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는 왜 '핵노잼' 미운털이 박혔나
OSEN 이혜린 기자
발행 2015.06.06 15: 38

[OSEN=이혜린의 스타라떼] "한국 영화 핵노잼."
온라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응이다. 그 많은 제작자와 감독, 배우들이 '한국 영화'라는 한 카테고리로 묶여, 그냥 '재미 없다'도 아니고 '핵' 재미 없다는 말을 들으니 영화관계자들 입장에서 억울할 만도 하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악플로만 보고 그냥 넘기기엔 의미있는 징표다. 한국 영화가 선보여온 감성, 흥행을 위해 덧붙이는 사족, 기승전결 짜는 공식 등에 더 이상 마음이 동하지 않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불과 1년 전, '명량'과 '국제시장'이 중장년층을 끌어들이며 쌍끌이 1천만 시대를 열었지만, 그 사이 20~30대 취향이 크게 변한 것을 놓쳤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취향은 흥행을 예상하지 못했던 외화의 선전으로 나타났다. 한국 영화에 밀려 기사에 소개될까 말까했던 '킹스맨'이 600만명을 동원했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스파이'가 200만 돌파를 앞두고 있다. 천만을 돌파한 '어벤져스2'가 서울 로케이션 '버프'를 받았다 해도, 어쨌든 '어른들은 싫어하는' 히어로물을 천만이나 보는 시대가 열린 셈이다.
중요한 건 수치가 아닐지도 모른다. 몇몇 한국 영화도 '폭망'이라 하기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이슈'다. 이슈메이커 역할은 그야말로 외화의 몫으로 완벽하게 넘어갔다. '킹스맨'은 5포세대로 분류되는 20대들의 좌절을 건드렸고, '어벤져스2'는 초보자는 이름도 외우기 힘든 마블 세계관을 굳건하게 뿌리내렸다. 사막 밖에 나오지 않는 '매드맥스'의 먼 미래 배경도 많은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이 과정에서 '캐릭터'에 집중하는 팬덤 현상도 나타났다. 섹시한 수트발을 자랑한 콜린 퍼스는 좌절한 젊은이들이 만나고 싶은 멘토의 완벽한 이상향을 제시하면서 뜨거운 인기를 모았고, '어벤져스2'는 누구 하나 걸려들지 않을 수 없는 매력적인 인물들을 대거 내세우면서 팬덤을 불렸다. 특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인기는 위협적. 바통을 이어받은 '매드맥스'의 퓨리오사는 인간적 고뇌를 선보인 멋진 언니로, '스파이'의 멜리사 맥카시는 웃기지만 우습지 않은 언니로 큰 사랑을 받았다.
최근 한국 영화 속 캐릭터가 영화를 빠져나와 별도의 이슈를 만들어내는 아이콘이 된 사례가 거의 없었다는 점은, 한국 영화 속 캐릭터 구축이 동시대 관객들의 니즈와 동떨어졌다는 걸 반증할만하다.
기승전결 구도도 변주할 시점을 놓쳤다. 초반부 웃기고 후반부 울리는 구도는 이미 식상해졌지만 여전히 많은 영화들이 이 틀에 갇혀있다. 기껏 웃기고 사랑스러웠던 인물은 후반부 신파에 돌변하고, 관객처럼 방황하던 주인공들은 갑자기 사랑에 눈 뜬다. 지난 상반기 전형적인 내러티브를 벗어난 작품은 '스물'이 거의 유일했다.
더구나 느렸다. 기획부터 개봉까지 기간이 꽤 길어서, '쎄시봉'은 MBC '놀러와'가 열풍을 만들어낸 2011년 이후 4년이나 지나 극장에 걸렸다. 그 사이 대중은 향수를 자극하는 노래들로 벌써 90년대 음악을 소비해버렸다. '쎄시봉'은 흘러가도 너무 흘러간 코드였다. '오늘의 연애'가 마케팅 주요포인트로 삼은 '썸'은 벌써 1년전 소유X정기고가 부른 '썸'으로 피크를 맞았던 것이었다. 영화라는 게 원래 오래 걸리는 작업이라고 포기하지 않고, 기획부터 개봉까지 기간을 최대한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영화계는 '핵노잼'의 주범을 뻣뻣한 투자사로 돌리고 있는 분위기다. 상업적 흥행이 담보된 작품에만 투자하고, 제작 도중에도 더 많은 대중이 쉽게 즐길 수 있게 영화의 수준을 하향평준화시켜버린다는 것이다. 일리있는 지적이지만, 그건 할리우드 영화가 더 심할테다.
관객들은 더 이상 영화의 국적에 큰 관심이 없다. 같은 값이면 한국 영화를 보자던 관객들은, 같은 값이면 더 스케일이 큰 할리우드 영화를 보자고 맘을 바꿨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골리앗이 이기는 건 그리 나쁜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세대의 출현이다. 오히려 그게 자연스럽다고 배우며 자랐다.
스케일은 결정적이다. 손바닥만한 스마트폰으로 할 수 없는 게 없는 시대, 극장만이 제공할 수 있는 건 압도적인 스펙터클이다. 감동적인 눈물은 드라마로도 흘릴 수 있고, 배꼽잡고 웃는 건 3분짜리 유튜브 동영상이 더 효율적이다. 떡밥과 스릴은 미드가, 소소한 일상의 재발견은 일드가 독보적이다. 관객들의 집중력은 크게 떨어져서, 1시간 반 상영 도중에도 카톡 창은 수시로 울린다.
자본이 모자라 스펙터클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한국영화가 가야할 길은 뭘까. 한국 관객들이 어쩌다 한국 영화 속 주인공보다 "별 스토리도 없는" 블록버스터 주인공에게 이입을 하게 됐나. '어벤져스'만 피한다고 답이 나오진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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