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빈볼 소동, 김민우 ‘떨떠름’, 이동걸 ‘삐뚜름’, 황재균 ‘씁쓰름’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5.04.13 07: 45

2015년 프로야구 초장부터 별로 아름답지 못한 ‘눈 먼 빈볼’ 소동을 보노라니 소태 씹은 맛이다.
12일 사직구장 경기에서 한화 이글스 새내기 투수 김민우(20)와 지난해 삼성에서 옮겨온 이동걸(32)이 롯데 자이언츠 내야수 황재균(28)을 잇달아 맞혀 양 팀 벤치 클리어링까지 벌어졌다.
김민우는 한화가 1-11로 뒤져 있던 4회 2사 1, 2루에서 황재균이 타석에 들어서자 초구에 황재균의 왼쪽 옆구리 부위를 맞혔다. 이동걸은 1-15로 크게 뒤져 있던 2사 2루에서 황재균을 상대, 공 2개를 황재균의 몸 쪽으로 찔러 넣었다. 두 개 모두 황재균이 흠칫 놀라며 피했으나 3구째는 역시 몸 쪽 깊숙한 곳으로 던져 등을 돌리며 피하던 황재균의 왼쪽 넓적다리에 제대로 맞았다.

황재균이 배트를 던지고 이동걸을 향해 마운드 쪽으로 걸어 나가자 김성철 주심이 황급히 달려가 중간에서 가로막고 나섰다. 그 장면에서 양 팀 선수들이 덕 아웃에서 쏟아져 나와 잠시 그라운드에서 대치했다. 김성철 주심은 곧바로 이동걸에게 “퇴장”을 선언했다.
김성철 주심은 “한화 포수가 계속 몸 쪽으로 사인을 냈다. 명백한 빈볼로 판단했다”고 퇴장 선언의 이유를 설명했다. 김 심판은 “김성근 감독이 ‘왜 퇴장이냐’고 항의하기에 ‘고의적인 빈볼’이라고 하자 ‘빈볼이 아니고 투수가 제구가 안 돼 그런 것’이라고 하기에 ‘명백한 빈볼이어서 퇴장을 날렸다’고 하자 ‘알았다’며 들어가셨다”고 항의 내용을 전했다. 
사건은 간단했지만 빈볼의 당사자들의 표정은 좀 착잡해보였다. 방송 중계 화면을 유심히 봤다.
김민우는 공을 던지고 나서 내키지 않았다는 듯한 ‘떨떠름한’ 표정이었고, 이동걸은 못마땅하다는 듯 ‘삐뚜름한’ 인상이었다. 공에 얻어맞은 황재균은 ‘씁쓰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빈볼 소동은 영 개운치 않다. 그 경기를 중계했던 MBC 스포츠 박재홍 해설위원은 이동걸 퇴장과 관련, “타자들은 초구가 날아오면 예감할 수 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없는 빈볼이었고, 정당한 판정이었다.”고 단언했다. 정민철 해설위원 역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투구였는지, 하지만 이럴 필요는 없다. 명확한, 의도된 투구였다”고 풀이했다.
현장을 지켜본 OSEN 이대호 기자의 기사에 따르면 그 경기 후 이종운 롯데 감독은 “남의 팀에 피해주면 자신의 팀에도 피해가 간다는 걸 분명히 알아야 한다. (황)재균이 무슨 잘못인가? 열심히 하는 선수일 뿐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무슨 의도로 그렇게 했는지. 하지만 오늘 우리는 똑같이 할 가치가 없어서 참았다. 앞으로 우리 선수를 가해하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강성 발언을 했다.
빈볼은 물론 원인이 있다. 하필 황재균을 골라 표적으로 삼은 것은 그 경기 1회에 7-0으로 앞서 있던 상황에서 도루를 한 것, 또 지난 10일 양 팀 간 시즌 1차전 때 롯데가 8-2로 앞선 6회에 황재균이 3루 도루를 한 것이 한화 벤치를 자극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이를테면, 기 싸움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기 싸움이야 경우에 따라 필요하겠지만, 선수의 생명을 볼모로 한 빈볼은 자칫 큰 불상사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비정’한 짓거리다. 빈볼은 눈이 없다.
황재균의 빈볼을 한화 벤치가 직접 지시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김성근 감독은 구단 홍보를 통해  “내가 지시한 것이 아니다”는 해명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종훈 전 LG 트윈스 감독은 요즘도 ‘옛말’을 한다. 초대 신인왕(1982년) 출신인 그는 빈볼 한 개로 인해 선수생활을 일찍 접어야했던 뼈아픈 경험을 지니고 있다. 
1983, 84년 타격 5, 6위로 3할대 이상 쳐냈던 박종훈은 1985년에 절정의 타격감을 자랑하며 장효조(당시 삼성)와 리딩히터를 다투었다. 그해 시즌 중후반까지 3할8~9푼의 고타율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박종훈은 7월17일, MBC 청룡과의 후반기 3차전 잠실구장 경기에서 OB 베어스 2번 타자, 중견수로 출장, 첫 타석과 두 번째 타석에서 안타를 뽑아냈다.
3번째 타석에 들어서자 당시 MBC 투수 오영일이 노골적으로 위협구를 던졌다. 첫 공이 머리 위쪽으로 날아왔고 두 번째 공이 박종훈의 옆구리를 겨냥하고 들어왔다. 순간 박종훈은 몸을 틀었으나 공이 허리부위를 정통으로 때렸다. 엉덩이 바로 위쪽 요추에 얻어맞은 박종훈은 그로 인해 타격 슬럼프에 빠져 장효조(.373)에게 밀려나 타격 2위(.342)에 그쳤다.
한참 잘나가던 박종훈은 그 후유증으로 인해 시름시름 내리막길을 걸었고 30살이던 1989년에 조기에 선수생활 막을 내리고 말았다. 허리통증이 계속되고, 체력이 떨어지는 시즌 후반에는 타격 집중이 잘 안된 것은 물론 수비에 나가서도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고통이 심했다고 그는 증언한 적이 있다. 
사례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어쨌든 타자들의 생명을 직접 위협하는 빈볼만은 서로 삼가는 게 마땅하다. 누구 좋으라고 하는 못된 짓인가.
‘2015 KBO 리그규정’의 ‘경기 중 선수단 행동관련 지침’ 맨 앞에 ‘동업자 정신을 망각한 비신사적인 플레이, 고의적인 빈볼 투구 및 슬라이딩 시 발을 높이 드는 행위 등 금지’라고 명시해 놓았다. 몸이 재산인 선수들끼리 상호 보호 정신을 뭉개버린다면, 우리네 정치판과 다를 게 무엇인가. 
/홍윤표 OSEN 선임기자
빈볼 소동의 피해자 황재균(제공=롯데 자이언츠)과 빈볼과 빈볼성 투구를 한 이동걸과 김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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