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통신] 농구대표팀이 먹는다는 도시락, 먹어보니
OSEN 서정환 기자
발행 2015.09.30 06: 45

‘농구대표팀이 중국에서 먹는다는 도시락. 제가 한 번 먹어보겠습니다.’
남자농구대표팀이 연일 격전을 치르고 있다. 대표팀은 중국 후난성 장사에서 개최된 2015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에 출전하고 있다. 29일 결선 마지막 경기서 카자흐스탄을 물리친 한국은 내달 1일 이란과 8강전을 치른다.
운동선수는 잘 먹어야 힘을 쓴다. 그런데 입맛이 완전히 다른 중국에서 잘 먹기가 쉽지 않다. 현재 대표팀은 주최 측에서 제공한 5성 호텔에 묵고 있다. 말이 5성이지 시설이 낙후됐다. 식사도 거의 중국식만 제공한다. 선수들은 대회 초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을 많이 했다.

결국 대표팀은 인근 한식당에서 도시락을 배달시켜 먹고 있다. 매 끼니가 아니라 하루 한 끼가 한식도시락이다. 그것도 매일이 아니라 경기가 있는 날 오후에 먹는다. 다행히 맛이 좋아 선수들 컨디션 관리에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기자는 29일 오후 장사시내에 위치한 한식당 ‘윤가네’를 찾았다. 중국출장 일주일 동안 느끼한 중국음식만 먹다보니 선수들의 기분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다. 선수들은 어떤 음식을 먹는지 궁금증도 풀 겸 택시를 잡아타고 시내로 나섰다.
기자가 묵는 미디어호텔은 선수단호텔과 500미터 근처에 있다. 택시를 타고 시내 쪽으로 30분 정도 이동하니 한식당에 도착했다. 친절한 이상훈 사장이 반갑게 맞았다. 선수들은 어떤 음식을 먹는지 물으니 “운동선수니까 꼭 고기가 들어간다. 제육볶음이나 불고기를 넣는다. 나머지는 계란말이나 김치 등 우리가 흔히 먹는 한식이다. 김치전 등도 들어간다”고 소개했다.   
선수들이 즐겨 먹는다는 제육볶음에 김치찌개와 동그랑땡을 시켰다. 총 가격은 약 1만 7000원 정도였다. 오랜만에 먹는 한식이라 맛은 좋았다. 그러나 한국에서 먹는 그 맛과는 약간 달랐다. 냉동인 것 같은 동그랑땡은 너무 튀겨서 딱딱했다. 그래도 중국음식과 비교하면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게 눈 감추듯 한상을 비웠다.
이 사장은 “지금 내온 요리는 중국인 아주머니가 했다. 한국선수들이 먹는 음식은 한국조리사가 해서 더 맛있다. 장사에서는 한국음식 재료자체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고추장이나 김치 등을 베이징 등지에서 공수해오다보니 운송비가 많이 든다”고 설명했다. 
 
장사시에는 교민이 4천 명 정도가 산다고 한다. 그만큼 한국 사람이 적다보니 한국음식도 매우 귀했다. 한국음식을 파는 식당이 있더라도 중국사람이 만들어 맛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윤가네’의 경우 한국사장이 운영해 맛있기로 소문난 집이었다. 특히 한국연예인들이 장사에 올 때 꼭 들르는 집이다. 지난 주에 빅뱅이 콘서트 차 왔을 때도 밥을 먹고 갔다고 한다. 식당 벽면에는 ‘싸이’의 사인이 걸려 있었다.
대표팀의 도시락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었다. 도시락의 원래 가격은 개당 1만 8000원 정도다. 그런데 이 사장이 특별히 개당 만원에 맞춰주기로 했다. 국가대표팀의 딱한 사정을 듣고 팔을 걷어붙이고 돕기로 한 것.
이 사장은 “사실 처음에 하지 않으려 했는데 국가대표라는 말을 듣고 했다. 타지에 온 선수들이 밥이라도 잘 먹어야 힘을 낼 것 아닌가. 원래 20인분을 배달했는데, 15인분으로 줄었다. 국가대표팀인데 정말 경제사정이 좋지 않은 것 같다. 개인당 12만원이던 훈련수당도 6만원으로 줄었다고 들었다”며 안타까워했다. 현재 선수단은 선수와 코칭스태프, 지원스태프까지 총 20명이다.
결국 애국심이 발동한 이상훈 사장은 국가대표 선수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임시 국가대표 영양사’로 활약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중국대표팀은 경기장 옆 5성 카빈스키 호텔에서 잔다. 음식재료부터 모두 최고급만 쓰는 호텔이다. 중국식뿐 아니라 서양식까지 전부 나온다. 정말 맛있다. 거기 조리사가 독일 사람인데 내 친구다. 자기가 중국대표팀을 위해 요리한다고 하더라. 반면에 한국선수들이 묵는 호텔은 매우 오래됐고, 음식도 매우 낙후됐다. 그래서 내가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이 사장은 대표팀의 빨래를 해주는 업체까지 연결을 시켜줬다고 한다.
기자는 가게가 문을 여는 오후 4시 30분에 식당을 찾았다. 마침 이상훈 사장이 대표팀에 도시락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는 대표팀을 위해 영업시간도 아닌 시간에 도시락을 만들어 거의 매일 왕복 한 시간이 걸리는 길을 마다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배달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괜히 맡았다는 후회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잘 먹고 한국을 대표해 열심히 뛸 선수들을 생각하니 보람을 느낀다”며 웃었다.
이 사장은 얼굴사진을 찍자는 기자의 제안은 한사코 거절했다. 몸과 마음이 따뜻해진 기자는 ‘김밥 도시락’을 싸들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한국은 카자흐스탄을 79-63으로 이겼다. / jasonseo3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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