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치’, 권력 3부작 완성한 갓경수의 짜장면 난타전 [종영①]
OSEN 표재민 기자
발행 2015.02.18 07: 24

원리원칙이 통하지 않는 사회, 누가 덜 ‘나쁜 놈’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운 진흙탕 싸움. 종영한 SBS 월화드라마 ‘펀치’가 다룬 현실은 그랬다. 어쩌다 보니 나쁜 사람이 된 이들이 서로의 통수를 날리며 악랄하게 물고 뜯는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웃어넘길 수 없다. 짜장면 한 그릇을 먹으면서 하는 이야기는 오늘도 뉴스에서 봤던 우리 사회다. 그래서 ‘펀치’는 씁쓸하면서도 참 재밌었다.
지난 17일 종영한 ‘펀치’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검사 박정환(김래원 분)이 세상과 작별하기 전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회 거악과 맹렬히도 싸우는 이야기였다. 지난 해 12월 15일 첫 방송을 한 이 드라마는 19회로 막을 내렸다. 보통 인기가 있으면 연장을 하는데, 이 드라마는 한 회 결방을 예상해 짝수가 아닌 홀수 종영을 예고한만큼 초반부터 치밀한 기획력을 자랑했다.
마지막 회는 정환이 끝내 세상을 떠난 가운데, 목숨이 위태로웠던 신하경 검사(김아중 분)는 정환의 심장을 이식받았다. 하경은 정환이 옭아맨 이태준(조재현 분)과 윤지숙(최명길 분)이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게 사건의 마무리를 지었다. 팍팍하고 부조리한 현실이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정환은 죽었지만 정의 구현은 이뤄진 이 드라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복한 결말이었다.

검찰 권력을 전면으로 다룬 ‘펀치’는 정치 권력을 다룬 ‘추적자’, 재벌 권력을 다룬 ‘황금의 제국’에 이어 박경수 작가의 권력 3부작이다. 3부작의 완성이라고 할 만큼 높은 완성도는 물론이고 소름 끼치도록 공감이 가는 현실 반영도를 자랑했다.
정환의 아내인 하경을 제외하고 주요 인물 중 선한 인물이 없는 드라마. 때에 따라 누가 덜 나쁜 지 정도만 구분할 수 있었다. 심지어 만날 당하고 좌절하기만 하던 하경이 올곧은 신념을 지키는 것에 대한 한탄을 하는 순간, 드라마는 진짜 현실로 다가왔다. 영원한 아군도, 적군도 없고 권력 쟁취를 위해서라면 썩어빠진 명분도 아름답게 포장해야 한다. 서로의 뒤통수를 때리는 배신도, 어제 살벌하게 싸웠던 적이 합종연횡을 하는 것도 한 순간이다.
살아남는 것보다 더 절박한 가족을 지켜야 하는 정환도 악랄한 태준, 지숙과 여러 차례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가 했다. 이익에 따라 가치관이 쉽사리 바뀔 수 있는 사람들. 정환을 비롯한 태준과 지숙, 태준의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던 조강재(박혁권 분), 어찌 보면 실리를 쫓다가 모든 것을 다 잃은 이호성(온주완 분) 등은 그렇게 서로에게 강력한 ‘펀치’를 날리며 목적 달성을 위해 달려갔다. 다른 드라마에서 흔히들 나오는 뚜렷한 선악구도는 없었다. 당연했다. 권력이란 단편적일 수 없다. 애매모호한 관계 설정과 촘촘한 갈등 구조, 어디로 이야기가 튈지 모르는 살아 숨쉬는 전개는 ‘펀치’의 매력적인 요소였다.
이 드라마가 방송 내내 ‘기가 빨리는 드라마’라고 불렸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쉽사리 예측을 할 수도, 쉽사리 누구 하나 잡아놓고 심판을 내릴 수도 없는 전개가 반복됐다. 씁쓸한 우리 사회 현실을 고스란히 담는 동시에, 너무도 현실적으로 그리며 드라마 시작 전 실존 인물이나 사건과 관계 없다는 제작진의 알림 자막에도 자꾸만 머릿속에 돌고 도는 인물과 사건이 존재했다. 자막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은 이야기의 힘이었다. 세상을 단순하게 이분법적인 구도로 나누지 않기에 ‘지옥의 소굴’에 온 것마냥 온갖 부조리가 난무해도, 그리고 어쩌면 너무도 극적인 전개가 펼쳐져도 개연성이 없게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박경수 작가는 ‘추적자’, ‘황금의 제국’ 때와 마찬가지로 인물간의 갈등이 벌어지는 장치로 식사를 활용했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많은 것을 내포한다. 적이었다가 아군이었다가 오락가락하는 박진감 넘치는 순간을 담았다. 보통 밥은 편안하게 먹기 마련인데, ‘펀치’는 그렇지 못했다. 7년간 함께 하며 애증의 관계인 태준과 정환은 서로의 위기에 순간 짜장면을 나눠먹으며 싸움의 승패를 가늠했다. 치명타를 입은 상대방을 감싸기도 하고, 한 수 물러달라고 구걸하기도 한다. 극과 극인 태준과 지숙은 홍어와 파스타를 한 번씩 먹으며 누가 더 상위 권력을 쥐고있는지를 씨름했다. 음식은 기싸움의 상징이었다. 서로에게 웃으면서 일침을 가했다. 상대방에게 지금 당한 통수를 되갚아주겠다고 다짐하는 심리를 대변하기도 했다. 음식을 먹는 장면은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동시에 향후 전쟁의 향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때문에 이 드라마는 음식을 먹는 장면에 공을 많이 들였다. 특히 살벌한 싸움을 하는 태준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짜장면 흡입 장면은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해 드라마의 재미가 됐다. ‘펀치’가 지독히도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며 다소 어려울 수 있는 구조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 같은 갈등을 음식으로 풀어가는 장치, 쉬운 은유법이 많아 서로의 속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대사, 모든 인물들이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는 타당성 있는 성격 덕에 드라마가 어렵지 않고 쉽게 다가올 수 있었다. 음식으로 갈등을 배가 시키는 제작진의 의도 외에도 ‘짜장면 특수’라는 예상하지 못한 결과도 있었다. 드라마에서 조재현이 워낙 맛있게 짜장면을 먹는 까닭에 야밤에 짜장면을 시켜먹어서 살이 쪘다는 네티즌의 아우성이 허다했다.  
박경수 작가가 만든 중독성 있는 이야기, 감각적인 이명우 PD의 연출과 함께 배우들의 ‘명품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흡인력 있는 연기를 보여준 주인공 김래원, 급이 다른 악역으로 호감을 산 조재현, 인간의 이중적인 면모를 섬세하게 다룬 최명길, 권력 갈등이 휘몰아치며 선한 인물이 조명을 받기 어려웠음에도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낸 김아중과 서지혜, 비열한 연기를 맛깔스럽게 표현한 박혁권 등 출연하는 배우들의 열연은 언제나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펀치’는 초반 시청률 꼴찌로 출발한 후 중반 들어 시청률 1위로 올라섰다. 반전이 가능했던 것은 처음부터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안방극장 흥행 법칙인 로맨틱 코미디가 아닌 사회 반영 소재에도 이 드라마는 높은 완성도와 흥미로운 전개, 배우들의 열연이 모두 합쳐져 방영 내내 호평을 받았다.
한편 ‘펀치’ 후속작은 오는 23일 첫 방송되는 ‘풍문으로 들었소’이다. 이 드라마는 제왕적 권력을 누리며 부와 혈통의 세습을 꿈꾸는 대한민국 초 일류상류층의 속물의식을 통렬한 풍자로 꼬집는 블랙코미디다. 유준상, 유호정, 이준, 고아성 등이 출연하며 ‘아줌마’, ‘아내의 자격’, ‘밀회’ 등 화제작을 함께한 정성주 작가와 안판석 감독이 다시 한 번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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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 방송화면 캡처, S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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