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 은퇴' KBO리그의 새로운 문화가 될 수 있을까
OSEN 조형래 기자
발행 2017.01.18 06: 02

박수를 받으며 떠나는 자들의 뒷모습을 아름답게 배웅해줄 수 있다면, 이보다 아름다운 이별은 없을 것이다. '예고 은퇴'를 통해 올시즌을 끝으로 야구 팬들과의 작별을 선언한 두 베테랑 이승엽(41·삼성)과 이호준(41·NC)이 KBO리그의 새로운 문화 형성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을까.
그동안 한국야구는 베테랑 선수들에 '은퇴'라는 단어는 그리 달갑지 않게 다가왔다. 베테랑 선수들이 마지못해, 등 떠밀려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가운데 구단과의 갈등은 언제나 잔존해 있었다. 리그에서 족적을 남긴 '대스타'도 예외는 아니었다. 팬들은 한 시대를 풍미했고, 자신과의 동 시대를 보낸 '스타'와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나누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지난 시즌만 끝나고 돌이켜봐도 '적토마' 이병규, '오버맨' 홍성흔 등 KBO리그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수들이 팬들에게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승엽과 이호준이 올 시즌 이후 은퇴를 예고하면서 '은퇴'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이른바 '예고 은퇴'문화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승엽은 이미 지난 2016시즌을 앞두고 삼성과 2년 36억원에 FA 계약을 맺으면서 선수 생활의 기한을 2년으로 못 박았다. 이승엽의 은퇴는 2년 전에 이미 예고된 상황이었다. 이승엽은 은퇴를 선언한 상황에서도 지난해 142경기에 나서 타율 3할3리 27홈런 118타점 OPS 8할9푼8리라는 전성기 못지 않은 성적을 남겼다. 은퇴 선언이 무색할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이에 일각에서는 이승엽에 은퇴를 재고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만큼 팬들은 이승엽을 떠나보내기 싫은 것이다. 하지만 이승엽은 은퇴에 대한 생각을 거두지 않았고, 마지막 시즌을 그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이호준은 이승엽의 '예고 은퇴'에 영향을 받은 케이스다. 이호준은 지난 16일 구단 신년회 자리에서 은퇴를 발표했다. 일부 선수들은 이날 이호준의 은퇴 발표를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호준 스스로는 이미 결심을 굳힌 상태였다. 특히 이승엽과의 '하와이 회동'이 이호준의 결심에 영향을 줬다. 이호준은 "박수 받을 때 떠나고 싶었고, 이승엽과 하와이에서 우연치 않게 만나서 얘기를 하며 지금 좋을 때 떠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호준 역시 지난해 119경기 타율 2할9푼8리 20홈런 87타점 OPS 9할2리로 농익은 기량을 과시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승엽과 이호준 모두 떠나 보내기 아쉬울만큼 전성기 못지 않은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더 이상 욕심 부리지 않고 스스로에게 시한부 선고를 내렸다. 과거의 선배들이 은퇴를 결정할 시기에 쓸쓸하게 돌아서는 것과는 다른, 당당한 뒷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결심이기도 했다.
결국 KBO리그 역사에 한 페이지를 남길 이들에 대한 '아름다운 이별'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이자, 후대의 본보기로 자리잡을 수 있게끔 이승엽과 이호준이 선도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소속팀의 홈 구장에서 뿐만 아니라, KBO리그 전 구단이 함께 참여해 '전설'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될 수 있다. 이미 KBO리그 자체적으로 '은퇴 투어'를 구상 중이다. 이호준도 이승엽만큼은 아니겠지만 행사를 기획할 가능성도 있다.
이미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일찌감치 '아름다운 이별'에 대한 인식을 정립해 가고 있다. 마리아노 리베라, 데릭 지터(이상 뉴욕 양키스), 데이비드 오티즈(보스턴 레드삭스)는 미리 은퇴를 예고했고, 시즌 말미에는 원정 경기마다 '은퇴 투어'를 돌았다. 이들을 맞이하는 홈 팀들은 선물을 증정하며 그동안의 추억을 되새겼다. 서로를 할퀴었던 라이벌 팀들도 이날 만큼은 떠나는 이들에게 박수 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또한, KBO리그가 단순한 '야구 리그'가 아닌 문화생활로 자리잡고 있는 현 상황에서, '예고 은퇴'는 KBO리그의 또 다른 마케팅적 요소가 될 수도 있다. 해당 선수와 리그의 발자취를 되짚어보고, 은퇴를 하나의 스토리로 승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연 '예고 은퇴'라는 문화가 KBO리그에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마무리'에 대한 로망을 꿈꾸고 있는 KBO리그다. /jhrae@osen.co.kr
[사진 위] 이승엽(왼쪽)-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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