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원 “‘펀치’ 대본 늦어 아쉬워, 뒷얘기 몰랐다” [인터뷰①]
OSEN 표재민 기자
발행 2015.03.02 06: 59

“총장님 저 이제 갈랍니다. 그 귀마개 안 어울립니다. 하지 마십시오.”
최근 종영한 SBS ‘펀치’에서 김래원(33)이 연기한 박정환은 죽는 순간 환하게 웃었다. 이태준(조재현 분)의 패션 감각을 지적하는 농담. 비록 죽기 살기로 싸웠지만 한 때는 한 배를 탔던 동지로서 태준에 대한 애정이 묻어 있었다. 죽는 순간 태준과(물론 유언 영상을 통해서지만) 소주 한 잔을 한다. 농담을 건네며 웃기까지 하는 이 장면은 숱한 명대사가 쏟아졌던 ‘펀치’에서 가히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펀치’는 대본이 늦어진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박경수 작가가 배우들을 믿었던 터라 후반에는 초반과 달리 세밀한 지문이 없었다. 이 장면 역시 웃음을 짓는 주문이 없었다. 김래원은 ‘펀치’에서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으며 미련 없이 떠나는 정환의 험난했던 마지막을 대변했다. 딸 박예린(김지영 분)이 살아갈 세상은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 죽기 전까지 행했던 태준 등 거악들과의 싸움은 숨이 막히도록 치열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 마친 정환이 죽음마저도 시리도록 행복하게 맞는 그 장면은 참 많은 시청자들을 울렸다.

정환은 시한부 인생이었다. 성공을 위해 남을 짓밟을 수 있는 정의와 거리가 멀었던 검사. 하지만 죽음이 코앞에 오면서 그가 더러운 세상과 싸워야 하는 일들이 쏟아졌다. 정의를 구현하는 일보다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쪽에 가까웠다. 하루가 다르게 생명의 끈을 놓게 되는 정환은 극이 진행될수록 살이 쭉쭉 빠지는 김래원의 외적 변화로 인해 더욱 실감이 났다.
“영화에 출연하기 전에 15kg을 뺐고, 이후 드라마 출연하면서 5kg이 더 빠졌네요. 지금은 71kg이에요. 사실 제가 먹는 것을 좋아해서 작품에 출연할 때는 의도적으로 몸무게 조절을 하죠. 살을 빼면 아파보일 것 같아서 뺐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피로가 누적되니깐 심하게 아파보이더라고요. 그래서 후반부에는 먹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때는 이미 공깃밥을 세 그릇씩 먹어도 잠을 못 자니깐 살이 빠지더라고요. 정말 마지막 한 달은 세수도 3일에 한 번씩 했어요. 머리카락을 감고 손질할 시간도 없어서 그냥 했죠. 정환이 분량이 워낙 많아서 시간이 더 없었어요.”   
 
‘펀치’는 제작팀이 총 세 팀으로 꾸려질 정도로 후반에는 급박한 촬영이 이어졌다. 워낙 베테랑 배우들이 즐비한 까닭에 NG 없이 촬영이 진행됐는데도 언제나 시간에 쫓겼다. 워낙 박경수 작가의 대본이 재밌었지만 그래도 후반 들어 대본이 더디게 나왔기에 촬영 여건이 좋지는 않았다. 이 같은 전쟁이 난 듯 급박하게 진행된 촬영은 결국 마지막 회 방송 사고라는 커다란 오점을 남겼다. 
“대본이 늦게 나온 것은 정말 아쉬웠죠. 뒷이야기를 알지 못하고 연기를 하고, 촉박하게 촬영이 진행되니깐 인물의 행동과 드라마의 전체적인 그림을 연구하는 시간이 적었어요. 마지막 회에서 제가 쓰러지는 장면이 있어요. 작품을 끝내놓고 나서 제가 그 때 웃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죠. 정환은 죽음 앞에서도 냉정한 인물이니깐 그런 모습이 나왔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어떨 때는 대사도 외우지 못하고 연기를 하니깐 나중에 지나고 나면 연기적으로 미묘한 실수가 눈에 보이는 거죠. 어떤 장면은 힘을 더 줘도 됐겠다 싶거나, 어떤 장면은 내가 좀 더 힘을 뺐어야 했겠다 싶었어요. 대본을 분석할 시간이 없었다는 게 참 아쉽죠.”
김래원은 연기에 있어서 참 완벽주의다. ‘펀치’의 대본 연습과 ‘영화 1970’ 보충 촬영과 겹쳤다. 그래서 혹시나 캐릭터가 겹쳐서 보일까봐 무던히도 노력했다.
“‘펀치’에서 행여나 정환이가 건달처럼 보일까봐 걱정을 했어요. 똑똑하고 말도 빠르고 명확하게 하는 사람인데 진정성 있게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정환이가 아파서 고통스러울 때 다들 됐다고 하는데도 전 만족하지 못했죠. 정환이가 악한 부분이 있는데 용서받는 이유가 고통과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 아프게, 그리고 어머니와 대화를 할 때는 나쁘지 않게 보이려고 했어요.” 
김래원은 ‘펀치’에 푹 빠져 지냈다. 무섭도록 집요하게 정환이라는 인물로 살았다. 방송 사고가 났던 마지막 회가 방송되고 있을 때 김래원은 ‘펀치’ 식구들과 삼겹살을 먹으며 종방연을 즐기고 있었다. 그는 소속사 대표와 통화를 하며 ‘펀치’의 못다한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느라 방송 사고를 미처(?) 보지 못할 정도였다.
“정말 명대사들이 많았어요.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었죠. 사실 배우로서 처음에 그 대사를 보면 이걸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하나, 어떻게 입을 떼야 하나 걱정이 들어요. 쉽지 않았어요. 정말 작가님은 마지막 몇 주 동안 잠을 못 주무셨을 거예요. 고생을 많이 하셨죠. 작품 중간에 전화를 드린 적이 있어요.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하나 여쭤보려고 했죠. 작가님이 ‘연기 좋다’고 하시는데 기분이 좋았어요. 마지막에는 편지도 써주셨죠. ‘정환은 래원 씨가 만들어낸 인물’이라는 말씀이 정말 좋았어요.”
‘펀치’는 19부로 기획됐다. 보통 평일 드라마가 16부 혹은 20부로 기획되는데, ‘펀치’는 결방을 예상해 19부로 마치겠다고 시작했다. 정환은 죽었지만, 정환과 대립했던 악한 인물들이 모두 몰락하거나 반성하면서 조금은 세상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마무리됐다. 김래원에게 결말에 대한 만족도를 물었다.
“이야기는 제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전 박경수 작가님이 만든 작품에서 인물을 연기한 것뿐이니까요. 전 아쉬운 부분이 없어요. 다만 19부여서 후반부에 조금은 늘어진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충분히 만족하는데 굳이 꼽자면 회차가 조금 적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죠. 16부에서 마무리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후반부에 박혁권 형이 정말 잘해주셔서 형이 연기하는 조강재 이야기가 재밌었던 것 같아요. 정말 고맙게 생각하죠. 다시 이런 역할을 맡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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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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