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강혜정 "'동막골' 전성기로부터 10년..왜 고민 없겠나"
OSEN 이소담 기자
발행 2017.02.23 08: 07

 지난 2003년 개봉한 영화 ‘올드보이’(감독 박찬욱)에서 배우 강혜정을 처음 봤을 때 충격은 아직도 고스란히 울림으로 남아있다. 이는 충격적인 전개 때문만은 아니었다. 많은 영화팬들은 강혜정이라는 배우가 가진 독보적인 분위기를 사랑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후 그녀는 ‘웰컴 투 동막골’을 통해 다시 한 번 큰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겠다. 6·25 전쟁을 그리는 작품에는 이전에도 지금도 어느 정도 정형화된 이미지가 있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달랐다. 유독 개성이 넘쳤던 그녀의 연기와 분위기도 그랬다. 전쟁의 폭탄이 옥수수를 튀겨 팝콘을 만들고 눈처럼 쏟아지는 그 장면의 감동처럼 강혜정은 그렇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10년이 흐른 지금도 그 아우라가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있는 까닭에 세월의 흐름을 망각하고 계속해서 잔상을 쫓았는지도 모르겠다. 되레 당사자는 흘러가는 시간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또 다른 숙제를 부여받았다며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거품을 걷어내고 배우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 더 재밌지 않겠냐는 연기 자체에 대한 열정은 10년이 지나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모습이다.

“누구나 화려한 시절 좋았던 시절은 있잖아요. 그게 비단 저희와 같은 직업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죠. 꾸준히 영롱한 빛을 발하는 분은 굉장히 소수라고 생각해요. 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요. 지금과 같은 장수 시대에 이제 40대도 안 된 제가 아직은 못했다고 하기엔 앞으로 더 많은 기회가 있지 않을까요. 거품이 좀 많았던 시대도 살아봤고 아주 활발하게 발달됐던 시절도 있었고 시대는 변한다고 생각해요. 그에 따라 배우들의 입지도 변한다고 생각하고요.”
동막골에서 머리에 꽃을 달았던 그 여자는 이제 한 남자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로서도 살아가고 있다. 연기하는 사람으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관계 속에서 주어진 새로운 역할이 그녀에게는 또 다른 삶의 장을 열어줬다.
“20대 때의 ‘멋진 배우로 살 것이다’는 목표의 장은 지나갔죠. 지금은 한 사람의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된 것도 굉장히 중요한 장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아내와 엄마로 살아가는 것과 20대 때 꿔왔던 꿈을 지속해 나가는 것까지 숙제가 하나씩 추가되고 있죠. 특별히 화려했던 시절이 아쉬웠다거나 돌아가고 싶다거나 그렇지는 않아요. 다만 새로운 걸 꿈꾸는 거예요. 많이 바뀌었으니깐요.”
“저희 직업이 어떻게 한다고 해서 풀리는 것도 아니고 저 역시 변화무쌍한 삶을 살고 있잖아요. 다만 거품이 좀 빠졌으면 좋겠어요. 모두 홀가분한 마음이었으면 하는 거죠. 사실 2000년대부터 배우들이 갖고 있는 화려한 위치에 어느 정도 거품이 있지 않나요? 좀 더 자유로웠으면 좋겠어요. 그때 당시에는 주연하면 주연만 해야 한다는 게 있었는데 배우로서 할 수 있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게 더 재밌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과거만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오늘도, 미래도 없다는 말이 맞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강혜정은 오늘을 살고 또 미래를 위해 사는 그야말로 ‘살아 숨 쉬고 있는’ 배우다.
“전성기로부터 10년이 지났죠. 왜 생각을 안 하겠어요. 그런데 돌아가신 레아 공주님(‘스카워즈’의 스타 할리우드 배우 캐리 피셔)이 어쩌다 굉장한 스타덤에 오르게 되고 그러면서 살면서 오만 관심을 받게 된 거예요. 그녀가 많이 힘들었나 봐요. 그녀에 대한 에피소드를 묶어놓은 글을 읽었는데 할리우드 여배우 중 인터뷰 중 F를 가장 많이 쓴 배우라고 하더군요. 하하. 그 순간 일을 안 하다가 작가로 활동했죠. 여러 가지 재능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연기를 조금씩 다시 시작하셨단 말이죠? 얼마 전에 천국으로 가셨는데 그분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만약 그녀의 인생에 힘들었던 20대 초반 잘나갔던 게 얼마나 차지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 되게 많은 결정을 짓는 포인트가 될 수 있었어도 인생을 통틀만한 영역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소위 잘나갔던 시절이 있다 보면 잠시 쉬어주는 시절이 있는 거죠. 빛이 절전이 되는 시절을 거쳐서 다시금 들끓듯이 화력이 타오르면 언젠가는 또 빛나지 않을까요? 굳이 빛나지 않아도 되고요. 잔잔한 반딧불 마냥요.” / besodam@osen.co.kr
[사진] 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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