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루를 하지 말라는 사인은 특수한 상황에서만 나오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승부처에서 도루성공률이 낮은 선수가 리드폭을 길게 유지하고 있을 때다. 무리수를 두다 자칫 경기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승부와 무관한 상황에서는 도루를 하라는 사인도, 하지 말라는 사인도 나오는 게 어색하다. 그렇지만 최근 KBO리그에서는 이와 같은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야구 불문율이 도마에 오르면서 불필요하게 상대를 자극하지 않겠다는 게 이유다.
지난 달 23일 kt위즈파크에서 열린 한화-kt전에서 사건이 터졌다. 경기가 끝난 뒤 kt 주장 신명철이 흥분하며 한화측에 항의를 했다. 사건의 발단은 도루, 한화는 6-1로 앞선 9회초 1사 1루에서 주자 강경학이 2루 도루를 했다. 김경언까지 볼넷을 얻은 뒤 송주호의 병살타로 득점은 없었지만 이 장면에 kt 더그아웃이 분노를 한 것이다.
이 사건이 논란이 되자 한화 김성근 감독은 다음 날 "도루하지 말라는 사인을 냈는데 강경학이 뛰었다. 그래서 대주자 허도환으로 교체했다. 조범현 감독에게는 따로 사과를 했다"고 밝혔다. 감독마다 불문율에 대한 기준은 다르겠지만, 적어도 김 감독에게 '9회 5점 차 도루'는 불문율에 포함된다는 걸 의미한다.
비슷한 장면은 29일 울산 문수구장에서 열린 한화-롯데전에서도 나왔다. 롯데는 6-1로 앞선 8회 1사 후 김민하가 볼넷으로 출루했다. 이때 롯데 이종운 감독이 양손으로 가위표를 그리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다음 날 이종운 감독에게 확인해본 결과 "도루를 하지 말라고 사인을 보낸 게 맞다. 괜히 상대를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 감독은 불문율에 대해 물어보자 "같은 점수 차라도 스코어에 따라 달라진다고 본다. 5-0과 10-5가 주는 느낌은 다르다"고 답했다. 이 감독의 말대로 불문율은 정확하게 규정할 수 없다. 그래서 불문율이다. 만약 '몇 회 몇점 차 이내 도루 금지'와 같은 조항이 생긴다면 성문법이 되는데 그건 야구의 본질을 크게 벗어나는 일이다.
올 시즌 KBO리그는 불문율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얼굴을 붉힐 일이 많아지고, 그에 따라 불문율도 자꾸 도마에 오른다. 감독들이 도루를 하지 말라고 사인을 내는 건 바뀐 리그 분위기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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