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초점]'도깨비’ 해피 또는 새드엔딩? 결국 갓은숙 맘대로..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7.01.16 15: 45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 tvN 금토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神 도깨비’(이하 ‘도깨비’)가 종영까지 3회를 남기고 숨고르기에 들어갔는데 시청자들의 흥분은 절정에 이르고 있다. 지난 13일 13회에서 김신(공유)이 드디어 지은탁(김고은)의 손을 빌어 자신의 가슴에 박힌 ‘불의 검’을 빼낸 후 간신이었고 현재 악귀인 박중헌(김병철)을 처치함으로써 900년 간 이어온 원한을 풀었지만 그 역시 먼지가 돼 사라졌다.
그러자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가 그동안 깔아놓은 복선과 수수께끼 등이 끝에 어떻게 풀어질지 궁금해 하면서도 해피엔딩이 될지, 아니면 김은숙 작가가 처음으로 새드엔딩을 만들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일단 제작진이 보다 더 탄탄한 완성도를 위한 후반작업에 시간을 벌고자 14일 14회를 내보내지 않고 ‘도깨비 스페셜: 모든 날이 좋았다’를 방송한 것은 아주 적절했다. 오는 20일 14회를, 21일 15회와 16회를 방송할 예정이다.

시청자들은 안타깝거나 아쉬워하면서도 전혀 서운해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작진의 노고와 친절한 배려에 박수갈채를 보낼 따름이다. ‘결방’이란 단어는 비난과 겹쳐지기 마련이었는데 ‘도깨비’는 예외다. 그만큼 시청자의 애정과 기대가 크고 제작진의 순수한 고생이 인정받는다는 증거다.
드라마는 사전제작이 아닌 이상 영화와 달리 방송해가면서 시청자의 반응에 따라 스토리와 결론을 수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작가 입장에선 엄청난 스트레스이기도 하다. 이미 다 찍어놓고 극장에 개봉된 영화에 대한 책임은 결국 감독에게 돌아가는 데 반해 드라마는 작가의 몫이기 때문이다.
해피엔딩의 가능성이 크다. 13회에서 분명히 신은 죽었다. 하지만 작가는 미리 복선을 깔아 놨다. 신은 유독 은탁의 미래만 못 본다. 첫 만남에서 “어떻게 된 애가 10년, 20년이 안 보여?”라고 푸념했다. 그러나 10년 뒤 은탁이 케나다 퀘벡의 단골 레스토랑에 앉아있는 모습은 봤다. 은탁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을 “대표님”이라고 불렀다.
유덕화(육성재)의 몸에 잠깐 들어왔다 떠나간 신(神)과 삼신할매(이엘)가 키를 쥐고 있다. 두 사람에 의해 신이 환생할 수 있다. 그런데 신을 잃은 은탁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괴로워하자 저승사자(이동욱)가 그녀의 기억을 지웠을 수 있다.
유신우 회장(김성겸)은 김 비서(조우진)에게 “비와 함께 푸른빛으로 오실 김 자, 신 자 쓰시는 분이 내가 남긴 재산의 주인이시다. 모두 드려라”라고 유언을 남긴 바 있다. 누군가(혹은 전생과 똑같은)의 몸을 빌려 환생한 신을 알아본, 이제 CEO가 된 김 비서는 그에게 회사를 넘길 것이고 자신의 자리도 덕화에게 내줄 것이다.
은탁은 졸업 후 그 회사에 입사해 자연스럽게 환생한 신과 사랑에 빠진 것을 상상할 수 있다.
13회에서 완전하게 헤어진 사자와 김선(유인나)도 다시 만날 가능성이 크다. 그들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박중헌의 겁박에 의해 신 남매와 그 식솔들을 모두 죽인 왕여(김민재, 이동욱)의 나약한 판단착오다.
현생에서 그는 그 잘못을 뼈에 사무치게 뉘우치고, 또 아파하고 있다. 아마 선은 신이 사자를 용서한 뒤 박중헌을 죽이고 자신도 무로 돌아간 것을 알고 사자와 화해했을 것이다. 그리고 사자는 전생에 이들 남매에게 못 다한 것을 이제 다 갚겠다고 헌신적으로 선을 사랑할 것이다.
시청자를 처절하게 울리는 최악의 새드엔딩 시나리오는 안방극장이란 플랫폼과 안 맞는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것이다.
즉, 신은 그렇게 또 다른 세계에서 편하게 지내거나 신(神)을 만나 신(神이) 됐을 수도 있다.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지 못했고, 황후(선)와도 사랑을 이루지 못한 사자 역시 전생에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자신을 죽인 뒤 신(神)에게 면죄부를 받아 신을 만나 재미있게 살며 현생의 선을 응원해줄 수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나 우리나라 설화의 구조다. 이승에 남은 은탁과 선은 그렇게 '잘 먹고 잘살았다'는.
결론이 어떻게 나오든 이 드라마는 서사와 멜로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것만큼은 인정받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마땅하다. 매 장면 색깔과 미장센 하나하나가 제작진의 노고와 아이디어가 깃든 피와 땀의 결실이란 건 열화와 같은 시청자들의 반응이 증명한다.
물론 이응복 PD의 미적 감각을 바탕으로 한 연출력도 뛰어났지만 역시 김 작가의 필력이 모든 것을 시작하고 완성했다.
매 시퀀스를 그냥 생각 없이 허투루 만드는 게 아니었다. 벌써부터 시청자들은 ‘장풍소년’이 삼신할매와 살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삼신할매는 주인공들의 탄생과 현재에 영향을 끼쳤듯 미래 역시 개입할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은탁의 시퀀스에 소년을 참여시키는 것 역시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라진 신이 어떻게 될지는 신(神)이 신과 사자에게 남긴 말에 있다. 그는 “神은 그저 질문하는 자일 뿐. 운명은 내가 던지는 질문이다. 답은 그대들이 찾아라”라고 했다. 신과 은탁, 사자와 선의 운명은 900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이미 정해졌거나 모질게 이어져왔다.
그게 하루아침에 끝나진 않을 것이고, 그걸 지혜롭게 해피엔딩으로 만드는 답은 바로 당사자들의 정신세계와 행동에 있는 것이다. 전생에 왕여와 선이 벚꽃을, 현재에 신과 은탁이 퀘벡의 단풍잎을 각각 확보한 점도 뭔가 복선이 있을 것을 짐작케 한다.
더불어 퀘벡에서 은탁이 부친 편지가 미래에 어떻게 작용할지도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김 작가의 디테일이다.
자신의 과거를 깨달은 사자는 “사랑하는 황후도, 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전장을 누빈 장군도, 내 백성들마저도 지키지 못했다”고 후회하며 그들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음 역시 아쉬워한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왕을 사랑했고 존경했다. 정작 그만 모를 정도로 가장 어리석었던 것이다.
이는 선왕인 이복형이 죽자, 어린 나이에 얼떨결에 왕좌에 앉은 그의 부족한 정치력과 정통성 때문이었다. 또한 그런 나약한 바탕이 신의 하늘을 찌를 듯한 인기를 시샘하고 그에게 왕좌를 빼앗길까 불안하게 만들기도 했다. 물론 이는 모두 왕위를 노려온 박중헌의 계략이었다.
이런 구도의 서사는 중국 서사극에서 매우 흔하다. 여기에 ‘하이랜더’ ‘드라큘라’ ‘반 헬싱’ ‘맨 프럼 어스’ ‘라스트 위치 헌터’ 등 서양의 판타지 액션과 도깨비 삼신할매 저승사자 등 한국의 설화 소재를 뒤섞어 판타지 서사멜로의 종합선물세트 하나를 완성해낸 것이다.
네 주인공의 ‘1000년의 사랑’은 굳이 고려가 아니더라도 우리 민족의 역사의 일부분이자 다이제스트이기도 하다. 개국과 정복 혹은 굴욕적인 직간접지배 등의 질곡의 역사를 지나온 지도자와 정치인 혹은 무신들의 흥망성쇠와 처절한 사랑얘기들을 비교적 동화스럽게 포장했다.
서사와 멜로의 사이를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철학은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이다. 신은 억울하게 왕여의 칼을 가슴에 꽂은 채 죽었지만 백성들의 지지가 그 검이 불멸의 매개체가 되게 만들었다. 오직 도깨비신부의 손에 의해서만 그 칼을 뺄 수 있고, 그럼으로써 그는 저주의 영생을 끝내고 소멸할 수 있는 것이다.
‘하이랜더’ 시리즈의 주인공 코너는 여자들과 만나는 게 두렵다. 왜냐면 사랑하던 여자가 추하게 늙고 그렇게 죽어서 이별하는 것을 거듭해온 게 괴롭기 때문이다. ‘트와일라잇’ 시리즈 역시 마찬가지. 인간 벨라를 사랑하는 흡혈귀 에드워드는 그녀의 사랑을 자꾸 밀어내려 애쓴다. 벨라가 자신 앞에서 늙어갈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자신의 목을 물어달라는 벨라의 애원을 거절하지 못한다.
‘맨 프럼 어스’의 중년의 교수 존은 한 젊은 여자의 사랑을 애써 거부한다. 그리고 동료교수들에게 자신이 1만4000년 동안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그 말에 화를 내던 한 노교수는 놀랍게도 존의 아들이었다.
어린아이들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반드시 늙고 죽을 것을 알면서도. 어른들은 죽음을 예상하면서도 어떻게든 그것과 멀어지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신화나 영화 속 불로영생의 초월적 존재들은 그게 얼마나 괴로운 형벌인지 알고 남모를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간다.
신이 은탁의 존재를 안 뒤 기뻐하지만 막상 칼자루를 쥔 은탁을 밀치는 것은 역시 죽음과 안식을 하나로 인정하기 싫은 인간의 속성 때문이다. ‘도깨비’란 제목과 내용이, 그리고 신이 던지는 ‘인간이란 존재의 운명’에 대한 질문이다. 은탁은 촛불(혹은 라이터불)을 켰다 끔으로써 신을 소환한다. 촛불은 탄생과 희망을 의미한다.
PS; 그동안 ‘도깨비’의 인기에 대한 분석 기사는 참으로 많았지만 대동소이하다. 한 가지 빠진 게 있다. 바로 젊은이들의 판타지를 제대로 관통한 '안정'이란 설정이다. 영화 ‘베티 블루 37.2’에서 서른 살의 무명작가 조그는 관능적인 20대 여자 베티와 금세 사랑에 빠진다.
허나 그들은 가난하다. 무기력한 그들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나이 많은 친구 부부의 카페에서 ‘알바’를 하면서 그들의 집에 의탁해 합숙하던 때다. 그들은 영업이 끝나면 매일같이 데킬라와 탄산수 폭탄주를 돌려 마시며 파티를 즐긴다. 안정된 직장과 편안한 숙소와 파티라니!
‘도깨비’의 주인공들이 그렇다. 신은 취미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재벌 위에 군림하는 재벌이고, 선은 치킨집 오너다. 은탁은 그런 신의 신부이자 당당한 여대생이고, 사자는 평생직장이 보장된 샐러리맨이다. 각종 보고서 작성이 귀찮긴 하지만.
“나 술 못 마셔. 취하니까”라던 선은 사자 때문에 싱숭생숭하자 “알바생, 우리 술 마시자. 소주? 맥주?”라고 음주를 제안한다. 신은 술친구 사자와 연인 은탁과 화려한 집에 함께 산다. 이보다 더 행복한 구도가 있을까?/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도깨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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