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에 감사’ 윤희상의 미소와 새 출발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5.02.28 10: 40

“이러다 공을 못 던지는 것은 아닌지…”
지난 6개월 간, 윤희상(30, SK)은 기나긴 악몽을 꿨다. 머릿속에는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했다. 나쁜 꿈에서 조금 깨어나오는 듯 하면, 또 다시 통증이라는 악몽이 찾아왔다. 오히려 신체적인 통증보다 윤희상을 더 괴롭힌 것인 심리적인 스트레스였다. 욱신거리는 손가락을 보며 “내가 다시 마운드에 설 수 있을까, 아니 다시 던질 수는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온몸을 타고 돌았다. 그렇게 심신은 모두 지쳐갔다. 기나긴 터널이었다.
윤희상은 지난해 KBO 리그에서 가장 불운한 선수였다. 두 번이나 타구에 맞았다. 4월 25일 사직 롯데전에서는 타구가 급소를 강타했다. 5월 16일 대전 한화전은 결정적이었다. 강습 타구가 오른 손등을 직격했다. 급히 공을 잡아 던져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았지만 이미 그의 새끼 손가락 중수골은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은 직후였다. 아웃카운트 하나와 맞바꾸기에는 너무 뼈아픈 부위였다. 그렇게 수술대에 오른 윤희상은 더 이상 경기에 나설 수 없었다.

재활은 지루했다. 투수의 감각과 직결된 부위였다. 어깨나 팔꿈치 못지않게 신중히 다뤄야했다. 의학적으로 완치되는 시간, 공을 다시 잡는 시간, 근력을 회복시키는 데 시간, 그리고 실전감각을 회복시키는 시간, 그리고 타구에 대한 공포를 날려버리는 시간이 모두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나타난 ‘기복’은 윤희상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이었다.
윤희상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조금 나아졌다 싶으면 다시 안 좋아지고, 조금 좋아졌다 싶으면 또 안 좋아졌다. 왔다 갔다 했다. 이러다 다시 공을 못 던지는 건 아닌지 두려움까지 들었다”라고 했다. 공포를 이겨내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윤희상은 “사실 선발로 뛰다보면 한 시즌에 1~2번 정도는 타구에 맞기 마련이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 두 차례나 맞았다”라고 떠올렸다. 잠시간 침묵에 빠졌던 윤희상은 괴로운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무서웠다”라고.
하지만 복귀를 향한 의지는 윤희상을 다시 원점으로 돌려세우고 있다. 오랜 기간 고통과 두려움에 맞서 싸웠던 윤희상은 그 투쟁에서 승리자가 됐다. 이제 다시 정상적으로 공을 던진다. 27일 나고구장에서 열렸던 니혼햄과의 경기에서는 3회 마운드에 올라 니혼햄 정예타선을 상대로 3이닝 1실점의 호투를 선보였다. 1실점은 실투가 빌미가 된 솔로홈런 한 방이었다. 최고 구속은 145㎞까지 나와 한창 좋을 때에 다가섰다. 직구와 포크볼은 물론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까지 자신이 던질 수 있는 구종은 다 마음껏 던져봤다. 비로소 터널의 끝이 보여서 그럴까. 경기 후 윤희상의 얼굴은 밝았다.
나름대로의 복귀 시즌이다. 지난해 못 했던 것을 만회하려는 의지가 강할 법하다. 하지만 윤희상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단지 공을 다시 던질 수 있다는 것, 공포에 시달렸던 때를 ‘옛 기억’으로 만들 수 있다는 데 만족하고 있다. 윤희상은 “시범경기까지는 80개를 던질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서도 “정규시즌 목표는 없다. 그저 감독님이 하라는대로 맡은 바 임무를 다 하면 그만”이라고 이야기했다.
공을 다시 던질 수 있다는 소중함은 대다수의 투수들이 못 느끼고 지나가는 부분이다. 공기처럼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막 악몽에서 깬 윤희상은 그 작은 것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절실히 느끼고 있다. 그래서 공을 던질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 부상 이후 보지 못했던 옅은 미소조차 반갑기만 할 정도다. 꿈에서 깬 윤희상이 미소를 되찾았다. SK도 잃어버렸던 우완 에이스를 되찾았다.
skullboy@osen.co.kr
SK 와이번스 제공.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