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톡톡] ‘엑스맨 : 아포칼립스’, 달콤한 꿈을 꾸었다
OSEN 라효진 기자
발행 2016.05.28 08: 30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주요 장면과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신의 존재를 신뢰하게 만드는 방법은 뭘까. 신이 그 자신의 실체와 능력을 믿지 못하는 자들 앞에 보이는 것이 가장 간단할 터다. 가령 신이 정말로 있다는 명제에 모두가 합의했다고 하더라도, 그 진짜 모습에 대한 궁금증은 필연적으로 따른다.
그러나 신의 실재를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사실로 만들었던 이는 아직 없다. 신조차도 속시원히 증명한 적 없던 그의 존재를 믿으라고 한다고 덥썩 믿기는 어렵다. 우리는 단군과 예수의 등장을 기준으로 해를 세지만, 이것이 그들을 믿는다는 소리는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 속 어떤 인간들은 자신의 모습을 본따 만든 신의 형상을 숭배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신이란 숫제 인간의 발명품이라 믿어도 무방할 지경이다. 진짜 신이 이를 본다면,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엑스맨’ 프리퀄 트릴로지의 대미를 장식할 ‘엑스맨 : 아포칼립스’(이하 아포칼립스)에는 진짜 신을 자처하는 자가 나타나 신에 필적하는 힘들을 만들어 온 인간의 오만함을 꾸짖는다. 최초이자 최강의 뮤턴트 아포칼립스(오스카 아이삭 분)가 그 주인공이다. 이름부터가 묵시록을 뜻하는 아포칼립스는 라, 크리슈나, 야훼 등 신으로 호명돼 왔다. 오랜 잠을 자다 깨어난 그가 인간에게 건넨 첫 마디는 “이 세상은 누가 다스리느냐”. 돈과 무기, 구조들이 지배하는 세계를 목도한 아포칼립스는 인간들이 자신을 배신했다며 나약한 이들의 세상을 끝장낼 것을 결심한다. 그에게 작금의 문명은 곧 타락을 의미하는 탓이다.
그 때부터 아포칼립스는 성경 속에 등장하는 포호스맨 격의 네 기사를 모으기 시작한다. 각자 세상에 대한 분노를 지니고 있는 스톰(알렉산드라 쉼 분), 사일록(올리비아 문 분), 아크엔젤(벤 하디 분), 그리고 매그니토(마이클 패스밴더 분)를 차례로 만나 자신이 가진 엄청난 힘을 느끼게 해 준 후 한 편으로 끌어들인 아포칼립스의 논리는 ‘약육강식’. 강한 자들의 세상을 만들겠다는 그는 멸망을 정화라 여긴다.
매그니토의 자취를 더듬던 찰스 자비에(제임스 맥어보이 분)와 세레브로 상으로 마주친 아포칼립스는 자신의 야욕을 본격적으로 드러낸다. 뮤턴트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가장 강한 정신력을 갖고 있던 찰스도 비로소 아포칼립스의 강한 힘을 느끼고는 좌절을 겪는다. 그러나 그는 바벨탑에서 활을 쏜들 신에게 닿지 않음을 알면서도 신이라 불린 자와의 전면전을 선포한다. 찰스는 세계 도처에 살고 있는 뮤턴트들에게 아포칼립스의 인류 절멸 계획을 전하다 “강력한 자들은 힘 없는 자를 지켜라”라고 말한다.
자신에게 대항하는 찰스를 정신세계에서 제압하면서 아포칼립스의 달콤한 꿈은 이뤄지는 듯했다. 그러나 찰스가 꿈꾸는 세상은 그렇게 나약하지 않았다. 뻔하지만 강렬한 울림을 준 “난 혼자가 아니다”라는 그의 말과 함께 엑스맨 최강의 존재 진 그레이(소피 터너 분)는 각성한다. 마침내 해방된 힘을 조종할 수 있게 된 진 그레이는 다크 피닉스 사가로 거듭나 가짜 신 아포칼립스를 해치운다. 아포칼립스의 ‘스위트 드림’은 ‘All is reveal(모든 것이 밝혀졌도다)’라는 마지막 사자후를 남긴 채 깨지고 말았다.
이제는 찰스가 자신이 지킨 세상에서 단꿈을 꿀 차례다. 의지와 상관 없이 돌연변이로 태어난 이들에게 주어진 힘을 저주라 불러 왔다. 그런 뮤턴트들에게 끊임 없이 능력은 ‘gifted’라고 말해 왔던 찰스 역시도 사랑하는 여인 모이라(로즈 번 분)와의 기억을 지우면서까지 선을 그었던 터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 낸 또 다른 신, 문명은 생득적 조건만으로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위해 발명됐다는 사실을 아포칼립스와의 대결을 통해 알게 된 찰스는 모이라와 보냈던 시간들을 복원한다.
쿠바 해변의 따뜻한 햇볕과 사각이는 모래, 그리고 연인과의 한때를 다시 공유할 수 있게 된 두 사람은 누구보다 행복했다. 세상은 다시 무기를 만들고 이를 서로에게 겨누지만, 프로페서X가 된 찰스는 변화를 포기하지 않았다. 본성을 원망하지 않아도 되는, 분노보다 행복이 원동력이 되는 삶을 위해 찰스는 기꺼이 소수자 ‘엑스맨’으로서 연대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공교롭게도 ‘아포칼립스’의 신스틸러 퀵실버(에반 피터스 분)의 화려한 활약 장면에서 Eurythmics의 ‘Sweet dreams(are made of this)’가 흐른다. 가사만 들으면 돌연변이들의 주제곡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는 이 곡은 퀵실버가 자신을 차별받게 하던 힘을 해방시키는 장면에 등장하며 통쾌한 전복의 순간을 연출해냈다. 이 찰나에 희열을 느끼는 우리는 엑스맨과 함께 달콤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길을 찾는 중일 것이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엑스맨 : 아포칼립스’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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