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의 SK랩북] 방향 잃은 SK, 막다른 골목에 몰리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6.09.19 13: 24

5강 레이스를 벌이던 SK가 시즌 막판 8연패라는 최악의 성적과 함께 주저앉기 일보 직전이다. 시즌 내내 위태했던 요소들이 한꺼번에 터지며 치명상을 입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몇몇 요소들에 대해 뚜렷한 방향을 정하지 못했다. 갈팡질팡한 SK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막다른 골목이었다.
SK는 9월 10일 대전 한화전부터 18일 인천 NC전까지 8경기에서 내리 패하는 최악의 성적표와 함께 잔여경기 일정을 맞이했다. 그 전까지 6연승의 신바람을 내며 4위 탈환에 성공, 5강 싸움에서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는 평가가 무색할 정도의 추락이다. 이제 자력 5강은 물 건너갔다. SK가 남은 6경기에서 모두 이긴다고 하더라도 4위 LG는 4승6패, 5위 KIA는 7승4패만 하면 된다. 한 경기라도 패하면 전망은 급격히 더 어두워진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직 포기할 단계는 아니라는 점이다. 잔여경기 일정이 상대적으로 띄엄띄엄해 전력을 총동원할 수 있는 여건은 된다. 앞서 있는 LG나 KIA가 SK처럼 급격한 슬럼프에 빠지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SK도 특별한 전력 보강 요소가 없고, 팀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노출됐다는 점은 걸린다. 종합하면 사전 대비에 실패한 것이 이처럼 뼈아픈 결과로 다가왔다. 관리야구는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팀의 장점을 극대화시킬 만한 철학이 부족했다. 남은 6경기에서 다 해결하기는 쉽지 않은 무거운 과제들이다.

‘특정 선수 과부하’ 무색해진 관리야구
김용희 SK 감독의 야구 철학은 전반적인 틀에서 ‘관리야구’라고 보면 크게 틀린 점이 없다. 왕조 훈장과 맞바꾼 투수들의 혹사와 그에 따른 부상을 맛본 SK로서는 당연히 취해야 할 보폭이기도 했다. 팀 마운드에 만연해 있었던 혹사의 대물림을 끊어낸 것은 어느 정도의 성과로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마운드 자원을 폭넓게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특정 선수의 과부하로 이어졌고, 가장 중요한 시기에 그 자원들이 무너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미리 준비를 못했으니 당연히 대안도 없었다.
실제 SK의 9월 16경기에서의 팀 평균자책점은 6.06으로 크게 치솟았다. 타고투저의 흐름과 시즌 막판 투수들의 힘이 빠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도 지나친 상승이다. 가장 뼈아팠던 점은 믿었던 필승맨들의 기록 저하다. 올 시즌 SK에서 가장 많은 이닝(82⅓이닝)을 소화한 채병룡의 9월 평균자책점은 6.57이다. 팔꿈치 부상에서 돌아온 이후 채병룡과 함께 셋업맨 임무를 해 좋은 페이스를 선보였던 서진용은 7.71이다. 마무리 박희수도 후반 들어 전반적으로 구위가 떨어진 끝에 고개를 숙였다.
SK는 베테랑 불펜 투수들이 버티지 못하고 2군으로 내려간 5월 이후 채병룡 박희수 김주한 서진용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컸다. 전체적인 이닝과 휴식을 고려할 때 ‘혹사’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부인할 수 없었던 단기 혹사는 몇 차례 있었다. 반면 다른 투수들은 좀처럼 활용폭이 늘어나지 않았다. 믿지 못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른다. 순위 싸움이 걸린 시즌 막판 이들을 투입하기는 당연히 어려워진다.
새 얼굴은 없었고 8연패 기간 중 이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오히려 1군에서 등판 기회를 잡지 못한 투수들이 밸런스가 깨져 2군으로 내려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어린 선수들의 성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야수도 마찬가지였다. 시즌 초반부터 정의윤 등 특정 선수들에 대한 의존도는 충분히 경고된 사안이기도 하다. 왕조 시절을 이끌었던 베테랑 선수들의 기량 하락이 눈에 들어오는 가운데, SK에는 한 시즌을 풀로 뛰어본 선수들이 생각보다 적다. 이는 무더위가 찾아온 8월 이후 SK 타선이 제대로 된 힘을 이어가지 못하는 하나의 이유가 됐다. 이겨내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 이겨내는 과정을 현명하게 만들어주지 못한 결과는 예상보다 가혹했다. 부상 후 선수들의 콜업 과정에서도 성급한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불어난 장타력, 철학은 그대로였다
SK는 올 시즌 174개의 홈런을 때리고 있다. 토종 홈런 선두인 최정(39개)을 필두로, 15개 이상의 홈런을 치고 있는 선수만 6명(최정 정의윤 고메즈 최승준 박정권 이재원)이나 된다. 리그 1위의 기록이다. 팀 출루율이 떨어진다는 단점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팀이 올 시즌 기대를 걸었던 ‘장타력 증강’ 목표에는 어느 정도 다가선 모습이다. 그런데 희생번트도 69차례로 리그에서 세 번째로 많다. 리그 평균(60개)을 넘어선 수치다.
SK의 희생번트는 지난해 무려 110개였다. 리그 평균인 83개보다 훨씬 많았다. 전체적으로 타선의 짜임새가 약하다보니 희생번트를 많이 댄 감은 있었다. 김용희 감독도 이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올해는 장타력 상승이 기대되는 만큼 이를 줄이겠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외견상 수치적으로는 줄어들었다. 팀 홈런이 한창 폭발했을 때는 희생번트의 개수가 적기도 했다.
그러나 타고투저의 흐름에서 리그 평균이 같이 줄어든 것을 고려하면 극적인 변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여전히 희생번트는 많고 체감적으로는 더 그렇다. 팀 홈런 1위, 희생번트 3위의 기록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공교롭게도 이 성적에 가장 가까운 근래의 팀은 왕조 시절의 SK였다. 그 당시의 시스템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성적이 급해지고 홈런포가 뚜렷하게 줄어든 8월 이후, SK의 시스템은 지난해로 회귀해버렸다. 8월 이후 SK의 희생번트는 26개로 리그에서 가장 많다. 물론 희생번트는 팀의 기대 득점을 낮추지만, 희생번트로 진루한 주자들의 득점 확률은 소폭 높아진다. 댈 시점에는 대야 한다. 이를 테면, 1점이 반드시 필요한 경기 막판의 상황이다. 투수와 타자의 상성까지도 고려되어야 한다. 하지만 26개라는 수치는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도 번트가 남발됐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마지막에 꺼내야 할 카드가 오히려 전면에 부각된 셈이다.
이는 올 시즌 유독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득점권에서의 빈타(.277, 리그 10위, 리그 평균 0.294)와 맞물려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희생번트가 많아진 것은, 희생번트가 아니면 주자를 진루시키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과도 연관이 있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에게 모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대목이다.
런앤히트를 비롯한 작전은 예리하지 못했다. 한 수도권 구단 포수는 “SK의 런앤히트 타이밍은 항상 대비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작전이 간파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이유다. 선수들은 그마저도 실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맞혀줘야 할 상황에서 멀뚱히 지켜보거나, 스타트가 어정쩡해 살 수 있는 타이밍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선수들은 왕조 시절 ‘시키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는 나머지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SK는 이 약점을 시즌 내내 보완하지 못한 채 결국 ‘홈런’이 나오지 않으면 무너지는 양상을 되풀이했다. 체격은 좋아졌지만, 소프트웨어는 답보 상태였다.
지원 못한 프런트, 방향은 무엇이었나
여전히 ‘내 것만 하면 된다’는 의식이 남아 있는 일부 선수들, 이 선수들을 제대로 끌고 가지 못한 코칭스태프의 잘못이 커 보이지만 프런트도 자유롭지 못한 문제다. 올 시즌을 앞두고 이러한 문제를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은 오히려 프런트였다. 시즌 중에도 누구보다 냉정하게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계약 기간 만료를 앞둔 현 코칭스태프 조직이 ‘성적’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이상적인 야구가 나올 것이라 예상한 이는 없었다.
그러나 이를 만회할 만한 제대로 된 행보를 보여주지 못했다. 현장의 기대를 모을 만한 즉시 전력감 수혈은 없었다고 봐야 한다. 최승준의 사례는 있지만 이는 운이 좋았던 케이스였다. 기대를 걸었던 젊은 선수들의 성장은 시간이 걸릴 문제였으나 그 시간을 너무 짧게 봤다. 오히려 성적과 육성 사이에서 애매한 위치를 취하면서 막판 동력이 떨어졌다. 좀 더 젊은 선수들의 비중을 높이길 원하는 프런트, 성적 앞에서 그런 과감한 결단을 내리기 어려운 현장의 괴리는 갈수록 커져갔다.
싼값에 대박을 노렸던 브라울리오 라라의 영입은, 프런트가 올 시즌 SK의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다른 대체 외국인 선수들이 활약할 때, 라라는 2승6패 평균자책점 6.70에 머물렀다.
이처럼 SK의 막판 8연패는 코칭스태프·선수·프런트의 방향성 부재가 만들어낸 참극이다. 많이 곪아있다는 점에서 남은 6경기 중 해결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오히려 선수들의 사기가 바닥까지 추락하는 것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당연한 결과인데 이를 타개할 만한 리더십은 어느 한쪽에서도 쉽게 보이지 않는다. 일단 휴식일을 잘 활용하며 분위기부터 바꿔놓는 것이 우선이고, 시간적 여유가 있는 만큼 6경기라도 철저한 계획을 짜놓는 것이 중요하다. ‘가을 DNA’가 허상임을 보여준 SK가 기댈 마지막 단어는 ‘기적’이다. SK 담당기자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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