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초점]S.E.S와 만나는 ‘가수’ 이효리의 숙제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11.28 07: 45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HOT와 젝스키스가 불꽃 튀는 라이벌 대결을 벌이는 가운데 S.E.S가 국내 연예계 최초로 ‘요정’이란 수식어를 부여받고 남성팬들의 판타지에 최면제를 난사한 1998년 초.
필드에서 뛰던 당시의 필자는 서울 서초동 대성기획(DSP엔터테인먼트 전신) 사무실에서 이호연 대표를 만났다. 이 대표는 매우 흥분된 표정으로 4명의 어리고 예쁜 소녀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젝스키스가 그랬던 것처럼 S.E.S의 강력한 대항마가 될 핑클이라고 소개했다.
물끄러미 사진을 들여다보던 필자가 한 명을 가리키며 “얘는 좀 덜 예쁜데”라고 말했더니 이 대표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걔가 리드보컬”이라고 답했다. 이에 필자는 한 멤버를 손꼽으며 “얘가 리드보컬이었으면”이라고 아쉬워했다.

이효리가 돌아온다. 2010년 4집 앨범 중 상당수의 신곡이 표절이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가수활동을 중단한 채 자숙에 들어갔던 이효리는 3년 뒤 5집 앨범을 내놨지만 이미 ‘가요계의 섹시아이콘’ 타이틀이 손담비에 이어 현아로 넘어간 흐름을 뒤집을 순 없었다. 얼마 뒤 이효리는 이상순과 결혼하며 제주도로 사라졌다.
최근 히트 작곡가 김형석이 이끄는 키위미디어그룹은 이효리와 전속계약을 맺고 내년 상반기 신보를 발표한다고 공시했다. 당연히 김형석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유명 작곡가와 함께 이효리도 작사 작곡 프로듀싱에 참여한다고 한다.
솔로 데뷔 이후 줄곧 작사에 참여한 이효리가 유일하게 작곡한 노래는 2013년 5집 앨범의 ‘미스코리아’. 4집 앨범에서 처음으로 프로듀싱에 나섰다고 했지만 결국 표절로 인해 거창한 시도는 용두사미가 됐다. 따라서 이번 음반이 사실상 뮤지션으로서의 첫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듯하다.
S.E.S가 ‘친정’ SM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오는 28일 신곡을 발표하고 내년에 스페셜 앨범을 내놓는다며 사실상 ‘제2의 데뷔’를 알렸다. 이들의 활동은 결코 한시적이지 않다는 게 SM의 입장. 공교롭게도 핑클 출신 이효리와 S.E.S가 맞붙게 됐지만 이효리는 S.E.S와 많이 다르다.
S.E.S와 핑클은 소속사의 철저하게 계산된 프로젝트 아래 춤 노래 연기 등의 필요충분조건을 갖춘 채 데뷔한 뒤 기획의도대로 움직인 걸그룹이다. 최소한 걸그룹 시절 그들은 뮤지션이라기보단 연예인이었다.
바다는 핑클 출신 옥주현처럼 뮤지컬배우로서 스스로 길을 개척하긴 했지만 SM의 S.E.S로 돌아온 이상 팀의 멤버지 솔로 뮤지션은 아니다. 어느 정도 성장한 만큼 S.E.S의 음악에 자신의 색깔을 녹여낼 순 있지만 SM으로부터 주도권을 빼앗을 순 없다. 그래서 S.E.S인 것이다.
하지만 이효리는 다르다. 오래 전에 핑클이 아닌 이효리가 됐고, 그것을 강하게 어필하고 증명하기 위해 작사 작곡 프로듀싱에 집착했던 것이다. CJ E&M도 아닌 김형석의 키위미디어그룹으로 환승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핑클 시절 ‘비주얼 담당’에 불과했던 이효리는 아이러니하게도 핑클 해체 후 제도권에서 가장 성공한 걸그룹 출신 만능 연예인이 됐다. 첫 솔로 앨범으로 단숨에 섹시아이콘이 된 그녀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제일 각광받는 예능인으로 자리매김했다.
뭣보다 큰 수확은 아이돌 출신답지 않게 대표적인 ‘소셜테이너’로서 오피니언 리더 역할을 해냈다는 점이다. 환경 보호 및 소외된 약자 돕기 등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며 다수의 연예인과 달리 봉사활동에 앞장서는가 하면 최근 이승환의 ‘길가에 버려지다’에 재능기부를 하며 정치 사회적인 문제에도 할 말은 하는 지성인으로서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녀가 표절이란-비록 직접 작곡하지는 않았지만-음악인으로서의 결정적인 오점을 남겼음에도 수많은 대중이 그녀를 포근하게 감싸 안고 환호를 보내는 이유다.
지금까지 이효리가 한 국민으로서, 섹시한 이미지의 표상으로서, 빛나는 연예스타로서, 걸어온 길은 표절 하나 빼곤 거의 완벽하다. 예쁘고 신비로운 이미지로 우상으로서의 값어치를 높이는 데 열중해야할 여자스타가 ‘패밀리가 떴다’ 등에서 식전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가 하면 결정적인 핸디캡인 윗잇몸도 아낌없이 드러내는 등 인간적인 면모를 스스럼없이 공개하며 대중에 군림하려는 자세가 아닌, 친구를 자처한 점은 높이 살 만하다.
재벌도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도 아닌, 평범한 뮤지션을 신랑으로 맞아 슈퍼스타 중 가장 소박한 결혼식을 치른 그녀는 제주도라는 상징적인 공간에서 자연을 만끽하며 살고 있다. 강남의 초고층 호화빌라가 아니다.
핑클 멤버 중 가장 먼저, 제일 활발하게 솔로활동을 펼친 이유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욕심이다. 핑클 때처럼 그냥 ‘인형’에 머무는 게 아니라 뮤지션이 되고 싶었다. 뮤지션에게 가창력은 문제가 아니다. 에릭 클랩튼부터 밥 딜런까지 가창력이 떨어진다고 그들의 뮤지션으로서의 값어치를 논하는 이들은 하나도 없다.
이효리가 지금 그렇다. 이미 그녀를 두고 절정의 가창력 따위를 논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세계의 환경파괴와 기아문제에 앞장서온 그녀는 이미 아티스트다. 다만 이번 회심의 컴백앨범에서 ‘이효리 음악’이 나오느냐가 관건이다. 왜냐면 지금까지 그녀는 음악 빼곤 할 일은 전부 다했기 때문이다.
이효리보다 더 빨리 제주도에 정착한 장필순은 최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에 있었으면 음악을 관뒀을지도 모른다. 제주도에 내려와 비로소 음악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고 털어놨다. 솔로 변신, 표절로 인한 위기, 결혼, 제주도에서의 자연회귀 등이 단련시키고 성숙시킨 ‘진짜’ 이효리의 음악에 대한 팬들의 기대가 큰 이유는 그녀가 핑클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효리여서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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