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신형 그랜저(IG),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6.11.29 07: 48

프랑스 소설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관념’의 중요함을 일깨우는 이야기 한 토막으로 잃어버린 동심의 나라로 여행한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 이야기다. 순수한 마음을 잃어버린 어른들은 단지 눈에 보이는 것만 볼 뿐, 그 속내를 상상하지 못한다.  
현대자동차의 ‘신형 그랜저(IG)’에는 알듯 모를 듯한 ‘코끼리 형상’이 등장한다. 실내 센터패시아 맨 위쪽에 돌출형으로 자리잡은 내비게이션 모니터와 그 옆에 동그랗게 붙은 아날로그 시계가 만들어내는 형상이 꼭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코끼리를 통째로 삼킨 보아뱀’을 닮았다. 
그런데 ‘신형 그랜저(IG)’에는 ‘어린 왕자’와는 다른 현상이 나타난다. ‘어린 왕자’에서는 어른들이 보아뱀과 코끼리는 보지 못하고 그저 중절모만 인식한다. ‘신형 그랜저(IG)’에는 중절모는 보이지 않고, 코끼리 한 마리만 덩그러니 보인다. 

현대-기아자동차 디자인 총괄 사장 피터 슈라이어가 처음부터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의식하고 이런 디자인을 만들어 내지는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신형 그랜저(IG)’가 처한 상황은 ‘중절모’와 ‘보아뱀’의 인식의 흐름을 그대로 닮았다. 
1986년. 1세대 그랜저가 세상의 빛을 본 해다. 1970, 80년대를 산 사람들에게는 ‘아시안 게임’으로 떠들썩하던 해다. 그해 태어난 이들이 벌써 30대가 돼 사회 곳곳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대부분이 힘들고 가난하게 살면서도, 대부분이 우리는 중산층이며 잘 살고 있다고 여기던 그 시절, ‘그랜저’는 커다란 상징이었다.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고 차곡차곡 저축을 하면 과장 때는 ‘아반떼’를, 부장 때는 ‘쏘나타’를 그리고 사장이 되면 ‘그랜저’를 탈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가졌던 시절이다. 
그랬던 그랜저가 복잡한 입지에 빠졌다. 그랜저의 영어 표기인 ‘Grandeur’는 ‘장엄함’이고 ‘웅장함’이다. 최고봉을 염두에 두고 붙인 이름이다. 당시에는 그랬다. 그러나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최고봉’의 자리는 점점 더 용맹해진 후생(後生)에게 내줘야 했다. 
에쿠스가 출시 되고, 제네시스가 나오면서 그랜저의 입지는 혼란스러워졌다. 속으로 하는 고민이 깊어졌다. 그리고 2016년, 그랜저는 6세대를 출범하면서 대놓고 고민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아예 ‘그랜저로 그랜저를 바꾸다’는 슬로건까지 만들어 선봉에 세웠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그랜저에 대한 두 가지 인식이 공존한다. ‘신형 그랜저(IG)’를 필두로 그랜저는 ‘젊은 차’를 표방하기 시작했지만 그랜저를 더 오랫동안 봐 왔던 이들은 여전히 장엄함의 그랜저다. 6세대 그랜저는 그래서, 어떤 이에게는 코끼리(또는 보아뱀)로, 어떤 이에게는 중절모로 보일 수 있다.
5세대 그랜저(HG)의 디자인이 풍성한 볼륨감을 중시했다면 신형 그랜저는 슬림하면서 날렵한 유선형에 초점을 맞췄다. 코끼리와 보아뱀의 이미지 차이는 신구 세대의 디자인 콘셉트와도 연결이 된다. ‘볼륨을 삼킨 유선형’은 ‘그랜저, 그랜저를 바꾸다’는 슬로건과도 맞아 떨어진다. 
미디어를 대상으로 하는 시승행사에는 가솔린 3.0 엔진을 얹은 익스클루시브 스페셜 모델이 동원 됐다. 차 가격만 3,850만 원이며 현대 스마트센스 패키지, 프리미어 인테리어 셀렉션, JBL 사운드 패키지, 헤드업 디스플레이, 파노라마 선루프를 갖춰 실제 구매가격은 4,505만 원에 이른다. 신형 그랜저는 가솔린 세타Ⅱ 개선 2.4 GDi, 가솔린 람다Ⅱ 개선 3.0 GDi, 디젤 R2.2 e-VGT, LPG 람다Ⅱ 3.0 LPi 등 4가지 엔진 라인업을 운용하는데 시승행사에 나온 차는 그 중 가장 상위에 속하는 모델이다. 
‘신형 그랜저’는 본격 출시에 앞서 3주간 사전예약을 받았다. 주문이 2만 7,000대가 몰려 현대차로 하여금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했다. 사전 예약자들을 대상으로 모델 별 분류를 했더니 가솔린 2.4가 42%, 가솔린 3.0이 31%, LPi 3.0이 19%, 디젤 2.2가 8%였다. 폭스바겐 발 디젤 게이트의 영향으로 디젤 주문이 의외로 적게 나왔다. 
사전 예약자들의 연령대별 분포 변화도 재미있다. 이전 세대인 그랜저 HG에 비해 30, 40대 소비자층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었다. HG의 경우 50대가 38%, 40대가 29%, 30대가 12%였지만 ‘신형 그랜저(IG)’는 50대가 33%, 40대가 32%, 30대가 16%였다. 주소비자층이 30, 40대로 내려오고 있다는 것은 현대자동차가 의도한 대로다. 
시승차는 서울 광진구를 빠져나와 서울춘천고속도로를 내달렸다. 람다Ⅱ 3.0리터 직분사 엔진이 뿜어내는 출력은 시원했다. 최고 출력 266마력, 최대토크 31.4kg.m의 스펙은 재주를 뽐내는데 주저함이 없다. 8단 자동변속기는 가감속의 자연스러움을 유지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젊은 감각은 배기음에서 절정을 이뤘다. 고속 구간에 접어들자 청량한 울음소리가 뒤쪽에서 들리기 시작한다. 차가 박차고 나간다는 느낌이 배가 됐다. 너무 조용해서 ‘스포츠 답지’ 못했던 ‘제네시스 G80 스포츠’ 보다 오히려 경쾌함이 앞선다. 
운전 모드별 움직임도 뚜렷하게 차별화가 됐다. 스포츠 모드와 에코 모드에서의 움직임이 확연하게 달라, 다이내믹한 운전을 즐기려는 이들에게 스포츠 모드가 어필할 영역이 커 보였다. 스마트 모드라는 게 신형 그랜저에 새로 생겼는데, 이 모드는 운전자의 성향에 따라 차가 응대를 해 주는 똑똑한 주행 모드다. 
풍절음은 단절 됐지만 엔진음은 살아 있었다. 제네시스 브랜드보다는 차급이 낮아야 하니, 억지로 다운그레이드 한 기색이 역력하다. 연출은 억지스러웠지만 운전자에게 다가오는 감성은 훨씬 인간적이다. 운전자의 심장은 엔진의 고동과 맥을 같이 할 때 더 자연스럽다. 적절히 새 들어오는 엔진 사운드는 적막함 보다 더 생동감 있었다. 
브레이킹과 스티어링도 젊어졌다. 브레이킹은 종전의 현대자동차 브레이크 특성과 많이 달랐다. 감속감이 뚜렷해 졌고 패드를 무는 느낌도 빡빡해졌다. 신형 그랜저는 부스터 사이즈를 전세대 대비 0.5인치 키웠고, 브레이크 페달비를 줄여 브레이크의 답력을 개선했다. 
핸들링은 눈에 띄게 우직해졌다. 고속에서 촐싹대지 않고 우직하게 방향을 잡아준다. 유격이 줄고 직결감이 강해졌다는 게 스티어링 휠에서 전해져 왔다. 급감속을 할 때도 우직함이 유지됐으면 좋았을 텐데 거기까지는 욕심이었다. 
엔진 rpm 1,500은 ‘신형 그랜저’ 평상시 맥박의 상한선이다. 웬만한 상황에서는 2,000을 넘길 일도 없었다.  rpm이 4,000을 넘어 6,000을 향해 달려가면 커다란 반전이 일어난다. 배기음은 스포츠 카 흉내를 내고 튕겨나갈 듯한 가속을 낸다. 
연비도 나쁘지 않았다. 다소 험하게 운전했을 때 9.3km/ℓ 정도가 나왔고, 점잖게 운전하니 11km/ℓ가 족히 나왔다. 신형 그랜저 가솔린 3.0모델의 공인 연비는 복합연비 10.1km/ℓ(18인치 타이어, 구연비 기준 10.5km/ℓ)로 4등급이다. 
개인사업을 하거나 대기업 고액 연봉자가 아니라면 월급쟁이가 착실하게 돈을 모아 살 수 있는 ‘자가용’의 최고점은 예나 지금이나 ‘그랜저’다. 예전, 웅장했던 이름이 이제는 젊어져서 새로운 매력을 뽐낸다. ‘젊어진 어른들의 장난감’ 구매 리스트에 그랜저의 이름을 다시 만난 것 같아 적잖이 반가왔다. /100c@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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