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천하장사 강호동의 결정적 장면 [그래도 강호동③]
OSEN 표재민 기자
발행 2015.01.28 10: 00

강호동의 새 예능프로그램 KBS 2TV ‘투명인간’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어 재밌다는 호평과 어디서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혹평으로 호불호가 상당하다. 그래서 누군가는 어김없이 ‘강호동의 위기론’이라는 이제는 구태의연한 카드를 들고 진단을 한다. 예능프로그램의 부침은 당연한 것이고, 예능인 역시 오르락내리락하는 법인데 말이다. 되돌아보면 22년간 예능판을 호령한 그는 언제나 이랬다. 
5번의 연예대상, 예능인 최초로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대상 수상자, 그리고 현재 3개(스타킹, 우리동네 예체능, 투명인간)의 지상파 예능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MC. 방송인 강호동의 22년 예능 인생은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역동적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비웃음을 샀던 개그맨 도전부터 적수가 없을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던 최고의 순간, 잠정 은퇴라는 초유의 사태, 복귀 후 슬럼프와 극복기까지. 강호동이 예능계에서 걸어온 길은 그 어떤 영화보다 더 영화와 같은 일이기도 했다. 천하장사 5번, 백두장사 7번을 달성하며 씨름계를 호령하던 1992년 돌연 은퇴 선언을 한 그는 1993년 방송계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었다.
# 행님아~씨름 평정한 후 코미디 도전

1993년 6월 MBC 코미디 프로그램 ‘코미디 동서남북-코미디 사랑게임’이 그의 예능인으로서의 첫 고정 프로그램이었다. 한 달여 전 특별 출연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그는 잘 안되면 다시 씨름판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냉소적인 시선을 받으며 험난한 개그계에 발을 디뎠다. 씨름 선수 시절 KBS 2TV ‘자니윤쇼’에서 범상치 않은 입담을 펼쳤던 것과 달리 냉정한 평가를 받는 정식 도전이었다. 그가 지금도 언제나 존경을 표하는 이경규가 “큰 덩치에서 나오는 유머감각이 뛰어나다”는 칭찬이 계기가 됐다. 다른 스포츠 선수 출신 방송인과 달리 강호동의 시작은 코미디였다. 혹독한 길이었다. 지금도 ‘코미디언 아이가’를 외치는 강호동은 당시 이영자가 빠지면서 흔들리고 있었던 MBC 코미디계의 구원투수로 올랐다.
너무 덩치가 커서 화면이 답답해보인다는 시청자들의 얄궂은 항의가 기사화 될 정도였다. 그가 이때까지만 해도 요즘 말하는 ‘비호감 개그맨’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개그 전문가가 아닌 운동선수 출신이 무턱대고 뛰어들어서 천둥벌거숭이처럼 행동한다는 곱지않은 시선이 팽배했다. 부정적인 여론을 바꾼 것은 강호동의 넉살과 코미디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하는 승부욕 덕분이었다. ‘씨름처럼 코미디도 노력하면 된다’라고 생각했던 저돌적인 면모가 과장된 표정 연기를 하고 개그 장치를 만들어 콩트를 펼치는 원동력이 됐다.
젊은 사람들의 다양한 연애법을 풍자한 ‘코미디 사랑게임’으로 발판을 디딘, 강호동은 1993년 11월 운명 같은 코너를 시작했다. 바로 MBC ‘오늘은 좋은 날-소나기’다. ‘행님아’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킨 이 코너는 거대한 몸짓으로 어색한 연기를 하던 강호동을 향한 일부의 비웃음을 민망하게 만들었다. 그가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촌스러운 가발을 눌러쓴 채 ‘포동이’ 김영대와 함께 만들어내는 콩트는 시청자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탁월한 웃음감각과 덩치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아 더 주목을 받았던 그의 천진난만한 웃음은 시청자들의 스트레스를 확 날리게 했다. 당시 이 코너는 시청률 30%를 넘기며 지상파 3사 코미디 프로그램 중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누구도 예상 못한 결과였다. 강호동은 이 코너의 인기를 바탕으로 ‘일요일 일요일 밤에’까지 출연하며 1994년 MBC 코미디 대상 우수상을 거머쥐었다. MBC 코미디 프로그램은 틀기만 하면 강호동이 나왔다. 
 
# ‘캠퍼스 영상가요’ 메인 MC 가능성을 엿보다
1996년까지 MBC 전속계약이었던 강호동은 MBC 코미디 프로그램에 숱하게 나오며 개그와 진행 감각을 키워갔다. 그해 전속계약이 풀리던 강호동을 잡기 위한 방송사의 영입전쟁이 벌어질 정도. 강호동은 방송 데뷔 후 줄곧 치고 빠지는 전략을 보였다. 프로그램 수명이 짧은 예능 특성을 간파하고 있었다. 동시에 끊임 없는 도전이 최고의 MC 자리로 오르게 만든 비결이었다. 1996년 SBS ‘기쁜 우리 토요일’을 통해 개그가 아닌 진행자로서 옷을 갈아입었다. 이때부터 강호동은 방송 3사를 가리지 않고 출연을 했다. 때마침 전속 개그맨에 대한 방송사의 출연 제재가 풀리는 시점이었다. 개그가 아닌 진행자로 나선 후 부정확한 발음과 다소 강한 억양, 과장된 몸짓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사투리가 섞인 빠른 말본새, 당시에는 부담스럽게 여겨졌던 세련되지 않은 언어 감각이 문제였다. 이후 예능 흐름이 바뀌고 고상한 표현법보다는 강호동의 친근한 말투가 시청자들에게 호감을 사기 시작했다. 노력하면서 기다리면 신이 내린 기회는 찾아오고, 강호동은 그 기회를 잡았다.
강호동은 1998년 KBS 2TV ‘캠퍼스 영상가요’를 통해 반등에 성공했다. ‘파이팅’이 넘치는 그의 진행은 청춘의 싱그러움과 잘 어울렸다. 특히 방송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들의 끼와 재주를 발산했던 이 코너에서 강호동의 역할은 정말 중요했다. 그는 운동선수 출신다운 높은 지구력과 체력으로 장시간의 녹화를 할 수밖에 없는 야외 행사 성격의 ‘캠퍼스 영상가요’를 활발히 이끌었다. 이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강호동은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 팔딱팔딱 살아숨쉬는 진행이 매력적이었다. 그는 지금의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굉장히 흡사한 형태인 KBS 2TV ‘강호동의 초전박살’을 통해 살 빼기에 도전하기도 했다. 늘 새로운 것에 몸을 담그는 것을 좋아했다. 강호동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99초 스탠바이 큐’를 통해 빠른 두뇌 회전, 빼어난 웃음 감각을 자랑했다.
 
# 전설의 쿵쿵따부터 ‘천생연분’까지 메인MC로 우뚝 서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설의 라인업이다. 강호동, 유재석, 이휘재, 김한석이 뭉친 KBS 2TV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MC 대격돌’은 전국을 쿵쿵따 게임에 푹 빠지게 만들었다. 어디를 가나 이 게임의 시작음인 ‘꿍스 꿍스’를 외치는 이들이 있었다. 2002년은 축구와 함께 쿵쿵따 열풍이었다. 끝말잇기라는 단순한 게임을 국민 게임으로 만든 이 프로그램은 MC 4인방의 물고뜯는 사생활 폭로, 웃음 가득한 벌칙까지 인기를 끌었다. 특히 강호동은 유재석과의 웃음기 있는 갈등 요소들을 극대화하며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당시 강호동은 시청자들의 ‘욕받이’와 마찬가지였다.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유재석이 하도 당하니, 강호동을 무찌를 수 있는 끝말잇기 승리법을 사연으로 보내는 시청자들이 즐비할 정도였다. 지금이라면 인터넷이 악성댓글로 도배될 일이었지만 그때는 그런 못된 웃음 형성이 웃음을 안겼다. 많은 시청자들이 강호동이 독해져야 한다고 주문하는 것도 이 같은 악역 캐릭터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일 터다. 강호동은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악역 캐릭터를 부각시켜 프로그램의 재미를 이끌었다.
강호동은 2002년 말부터 2003년까지 MBC 짝짓기 프로그램 ‘천생연분’에서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살리며 메인 MC로 우뚝 섰다. 강한 어조와 부정확한 발음은 이 프로그램에서 장기로 여겨졌다. 그의 과장된 표현법은 짝짓기 게임 구성의 재미를 높였다. 큰 인기만큼이나 논란도 어지간히 많았던 프로그램이었지만 강호동의 일명 사람 속 애태우는 진행은 재미를 유발했다. 워낙 자극적인 구성을 택했던 터라 품격 있는 방송을 원하던 시대적 분위기 때문에 ‘올해의 나쁜 프로그램’으로 선정되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 ‘야심만만’, 토크쇼 제왕 강호동의 시작
2003년 출범한 SBS ‘야심만만’은 그동안의 토크쇼 행태를 확 뒤집는 파격적인 구성이었다. 1인 게스트가 아닌 다수의 게스트들이 출동하고, 설문 조사를 통해 스타들의 이야기를 듣는 구성은 그 당시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다. 이미 메인 MC로서 끼를 인정받은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 진행 안정화 작업을 거쳤다. 특유의 카리스마와 함께 자신의 단점을 강조해 웃음을 만드는 가운데, 출연자들이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했다. 진지한 분위기가 아닌 유쾌함 속에 솔직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만드는 것. 토크쇼 제왕 강호동이어서 가능했다.
그리고 2007년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는 배우 최민수를 시작으로 콩트형 토크쇼라는 새 장을 열었다. 언제나 도전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는 점집을 배경으로 도사 옷을 입고 스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스타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보다는 시청자들이 듣고 싶은 독한 이야기에 집중하며 역동적인 진행을 하는 강호동이 구성 그 자체였다. 6년여 간 방송됐던 이 프로그램은 2011년 9월 강호동이 세금 과소 납부 의혹에 대한 사과의 뜻으로 방송 잠정 은퇴를 하면서 한차례 중단되기도 했지만 토크쇼 마지막 전성기의 선두에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 ‘X맨’과 ‘1박2일’, 유재석과의 국민 MC 자존심 대결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방송된 SBS ‘일요일이 좋다-X맨’은 강호동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재미가 절정에 다다를 때였다. 이미 ‘MC 대격돌’을 통해 톰과 제리식의 갈등으로 재미를 봤던 강호동과 유재석은 이 프로그램에서 각 조의 주장을 맡아 대놓고 으르렁거렸다. 유재석의 깐족거리는 진행, 강호동의 윽박지르는 맞대응은 스타들의 게임 대결과 함께 큰 재미였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국민 MC’라는 이름표를 두고 경쟁을 벌였다. ‘X맨’과 ‘야심만만’을 이끌며 전성기에 올랐던 강호동은 2007년 자신의 운명을 바꿀 또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났다.
바로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이다. 그는 여행 버라이어티 ‘1박2일’을 ‘국민 예능’으로 만들어놨다. 시청률 40%에 육박하는 믿기 힘든 기록, ‘힘차게 외쳐봅니다 1박 2일’이라는 구호 하에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아름다운 여행지를 소개하고 시청자들을 만난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예능이 웃음과 함께 감동을 선사해야 더 큰 파괴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또 한번의 흐름을 바꾼 일이었다. ‘1박2일’은 웃음 장치뿐만 아니라 진정성 있는 감동으로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강호동은 활기 넘치는 진행과 구수한 입담으로 프로그램의 구심점이었다. 그의 전국 여행은 시청자들의 여행 욕구를 자극하고 대리만족을 시켜줬으며, 건강한 웃음을 선사했다. 건강하고 긍정적인 기운을 불러오는 진행이 빛났다.
 
# ‘스타킹’부터 ‘우리동네 예체능’까지, 시청자 친화형 예능
2007년은 강호동의 상징과 같은 프로그램의 시작이었다.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은 그때부터 안방극장을 찾기 시작해 벌써 400회를 앞두고 있다. ‘스타킹’은 우여곡절 끝에 어느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이들이 출연해 감동을 안긴다. 강호동의 진심어린 자세가 이 프로그램의 진정성을 책임진다. 대중에 대한 친화력과 포용력, 출연자들에 대한 높은 이해력을 순간적으로 얼마나 발휘하느냐에 따라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의 성패가 결정된다. 그는 대중의 시선을 빨아들이는 흡인력까지 갖추고 있어 ‘스타킹’이 주말 예능 전쟁터에서 스타가 아닌 시청자를 내세워 인기를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강호동은 2012년 말, 1년여의 잠행을 끝내고 방송계로 돌아왔다. ‘스타킹’과 KBS 2TV ‘우리동네 예체능’ 등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에서 여전히 웃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인기 고공행진은 끊겼지만, 강호동이라는 예능인이 가진 대중 흡인력과 친화력은 여전한 힘을 발휘한다. 성과도 있다. 복귀 후 토크쇼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실패를 맛본 그는 ‘우리동네 예체능’의 입지를 다지고 쭉 이끌어갈 수 있는 힘을 키워놨다. 그를 비롯한 출연자들의 진정성 있고 활기찬 도전 정신은 안방극장에 통했다.
강호동은 SBS ‘맨발의 친구들’부터 MBC ‘별바라기’와 ‘무릎팍도사’ 폐지라는 상처를 입으며, 어쩔 수 없이 부침을 겪었다. 많은 이들이 아쉬워하듯 잠정 은퇴 전과 달리 파괴력 있는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1년까지 프로그램 시작만 하면 성공하는 시대는 지나간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그와 친한 방송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정작 본인은 1등의 자리에서 내려와서 편안하게 시청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한다는 후문이다. 안정적으로 자신의 길을 걷고 있고, 여전히 강호동이라는 브랜드는 시청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온다.
jmpyo@osen.co.kr
KBS, MBC, SBS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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