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시네마]'럭키' 대박, 유해진이 그 어려운 걸 해냅니다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10.19 15: 40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영화 ‘럭키’(이계벽 감독, 쇼박스 배급)가 이미 손익분기점인 150만 명의 관객을 넘어서 족히 300~400만 명은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놀라운 흥행세를 보이고 있다. 19일 개봉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인페르노’와 더불어 오는 25일 문을 여는 ‘닥터 스트레인저’가 변수이긴 하지만 ‘아수라’와는 매우 다른 양상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럭키’는 정우성 황정민 강동원 송강호 같은 특급스타도 없고, 팬들의 지지도가 높은 감독도 아닌, 순수제작비 40억 원대의 ‘애매모호’한 상업영화였다. 게다가 독특한 장르물이 판을 치는 요즘 영화계에서 매우 고전적인 코미디다. 배급이 신의 한 수였나, 아니면 각 매체가 그토록 요란하게 떠드는 유해진의 힘이었나?
물론 배급의 묘미를 빼놓을 수 없다. 국내 4대 배급사 중 현재 극장가에서 NEW와 롯데엔터테인먼트는 빠진 채 CJ엔터테인먼트가 ‘아수라’를 내걸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13일 쇼박스가 ‘럭키’로 도전장을 던졌다. 그보다 2주 전 개봉된 ‘아수라’가 뚜껑을 열기 전의 관객들의 기대감을 계속 충족시켰다면 무모한 도전이었겠지만 상황은 반대였다. 운일 수도, 쇼박스의 절묘한 정보력과 판단력일 수도 있다.

그룹에서 멀티플렉스 체인 메가박스가 분리돼나가고 영화투자 관련 사업의 위축설이 나돌았던 쇼박스지만 최근 부활해 승승장구하는 이유가 있다는 판단이 가능한 수완이다.
‘럭키’는 일본영화 ‘열쇠 도둑의 방법’(우치다 켄지 감독)을 리메이크했지만 배급사는 의도인지 방임인지 모르게끔 이를 일부러 노출하진 않았다. 매체와 관객들에 의해 자연스레 알려졌을 따름이다.
‘열쇠 도둑의 방법’은 2012년 일본에서 개봉돼 호평을 받았지만 국내엔 별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게다가 한일감정은 현재진행형인 데다 일본영화의 독특한 스타일은 한국 관객의 보편적 정서와 잘 맞지 않는다. 따라서 굳이 일본영화 리메이크를 널리 알릴 필요는 없었다. 역시 배급사의 작전성공이다.
리메이크를 했지만 좋은 것은 그대로 받아 적고, 웬만한 것은 한국식 정서에 맞춰 고친 각색도 좋았다. 목욕탕 사물함 열쇠로 인해 무명배우와 청부살인자의 인생이 뒤바뀐다는 설정과 목욕탕에서 킬러가 비누를 밟고 넘어짐으로써 기억상실로 무명배우와의 인생이 바뀐다는 설정은 그대로 가져오되 원작에 1명이었던 여주인공을 2명으로 늘림으로써 버라이어티한 변화를 꾀했다. 원작 여주인공의 직업이 여성잡지 편집장이었지만 ‘럭키’는 119 구조대원과 대기업 비리의 내부고발자로 한국적이고 현실적으로 바꿨다. 즉 내부고발자 은주(임지연)는 새로운 창조물이다.
물론 유해진을 앞에 내세운 캐스팅도 매우 훌륭했다. 지금까지 신스틸러(좋게 말하면)를 일약 주인공으로 발탁한 영화가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유해진은 조직폭력배 등 악역을 주로 맡으면서도 특유의 코믹연기로 명성을 떨쳐왔지만 혼자서 흥행을 책임진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의 캐스팅은 얼마 전 흥행에 실패한 ‘고산자’와 비교된다. 차승원은 당연히 원톱주인공으로서 손색이 없다. ‘삼시세끼’로 유해진과 좋은 비교도 된다. 그럼에도 ‘고산자’가 ‘럭키’와 다른 결과를 보인 이유 중의 하나는 코미디를 푸는 방식이었다.
‘고산자’가 ‘삼시세끼’를 운운하고, 목판 인쇄 때 유치한 속도전을 펼치는가 하면, 말에 내비게이션을 설치한다는 식의 억지 코미디를 포진해 관객의 실소를 자아냈다면 ‘럭키’는 매우 자연스럽다. 그건 시나리오의 힘이고, 그걸 풀어내는 유해진의 능력이다. 왜냐면 유해진의 외모엔 킬러와 코미디언의 두 얼굴이 공존하니까.
물론 공동주연을 맡은 이준 조윤희 임지연의 공로도 무시할 수 없다. 새로 창조하다보니 임지연의 행보가 다소 억지스러운 게 흠이긴 하지만 장치로선 나쁘지 않았다. 그건 이준과의 멜로라인만으로도 충분하게 보완될 수 있었다. 또한 특별출연한 전혜빈과 이동휘의 활약도 눈부셨다. 그들은 감독의 연출의도에 절묘하게 부합해 극의 재미를 한층 탄탄하게 만들었다.
더불어 ‘야수’ 유해진과 ‘미녀’ 조윤희의 키스 신을 집어넣는 등 그들의 멜로를 주춧돌의 하나로 받친 것 역시 은근히 남자관객들의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유해진과 김혜수가 사귄다는 사실이 공인됐을 당시 수많은 대중이 충격에 전율했다. 그리고 서서히 유해진이 남자로서도 매우 크고 많은 매력을 지녔으며 특히 배우로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활약한다는 점을 새삼스레 깨달으면서 그에 대한 신뢰도가 탄탄하게 구축됐다. 아무리 그래도 한 바퀴 띠 동갑 미녀의 사랑을 받는다는 설정은 확실히 판타지 세계의 문을 활짝 열어준 것은 사실이다.
마지막 결론은 코미디의 부활이다. 정쟁은 서민들의 정신세계까지 ‘좌-우’로 나눌 만큼 혼란스럽고, 서민들이 그 이념논쟁에 귀 기울이고 신경 쓰는 동안 그들의 경제상태는 바닥을 기고 있다. 예전에 경제가 어려워지면 여성의 치마가 짧아지고 립스틱이 진해진다고 했는데 언제부턴가 극장에 관객이 늘고 있다.
그리고 그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복잡한 철학을 탐구하거나 심오한 메시지를 사색하려 하지 않기 마련이다. 그 시간이나마 편하게 웃고 즐기고자 하는 게 당연하고 마땅하다. 게다가 이렇게 의외로 재미있는 영화에 반전까지 있다니! 인생에서도 간절히 반전을 바라는 서민들의 희망의 판타지까지 만족시킨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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