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도 그가 맡으면 달라진다. 악역인데 지질한 구석도 있고, 아이 같은 면모도 있다. 마냥 밉다가도 애처롭고 안타깝다.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지며 드라마가 풍성해진다. 그것이 배우 박혁권의 힘이다.
방영 중인 SBS 새 월화드라마 '펀치'(극본 박경수, 연출 이명우)에선 이태준(조재현)의 최측근 조강재 역으로 출연 중이다. 조강재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증거 조작과 증인 회유까지 서슴지 않는 부패 검사다. 20년 동안 이태준의 오른팔로 살았지만, 박정환(김래원)에 의해 밀려나면서 그에 대한 증오와 모욕감에 사로잡힌다.
그에게 박정환의 뇌종양 수술은 희소식이었다. 하지만 죽은 줄 알았던 박정환이 돌아오면서, 조강재는 이태준의 수족이 돼 싸움판에 뛰어든다. 박정환의 전 아내이자 이태준을 위협하는 신하경(김아중)에게 누명을 씌우고, 박정환을 따르는 후배 검사 최연진(서지혜)을 지방 발령 보냈다. 이태준의 적 윤지숙(최명길)을 공격하는 데도 앞장섰다.
설정만 놓고 보면, 조강재는 열등감에 사로잡힌 2인자다. 박정환 보다 오랜 시간을 이태준과 보냈지만, 이태준과 박정환의 강력한 유대를 넘지 못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태준이 조강재의 뺨을 때리는 것도, "내 뒷통수를 치는 것은 이해하겠다"는 말을 하는 것도 모두 박정환 때문이다. 조강재에게 뺨을 맞고 잔뜩 긴장한 표정은 헛웃음을 자아낸다.
조강재와 이태준, 박정환의 관계는 마치 남녀의 삼각관계와 닮아 있다. 이태준과 박정환이 애증 관계라면, 조강재는 볼품 없는 짝사랑남이다. "떠난 장남은 잊어라. 내가 잘 모시겠다"며 충성을 맹세해도, 이태준은 자장면을 먹을 때까지 박정환 생각 뿐이다. 그러면서도 조강재는 이태준에게 기어코 붙어 있다. 이태준이란 동아줄을 쥐면, 권력이 따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처럼 조강재의 비열한 눈빛은 '펀치'의 긴장감을 극대화 시켜주는 요소 중 하나다. 신하경을 범인으로 몰아가면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뒀을까"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을 땐 얄밉기 그지 없다. 자신의 신념을 쫓는 인물들이 가득한 '펀치'에서 조강재 만큼은 마음 놓고 '욕할 수 있는' 캐릭터다. 그렇기에 그가 박정환에게 당할 땐 묘한 통쾌함이 있다.
조강재를 연기한 박혁권은 올 봄 시청자들로부터 올라프란 애칭을 얻었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눈사람 올라프와 닮았다는 이유였다. '밀회'의 우유부단한 강준형이 주는 묘한 친근감도 이유였다. '펀치'를 보며 올라프를 떠올리는 시청자는 없다. 탐욕스러운 조강재만 있을 뿐이다. 몰입도 높은 연기가 지난 캐릭터들을 지워낸 덕분이다.
박혁권은 그동안 다채로운 캐릭터를 선보였다. JTBC '밀회'에선 바람난 아내를 둔 철부지 남편, JTBC '아내의 자격'에선 두 집 살림을 하는 파렴치한 남편이었다. 영화 '시실리 2KM'에선 빡빡머리 조폭 역으로, Mnet 예능프로그램 'UV신드롬'에선 엉뚱한 박사 역으로 웃음을 줬다. 특유의 인간적인 매력이 깃든 캐릭터들은 극을 풍부하게 만들어 줬다.
앞으로도 조강재는 '펀치'에서 '갈등 유발자'로 활약을 이어간다. 결국 언젠가 되돌아올 악행들이다. 그리고 이를 연기하는 비죽거리는 얼굴의 박혁권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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