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 끝’ 김은섭, 우리카드 복덩이로 거듭났다
OSEN 조인식 기자
발행 2016.10.20 06: 18

코트 밖 현실 경험하고 다시 절박하게 운동
박상하 돌아와도 백업 고정 아닌 주전 경쟁
 김은섭(27, 우리카드)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주목받던 유망주였다. 211cm의 큰 키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그는 2012~2013 시즌을 앞두고 V-리그 남자부 신인 드래프트에서 대한항공의 1라운드(전체 5순위) 지명을 받았다.

하지만 프로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배구계를 떠나기도 했던 그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방황기를 거쳤다. 지난해 10월에 상무에서 제대한 뒤 소속 팀인 대한항공으로 복귀하지 않은 김은섭은 은퇴 후 일반인으로 살다 우리카드에 입단하며 다시 프로선수가 됐다.
컵대회에서 존재감을 보인 뒤 V-리그 정규시즌 첫 경기. 우리카드의 장충 홈 개막전이기도 했던 19일 OK저축은행과의 경기에서 김은섭은 블로킹 4개 포함 6득점하며 팀의 3-0 승리를 이끌었다. 김상우 감독도 “흐름이 넘어갈 수 있는 상황에 김은섭이 잘 버텨줬다”고 할 정도로 경기 초반 그의 비중은 컸다. 무엇보다 발목 부상에서 완쾌되지 않은 박상하의 공백을 완벽히 메운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잠시 코트를 떠났을 때 김은섭은 그야말로 푹 쉬었다. 대한항공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 무엇을 했냐는 물음에 “열심히 놀았다”고 간단히 답한 김은섭은 주위의 권유가 복귀에 영향을 미쳤냐는 질문에는 “내 판단이었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본인의 의지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쉽게 말해 놀 만큼 놀아보고 깨달음을 얻어 돌아온 것이다.
전과 같이 살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만큼 전보다 더 악착같이 배구에 매달렸다. 우리카드가 관심을 보인 것도 사실이지만, 김은섭 또한 현역 복귀 준비에 매진했다. “(구단에서) 얘기가 먼저 나오기는 했는데 나중에는 내가 받아달라고 말했다. 감독님이 테스트에서 버텨보라고 하셨는데, 버텨서 팀에 들어왔다. 6월 20일에 들어와 테스트를 40일간 받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우리카드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는 동안 김 감독의 눈도장도 받았다.
정식 계약 전까지 수입 없이 운동하느라 힘든 점은 없었는지 묻자 그는 “(구단 시설에서) 잠도 자고 밥도 먹었다. 그것만으로도 좋았다”라며 웃었다. 배구를 다시 할 수 있어 행복한 기분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는 “감독님이 용돈도 주셨다. 정말 많이 주셨다”며 다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떠날 때만 하더라도 김은섭은 다신 코트에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당시 기분을 묻는 질문에 “솔직히 말하면 배구를 하기 싫었다”라고 여과 없이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밖에 나오니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배구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는 말로 현실을 인정하기도 했다. 선수생활이 끝나면 막막해진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런 현실을 몸소 겪어본 이는 드물다. 김은섭은 그래서 절박하고, 우리카드는 그 절박함에 더욱 기대를 걸고 있다.
공백기가 있었지만 그의 자리가 백업으로 고정되어 있지는 않다. 지금 같은 모습이라면 좀 더 중용될 수 있다. 김 감독은 “우리가 지난해 (센터를) 박상하와 박진우 둘만 가지고 했는데, 안 풀려도 바꿔줄 수 없었다. 김은섭을 지난해부터 눈여겨보고 있었고, 한 번 더 기회를 주면 마지막 절실함이 있어 뭔가 해주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본인도 노력하고 있다”는 말로 여지를 뒀다.
실제로 우리카드는 여러 포지션이 경쟁 체제다. 김은섭을 기존 센터들과 경쟁시키겠냐는 질문이 나오자 김 감독은 “비시즌부터 최홍석-나경복(공격형 레프트), 안준찬-신으뜸-이동석(수비형 레프트)까지 모두 경쟁 체제다. 컨디션 좋은 선수를 쓴다”며 김은섭도 테두리 안에 넣겠다는 뜻을 보였다. 김 감독은 박상하도 최대한 빨리 복귀시키려 하고 있는데, 이는 김은섭에게 자극제인 동시에 경쟁을 통한 팀 전력 상승의 기회도 된다. /nick@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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