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우에게 ‘연산군’은 조선판 ‘햄릿’이었다 [인터뷰]
OSEN 정유진 기자
발행 2015.05.17 09: 28

배우 김강우에게 연산군은 서양 연극 속 ‘햄릿’과도 같았다. 매우 익숙했지만, 그래서 더 도전이 되는 역할. 그래서 김강우는 일주일간 햇빛도 없는 암실에 들어가 스스로를 깎고 또 깎으며 이해가 되지 않는 연산군을 이해하려 노력했고, 과감하다 할 수 있는 노출연기를 소화했다.
영화 ‘간신’(민규동 감독) 속 연산군은 천재적인 예술가이자 잔인한 미치광이다. 방송이나 영화에서 수없이 되풀이 돼 온 캐릭터지만, 그래서 더 재창조의 여지가 있기도 했다. 
김강우는 최근 OSEN과의 인터뷰에서 “힘든 걸 예상하면서 힘든 게 재밌을 거란 생각이 들 만한 캐릭터였다”라며 이번 배역을 택한 이유를 밝혔다. 영화 속 무수한 연산군의 기행들은 시나리오만 봐도 어려운 점들이 많았지만 단순히 ‘힘들 것이다’란 생각은 작품 선택에 영향을 미치치 못했다.

“실존했던 인물이지만 정말 그렇게 살았을까 궁금하기도 했어요. 실록이나 연산군 관련 역사책을 보면 그렇게 살았더라고요. 연기 입장에서는 정말 재밌어요. 상상하는 재미도 있지만 상상을 뛰어넘는 실제 사건들이 있었다는 건 연기하기에 너무 재밌는 소스죠. 학교 다닐 때 ‘햄릿’ 공연을 했는데 그러면 우리나라에는 (이와 비교할 만 한) 무슨 캐릭터가 있을까? 외국에는 ‘햄릿’이 다양한 걸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인데, 그 때 떠올렸던 게 연산군이었어요. 사극을 한다면 ‘진짜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시나리오가 들어왔어요.”
방송과 영화에서 무수히 반복됐던 연산군의 캐릭터들과의 차별점으로 만들어진 것이 ‘예술가’란 설정이었다. 김강우는 연산군 하면 떠올리는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에만 갇혀 있지 않은 ‘간신’ 속 연산군의 캐릭터가 매력이 있었고, 실제 연기에서도 이 부분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차별성이 보였어요. 감독님이 고민을 하면서 깔아놓은 예술가적인 기질입니다. 역사적로도 연산군이 그런 기질을 발휘했다고 해요. 우리가 본 작품들에서는 연산군이 어머니의 폐비 트라우마로 폭군이 된 것으로 표현했는데, (생략) 폭군이 된 과정을 알고 있었는데 이걸 이용한 거면 어떨까? 생각해봤어요. 더 큰 욕망이 있었던 거예요.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강력한 왕권을 갖고, 넘치는 끼를 발현해 보고 싶은 마음이요. 그래서 연회 장면이라던지 그림을 그린다던지 춤을 춘다던지 칼싸움을 하면서 시를 읊는다던 지의 장면으로 표현됐으면 했어요.”
연산군의 역할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김강우는 영화를 준비하며 홀로 밀실에 들어가 일주일을 지냈다. 일종의 사이코패스 혹은 광기가 가득한 왕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과 단절돼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했다. 연산군이라는 인물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 이해를 하고 싶었던 것. 하지만 5일간의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깨달은 것은 ‘그래 진짜 그렇게 살아본 사람이 있어?’라는 결론이었다. 
 
“촬영에 들어가기 한 달 전에 일주일동안 방을 구해 빛을 다 차단했어요. 먹는 것도 다 그 안에서 해결하고 술도 종류별로 놔두고 시계도 없애고 휴대폰도 없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고 보냈어요. 이 사람은 새벽 3시에도 신하들을 호출해서 음주가무를 즐기고 시를 쓰고 울고, 예측할 수 없는 패턴을 사는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그렇게 일주일 사는데 그래도 이게 어떻게 해결이 안 되는 거에요. 5일이 지났을 때 결론은 ‘그래, 그렇게 살아 본 사람이 있어?’에요. 그냥 내가 만들면 되는 거고, 내가 가는 길이 그거라고 생각해야겠다 싶었어요. 유일하게 연락한 사람은 감독님이었어요. 서로 문자를 계속 주고받았죠. 연애하듯이 24시간동안 시도 때도 없이요.”
김강우는 영화 속 잔인한 장면들이 여성 관객들에게 불쾌하게만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개봉을 앞두고 다른 어떤 작품보다 긴장하고 있어요. 어떤 평가가 올 지에 대한 긴장감이죠. 흥행은 모르겠어요. ‘여성분들이 어떻게 봤을까’에 대한 궁금함이 있어요. 불쾌하게만 보신다면 안 될 텐데. 분명 여기에 연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숭재(주지훈 분)와의 장면이 유일하게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장면인데 거기에 그런 대사가 있어요. ‘나를 죽여 달라.’ 브레이크가 안 걸리는 거에요. 스스로 목숨 끊을 용기도 없을뿐더러. 그런 연산군의 모습이 관객들에게 모성애를 자극할 수 있는 인물이라 생각합니다. 불쌍해요.”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만큼 찍는 과정도 쉬운 건 아니었다. 노출도 있었고, 돼지 떼 속에서 곤욕을 치러야하는 장면도 있었다. 영화를 찍는 중간에는 술병 속에 잘못 넣어놓은 석유를 마시는 사고가 일어나 3일간 입원을 하기도 했다. ‘1만 미녀’라는 설정 때문에 여러 명의 여자 연기자들 앞에서 연기를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돼지는 통제가 안 돼요. 진짜 돼지들이었어요. 열 몇 마리 정도 있었고 나머지 사이드에 있는 아이들은 CG로 채웠어요. 밤새 찍었거든요. 걔네도 스트레스를 받아서 오줌도 싸고, 똥도 싸고 저는 거기에 범벅이 되고…. 직접 살이 닿으니까요. 저는 나중에 피부병이 걸려서 고생을 했는데 걔네도 겁이 난 상황이라 제 연기보다 돼지들을 진정 시키는데 고생했어요. 그래도 저는 바스트 신을 순식간에 찍은 거예요. 중점은 돼지였죠. 돼지의 컨디션과 주저앉으려는 애들을 세워가며 찍는 것. 지치면 걔네는 누워요. 시나리오 봤을 때부터 나는 그냥 죽었다 생각하고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상상보다 많이 힘들었죠,”
고생 아닌 고생을 한 후 김강우가 이를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게 드라마 ‘실종느와르M'이었다.
 
“작품이 끝나고 바로 한 게 ‘실종느와르M’이에요. 성격이 너무 달라요. 이성적이고 차분하고. 모든 톤이 그래서 했던 이유도 있어요. 저는 지금까지 그렇게 심각한, 정신적으로 타격을 받을만한 캐릭터를 해본 적이 없고, 캐릭터를 빠져 나오기까지 진짜 빨리 빠져나와요. 대사도 금방 까먹고. 이 캐릭터를 하고 나서 그렇게 타격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잔재가 많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종느와르M’을 한 게 다행이에요. ‘실종느와르M' 첫 촬영 때는 너무 심심하더라고요. 이성적으로 한 톤의 대사를 치는데, 심심하면서 너무 힘들었어요.”
광기 가득한 역할로 ‘국민 형부’라는 이미지가 깨지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김강우는 대수롭지 않게 “그렇겠다”고 대답했다. “배우는 캐릭터로 말한다”는 것. ‘국민 미친X’이 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는 웃음을 터뜨리며 “미친 게 이유가 있어야 한다. 타당성도 있어야 하고, 연민을 줘야 한다. 좋게 봐 달라”고 답했다.
“감독님이 너무 저를 부추겼어요. (웃음) 그런 연기가 재밌어요. 아슬아슬 선타기 같은 것? 작위적이냐 아니냐의 조율은 감독님이 해줄 거라 믿었고, 이 정도 사이즈의 영화를 찍기에 회차도, 예산도 부족해서 제 캐릭터에 제가 집중하지 않으면 그날은 힘든 촬영이 되는 거에요. 오버해서 좀 더 가주는 게 편집에서 보완이 되는 거죠. 그런데 못 가면 벌써 한계가 정해지는 거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어요.”
흥행에 대한 부담은 많지도 적지도 않다. 오히려 “가정의 달에 19금이 괜찮지 않느냐”는 너스레에는 여유로움이 담겨 있었다. 자신감이라면 자신감, 기대감이라면 기대감이었다. 흥행이 결과의 전부를 말해주진 않겠지만, 분명 영화 ‘간신’은 그의 도전과 노력이 어느 때보다 들어간 작품이기에, 김강우의 대표작이 될만한 작품이라 해도 될 것이다.
“가정의 달에 ‘19금’은 괜찮지 않아요? 온 가족과 함께 그렇기 때문에 예측을 못하겠어요. 19금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만족하는 효과가 있길 바라죠. 우리는 열심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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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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