 아닌 논리로 호소하고, 욕도 찰지게 했다. 사회적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신해철은 어떤 의견을 낼지 궁금했다. 그렇게 지금의 30~40대가 학창시절 가치관을 정립해갈 때 즈음 그의 라디오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그의 별세 소식에 "내 학창 시절 일부가 찢겨 나가는 느낌"이라는 글이 그토록 많은 것일테다.  
신해철 측은 유명 연예인으로는 이례적으로 일반 조문객도 받고 있다. 퇴근 시간이 지나자 줄이 너무 길어져 시간을 9시로 제한해야 할 정도였다. 어제 하루 4000명이 빈소를 왔다 간 것으로 추정된다. 신해철을 둥글둥글한 형님으로 기억하는 매니저와 멋진 인생 선배로 기억하는 팬들, 존경하는 동료로 여겼던 연예인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민물장어의 꿈'이 흐르는 빈소에서는 그렇게, 모두 다른 이유지만 같은 마음으로 신해철을 그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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