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독산동 싼타페 급발진 의심사고, 국과수가 실타래 풀었다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6.08.08 08: 32

 자동차 급발진 사고는 운전자들에게 가위눌림 같은 공포감이다. ‘급발진 의심 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지만 명확한 인과관계는 밝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원인을 모르는 실존하는 사고’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러시안 룰렛’이다.
최근 OSEN은 급발진 의심 사고 사례를 취재하다가 매우 드물게 인과관계가 명확히 설명 된 경우를 확인했다. 이 사례는 ‘급발진 의심 사고’로 이미 언론에 크게 보도 됐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규명이 되지 않으면 또 하나의 ‘급발진 확인 사례’로 남을 일이었다. 과학적으로 입증 된 감정 결과 또한 급발진 의심 사고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기에 감정을 맡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담당관의 인터뷰 형식을 빌려 해당 사건을 소개하기로 한다.
이 건은 결론부터 말하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 운전자 조작 실수로 판명이 났다. 이번 감정 결과는 그러나 개별 사건의 종결이라는 단계를 넘어 그 동안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았던 급발진 의심 상황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고 개요
2016년 5월 23일, 서울 금천구 독산동의 어느 도로. 40대 중후반의 여성 운전자가 몰던 싼타페 차량이 정지 신호를 받아 대기하고 있던 앞차를 갑자기 추돌한 뒤 후진과 전진을 반복하며 2차례나 더 들이받고 가까스로 멈췄다.
사고 차량은 2015년 12월 출고 돼 주행거리가 4,000km에 불과한 신차급이었고, 운전자는 운전경력이 27년이라고 했다. 해당 도로는 약간의 경사는 있었지만 사고 운전자가 자주 다니던 익숙한 길이다. 운전자는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차가 말을 듣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차량 내부에서 촬영한 블랙박스 영상은 전형적인 급발진 사고의 양상을 띠었다.
사고 조사를 맡은 금천경찰서 교통조사계 이동수 팀장은 “사고 상황을 설명해 주는 명백한 자료들이 많았다. 경험상 직감적으로 와 닿는 점이 있었지만 언론에 크게 보도 되는 등 사회적으로 파장이 일었던 사고라 정확한 원인 규명을 위해 국과수 감정을 의뢰했다”고 말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자료가 매우 풍부한 드문 사례"
정밀 감정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울과학수사연구소 이공학과 조건우 공업연구관(Forensic Engineer)팀이 맡았다. 물리학을 전공한 조건우 이학박사는 교통사고 감정 분야에서만 16년을 일해온 베테랑이다.
조 박사는 ‘독산동 싼타페 급발진 의심사고’를 두고 “보기 드물게 자료가 풍부한 경우”라고 전제했다. 차량 내부에 블랙박스가 달려 있어 사고 당시의 상황이 영상으로 녹화 됐고, 사고 차량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차에서 찍은 영상도 확보했다. 또한 해당 차량은 자동차 사고기록장치인 EDR(Event Data Recorder)도 장착 돼 있었다. 
EDR은 충돌 사고나 에어백 전개 시점의 전후 일정 시간(약 5초) 동안 가속 페달 작동상황, 브레이크 조작 상황, 차량 속도 등을 기록하는 장치다. 비행기의 비행기록장치(Flight Data Recorder)에 비견되는 차량용 블랙박스(흔히 블랙박스로 불리는 차량용 CCTV와는 다른 장치임)다. 비행기록장치와는 달리 EDR은 일반 주행시에는 기록 되지 않는다.
2015년 12월 19일 시행 된 자동차 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안은 제조사는 EDR의 장착 여부를 구매자에게 알려야 하고 자동차 소유자가 기록 내용을 요구할 경우 EDR 기록정보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이 법률에 의해 EDR의 기록 공개는 의무화 됐지만 장착 자체가 의무화 된 건 아니다. 사고 차량은 다행히 EDR이 있었다.
▲“제동등 대신 후진등이 켜져 있었다”
EDR을 분석한 조건우 박사는 의외로 단호한 말을 했다. “기록에 의하면 싼타페는 사고 순간 단 한번도 브레이크가 작동 된 흔적이 없고 추돌직전까지 속도가 전혀 줄지 않았다”고 했다. 자동차의 제동등(브레이크등)은 브레이크 페달 뒤에 있는 ‘스위치’로 작동이 된다. 이 스위치는 매우 민감해 브레이크를 밟는 힘의 정도와 상관없이 ON 아니면 OFF의 동작만 수행한다. 브레이크에 약간의 힘만 가해져도 제동등은 켜지게 돼 있다.
   [사진]사고 시점의 속도 변화를 보여주는 EDR 기록. 시간(가로)과 이동거리(세로)가 달라지는 동안 속도는 일정하게 유지 되고 있다. 
싼타페의 EDR 데이터는 사고를 기록한 전 구간에서 OFF를 표시하고 있었다. 이 보고서는 기자도 눈으로 확인했다.
   [사진] 뒷차의 블랙박스가 사고 직전의 상황을 찍은 영상. 후진등이 밝게 켜져 있다. 
‘EDR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또 있었다. 사고 차량을 바로 뒤에서 운행하던 차에서 찍은 블랙박스 영상이다. 뒷차에서 찍은 영상에는 1차 추돌 당시 사고 차량의 후미에 빨간색의 제동등이 아니라 태양광의 후진등이 선명하게 들어와 있었다.
▲27년 운전 경력의 변수 ‘수동변속기‘
사고차량 A씨는 27년 경력의 운전자다. 27년전이면 수동변속기가 일반적이던 시절이다. 수동변속기로 운전을 배운 이들에겐 몸에 밴 습관이 하나 있다. 차가 완전히 정차하기 전에 기어를 ‘중립(N)’으로 놓는 동작이다. 수동변속기는 기어를 중립에 놓지 않고 브레이크를 완전 정차상태까지 밟으면 시동이 꺼져버린다.
사고당일, 한차례 좌회전을 한 뒤 사고 발생 지점으로 저속 주행하던 A씨는 신호대기 차량을 보고 정차를 하기 위해 서서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런데 갑자기 엔진 RPM이 올라가는 소리가 “웽”하고 들렸다. 당황한 A씨는 브레이크를 더 깊게 밟았고, RPM은 굉음 수준으로 높아졌다. 에어백이 터질 정도의 큰 충격은 아니었지만 손 쓸 새도 없이 싼타페는 앞차를 들이받았다.
금천경찰서 교통조사계 이동수 팀장은 “A씨는 사고 당시의 변속기 조작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분명히 브레이크를 계속 밟았다’는 주장을 되풀이 했다”고 말했다. A씨의 운전습관이 수동변속기 때처럼 중립(N)에 놓고 브레이크를 밟아 정차를 하는 지, 사고 당시 브레이크 대신 엑셀을 밟았는지, 1차 추돌 후 변속기를 어떻게 조작했는지 등은 A씨를 통해서는 확인할 수 없었다.
▲사고의 재구성
하지만 정황상 아래와 같은 유추는 가능했다. 아래 기술 되는 ‘사고의 재구성’은 조건우 박사도 의견을 같이 했다.
신호대기 상태를 인지한 A씨는 오랜 습관대로 기어노브에 있는 시프트 버튼을 누르고 기어를 중립상태로 바꾼 뒤 브레이크를 밟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갔는지 변속기는 중립이 아닌 ‘후진(R)’까지 밀려 버렸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브레이크 페달 대신 엑셀을 밟았다. 다소 경사진 언덕길이라는 인지가 부지불식간에 엑셀 페달을 선택하게 했을 수도 있다. 
전진 주행 도중에 변속기가 ‘후진’으로 조작 되면 차는 후진 명령을 곧바로 수행하지 않는다. 관성으로 인한 변속장치의 파손을 막기 위해 ‘오조작 안전모드(Fail Safe Mode)’가 설정 돼 있어서 차가 정차 수준에 이르도록 속도가 줄기 전(경찰에서는 시속 약 7km라 밝혔다)까지는 기어가 중립(N)과 같은 상태가 된다. 그러다 차가 정차단계에 이르면 후진을 시작한다. 1차 추돌 후 급후진이 된 것이 설명이 된다.
국과수 조 박사팀은 사고 차량으로 시뮬레이션을 했다. 리프트로 차량을 들어올린 상태에서 시동을 켜고, 변속기를 주행모드(D)에서 갑자기 후진(R) 모드로 전환했다. 산타페의 바퀴는 한동안 진행방향으로 구름을 계속하다가 정차 수준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후진 구름을 시작했다.
차가 굉음을 내며 갑자기 후진을 시작하자 운전자는 본능적으로 변속기를 운전자 쪽으로 잡아당겼다. 주행모드(D)로 설정이 되면서 차가 다시 앞으로 가기 시작했다. 2차 추돌이 일어난 상황이다.
패닉상태에 빠진 운전자가 또 변속기를 조작했는지 이번에는 중립상태가 됐고, 경사가 있는 도로라 차는 슬금슬금 뒤로 밀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A씨는 다시 변속기를 잡아당겼고 앞으로 전진한 차가 세 번째 추돌을 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사고 상황의 재구성이다. 물론 여기에도 명확하게 설명이 되지 않는 구석이 있다. 아쉽게도 EDR은 변속기 조작 상황은 기록하지 않았다. 3차례의 추돌에도 불구하고 에어백도 터지지 않았다. 조건우 박사는 “앞차와의 추돌 상황이 에어백이 전개 될 정도의 레벨이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주행 속도가 빠르지 않았고, 앞차 트렁크와 추돌하면서 충격이 상당부분 흡수 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DR이 말해 주는 또 하나의 명확한 상황이 있다. “스로틀밸브가 100% 열려 있었다”였다. 조건우 박사는 “이는 가속 페달이 99% 밟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사진]사고 차량 가속 페달의 링키지에 찍힌 쓸림 흔적. 통상적인 운전 상태라면 붉은 네모 부위가 바닥 지점에 닿지 않는다. 
조사팀은 가속 페달을 정밀 조사했다. 가속 페달은 링키지에 연결 된 케이블을 잡아당기거나 느슨하게 하면서 스로틀밸브를 조작한다. 그런데 사고 차량의 가속 페달에는 최대치 이상으로 밟았을 때 나타나는 쓸림 흔적이 링키지 바닥에서 확인 됐다. 이 흔적은 통상적인 범위 내에서 엑셀을 밟았을 때는 생기지 않는다. 이를 악물고 엑셀을 끝까지 밟을 때 나타나는 흔적이다. 사고차량은 엑셀을 끝까지 밟았을 때 ‘딸깍’하는 느낌과 함께 최대치를 알려 주는 ‘킥다운 스위치’가 없는 차다.
▲“모든 급발진 의심사고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물론 이번 국과수 감정 결과가 그 동안 제기 된 모든 ‘급발진 의심 사고’를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조건우 박사는 “차가 앞뒤를 오가며 통제 불능상태에 빠진 급발진 의심 사고의 일부 유형을 설명하는 한 모델일 뿐이다”고 말했다.
모든 사고가 이번 독산동 사고처럼 자료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EDR이 없는 차량이었다면, 뒷차량의 블랙박스가 확보되지 않았더라면 또는 사고차량의 CCTV가 없었더라면 이번 사고도 공포스러운 급발진 사례의 하나로 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국과수의 이번 감정 결과는 2가지 분명한 의미를 준다. 운전자의 변속기 레버조작 실수와 브레이크-엑셀 오인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급발진 의심 사고 유형은 얼마든지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게 그 하나이고, 또 하나는 운전습관에 대한 캠페인의 필요성이다.
일반적으로 “수동변속기 차량은 급발진 사고가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다. 이 통념이 이번 독산동 사고 가설을 통해 설명이 된다. 수동변속기는 ‘중립’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기어 변속의 동선이 뚜렷해 ‘오조작’의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 반면 자동변속기는 자동에서 중립을 거쳐 후진으로 가는 동선이 동일 패턴 안에 있기 때문에 오조작의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 정차시 '중립' 습관, 안전에는 타당한가?
신호대기에서 자동변속기를 중립에 놓는 게 연비 운전에 좋다는 캠페인이 벌어진 적이 있다. 반면 이 조작이 변속기의 내구성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도 팽팽하다. 여기서 어느 이론이 옳다고 따질 상황은 아니다.
다만 연비나 내구성 이전에 안전을 먼저 생각한다면, 자동변속기 차량에서 정차 시 ‘중립’ 설정 습관을 빨리 버리는 게 좋을 듯하다. 자동변속기는 ‘주행(D)’ 모드에서 브레이크를 밟으면 사실상 변속기는 ‘중립(N)’ 상태로 전환된다. 이번 국과수 감정 결과의 가설이 타당하다면 자동차 제조사 또한 주행 중 후진 기어 작동을 까다롭게 하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독산동 싼타페 급발진 의심 사고는 지난 7월 초 검찰에 송치 됐고 불기소처분이 내려졌다. /100c@osen.co.kr
[사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울과학수사연구소 이공학과 조건우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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