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케이블드라마 판을 바꿨다[종영①]
OSEN 박현민 기자
발행 2014.12.21 07: 08

 "'미생' 같은 드라마면 출연해야죠."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케이블 드라마에 출연하는 걸 마치 '연예계 좌천'이나 '2군 연예인'으로의 전락쯤으로 여겼던 연예 관계자들의 생각이 바뀌었다.
'응답하라 1997'(이하 '응칠')과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의 성공, 그리고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이하 '나인') 등과 같은 非 지상파의 선전이 초석이 됐던 것은 사실. 허나 '응칠' '응사' 시리즈가 KBS 출신 예능 PD의 드라마 제작이라는 묘수로써 읽혀지고, '나인'은 시청률이라는 객관적 지표의 잣대로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번 '미생'의 성공은 전작이 일궈낸 성공들과는 또 달랐다.

특히 2014년 tvN이 줄줄이 선보였던 월화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3' '마녀의 연애' '고교 처세왕' '마이 시크릿 호텔' '라이어 게임', 수요드라마 '황금거탑', 목요드라마 '식샤를 합시다' '막돼먹은 영애씨13' '잉여공주', 그리고 금토드라마 '응급남녀' '갑동이' '연애 말고 결혼', '아홉수 소년' 등 10여 개의 작품들이 일부 시청자 호응과는 별개로 '판을 뒤바꿀 정도'의 진동을 만들어 내진 못했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 10월 17일 '미생'이 시작했다. '미생'은 전작 '아홉수 소년'의 부진으로 1.6%(닐슨코리아, 케이블 기준)라는 저조한 시청률로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첫방송부터 원인터내셔널 인턴 입사를 통해 직장인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담아내 직장인의 공감을 불러모았고, 호평이 이어졌다. 시청률 상승도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주연배우 뿐만 아니라 실감나는 연기내공을 보여준 조연, 특별출연 배우들이 모두 화제가 됐고, 단 9회만에 5.06%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2014년 케이블 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회를 거듭해도 시청률의 가파른 상승세는 꺾일 줄 몰랐다. 급기야 20회 최종회에서는 8.24%를 달성하며 경이로운 시청률을 이뤄냈다. 이는 지난해 '응사'가 기록한 케이블 역대 최고 시청률인 10.43%에 가장 근접한 수치였다. 본방송보다는 인터넷 채널이나 다운로드 등으로 접하는 케이블 드라마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이는 분명 괄목할 만한 수치이자 성과였다.
'미생'은 오프라인 원작웹툰의 판매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방송 후 판매부수가 급증한 만화 '미생'은 지난달 25일을 기준으로 200만부 고지를 넘어섰다. 올해 10월초까지 90만부 판매에서 방송 시작 후 무려 1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해 미디어셀러로 자리매김 한 것.
역으로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해도, 역시 '미생'의 성공은 누가 뭐래도 단연 윤태호 작가의 원작에 있었다. 직장인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던 건 윤 작가의 3년간의 치밀한 사전조사, 디테일한 묘사, 곱씹을 만한 명대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원작을 바탕으로 공을 들인 연출, 완벽에 가까운 캐스팅 등이 한데 어우러져 힘을 보탰다.
물론 한계도 있었다. 초중반 칭찬을 받았던 PPL(Product Placement, 간접광고)이 중후반부터 과하다 싶을 정도로 부각됐고 결국 연출자 김원석 PD의 입을 통해 "간접광고와 관련해선 아쉬움이 있다"는 발언을 이끌어냈다.
작위적인 러브라인을 만들어내지 않아 칭찬을 받았던 부분 역시 후반부 장백기(강하늘)-안영이(강소라)에게 불필요한 '진도'를 만들어냈던 것도, 원작에 있던 충분한 '감동'을 드라마적 화법을 동원해 과도하게 극적으로 만들어내려 했던 점도 '사족처럼 느껴졌다'는 불만을 이끌어냈다. 반면, 이같은 변화가 '원작이 후반부 다소 밋밋하게 흘러갔던 것과 달리 몰입감을 높여줬다'는 반응으로 호불호가 엇갈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생'은 케이블 드라마의 역사를 다시 썼다는 칭찬을 듣기에 충분했다. 시청률은 물론이거니와 화제성 면에도 지상파 드라마의 경쟁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고, 연출이나 배우들의 연기적 측면, 드마라적 완성도에서도 단연 압도적인 결과물을 내놓았기 때문. 이를 인정이라도 하듯 지상파·종편 방송들도 자연스럽게 '미생'의 배우들이 언급되거나 상황들을 패러디하는 모습들이 등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미생'은 케이블 드라마의 환경을 바꿨고, 위상도 바꿨다. 케이블 드라마에는 단 한 번도 출연하지 않았던 모 기획사 관계자는 "'미생' 같은 작품이라면 케이블 드라마라도 출연할 수 있다"는 달라진 태도를 보였고, 대다수 매니지먼트 관계자들도 "일부 수준 이하의 지상파 드라마에 억지로 나오는 것보다는 차라리 tvN 드라마에 출연하는 게 더 낫다"고 했다.
'미생'은 tvN, 나아가 케이블 드라마의 한계수치를 또 한 번 상향조정했다. 후속작 '하트 투 하트'가 당장 '미생'과 같은 결과물을 내기엔 역부족일 수 있다. 2015년에도 올해와 마찬가지로 1%대 시청률로 전전긍긍하거나, 조기종영의 철퇴를 맞는 등의 시행착오를 경험할 가능성도 여전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미생'으로 인해 '응답하라' 시리즈 외에도 케이블 드라마 성공 가능성의 입구를 더 넓혔고, 그 가능성에 많은 관계자들이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미생'은 시청자들 뿐만 아니라 tvN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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