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 취중한담] 이병헌이 연기로 승부하는 법
OSEN 박진영 기자
발행 2017.02.23 10: 59

[OSEN=유진모 칼럼] 김민희가 18일(현지 시각) 독일 베를린 베를리날레 팔라스트에서 폐막된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밤의 해변에서 혼자’(홍상수 감독)로 은곰상(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로써 베니스국제영화제의 강수연(‘씨받이’), 칸국제영화제의 전도연(‘밀양’)에 이어 세계 3대 국제영화제를 한국 여배우가 모두 정복했다.
그러나 국내 시선은 싸늘하다. 김민희는 이 영화에서 유부남 영화감독을 사랑한 여배우 영희 역할로 열연했고, 현실에서 그녀는 역시 유부남인 홍 감독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대중으로부터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난해 꽤 많은 제작비를 들여 상업성과 작품성을 모두 만족시키는 몇 안 되는 감독 중 한 명인 박찬욱의 ‘아가씨’로 주목을 받았지만 개봉 직후 홍 감독과의 관계가 알려진 뒤 사실상 스스로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번에도 여론을 의식한 듯 수상소감에서 향후 독립영화 위주로 활동하겠다는 뉘앙스의 코멘트를 냈다.

이병헌은 2014년 이른바 ‘50억 원 협박녀 사건’으로 범법자들로부터 큰 피해를 당하고도 톱스타라는 이유로 이미지 훼손을 받고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았다. 당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협녀, 칼의 기억’(이상 롯데엔터테인먼트 배급)과 ‘내부자들’(쇼박스 배급)의 촬영이 이미 끝난 상태. 쇼박스는  결국 그해 11월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내부자들'을 개봉했는데 의외의 놀라운 흥행결과를 맛봤다.
이를 계기로 이병헌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안개 걷히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가 불행 중 다행으로 열혈검사 우장훈(조승우)이 아니라 정치 경제 연예산업 등 전 분야에 걸쳐 악행을 일삼는 악랄하고 비열한 폭력조직의 두목 안상구 역을 맡은 게 큰 영향력을 끼쳤고, 신들린 듯한 연기력이 매조졌다. 당시 나온 유행어가 ‘사람은 미워도 연기는 미워할 수 없다’였다.
물론 그 전에 이병헌이 수시로 대중 앞에 고개를 조아린 사과가 튼튼한 발판이 됐다. 오히려 가장 큰 피해자인 이민정까지 마치 죄인인 듯 잠행을 했다. 이런 모든 여건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무난하게 이병헌에게 ‘면죄부’가 발부된 것이었다. 대중이 침을 뱉고 돌을 던져도 피하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려 애썼고 이후에도 그걸 지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 게 주효했다.
법적인 잣대를 떠나 도덕적인 기준으로 간통죄도 폐지된 마당에 김민희의 ‘혐의’가 이병헌보다 훨씬 더 괘씸하다고 가늠할 잣대는 불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하를 받아야할 수상소식에 대중이 불쾌함과 짜증으로만 반응한다. 바로 소통의 노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예술가와 연예인의 차이점은 돈이다. 예술가는 주체할 수 없는 독자적인 창작욕구를 마구 쏟아붓다보면 어찌어찌해서 돈이 생기지만 연예인은 애초부터 그 능력을 돈을 버는 데 집중한다. 빈센트 반 고흐는 평생 단 한 점밖에 그림이 팔리지 않아 동생 테오에게 기대 살다가 그에게 빚이라도 갚을 기회를 주고자 권총으로 자살했지만 이듬해 테오가 죽는 바람에 마지막 희망마저도 이룰 수 없었다. 생전에 그림으로 부를 쌓은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게 연예인과 예술가의 다른 점이다.
예술가든 연예인이든 그들의 명성과 부를 보장하는 것은 바로 대중의 지지다. 특히 애초부터 인기와 부를 추구하는 연예인의 입장에선 전문가보다 더 대중의 최면과 신봉이 절대적이다. 이는 오늘날 연예인이 거의 공인화된 사조와 연관이 깊다. 정치인이나 공무원, 재계의 큰손도 아닌 연예인이 공인으로 굳어진 것은 그만큼 대중의 사랑으로 인해 얻는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이 20세기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어마어마해졌기 때문이다.
이병헌은 ‘내부자들’에 이어 지난해 ‘마스터’로도 승승장구했다. 이번 주 개봉되는 ‘싱글라이더’ 역시 ‘이병헌의, 이병헌에 의한, 이병헌을 위한’ 영화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대중의 그의 연기력에 대한 신뢰도는 매우 굳건하다. 그가 대중매체를 통해 ‘내 연기인생에 몇 안 되는 최고의 시나리오’라고 극찬하며, 그래서 부분투자를 했다고 공공연하게 떠드는 점 역시 이 영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호감을 상승시키는 요인이다.
이병헌의 거듭된 사과가 진심이건 연기건 대중은 알 수 없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대중이 특정 연예인에게 마취되는 것처럼 다수는 이병헌의 ‘폴더 사과’에 자연스럽게 무장을 해제한 뒤 백지상태에서 영화를 보기에 ‘도덕적인 면에서의 이병헌’을 보는 게 아니라 작품 속 그의 캐릭터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김민희와 이병헌이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다. 김민희는 홍 감독과의 열애설이 보도된 초기 적극적으로 대중과 소통하려하지 않고 오히려 눈과 입과 귀를 닫고 자기만의 에고 안으로 들어가는 모양새였다. 향후 예술영화만 하겠다는 계획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물론 배우나 감독도 어떤 면에선 예술가일 수 있다. 어느 분야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장인의 경지에 올라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가정신까지 갖춘다면 예술가라고 디지털 이데올로기는 인식한다. 기획사와 일부 '광팬'이 연예인이라면 으레 ‘아티스트'라고 떠받드는 바람에 그 용어 자체의 희소가치가 엄청나게 윤색되긴 했지만 극소수의 장인에겐 그런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다.
김민희가 세계 3대 영화제 중 한 개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정도면 어느 정도 예술성을 인정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이 3개 영화제의 역대 수상자 모두에게 예술가란 칭호를 붙이기는 쉽지 않다. 연예인은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와 달리 대중과 가장 가까이서 소통하고 직접적으로 그들을 위무해줘야 하는 직업이란 점에선 예술가보단 ‘딴따라’쪽에 더 가깝다고 보는 게 현실적이다.
지위고하, 빈부격차, 미색박색, 남녀노소를 떠나 모든 사람들에겐 동등한 행복의 권리가 있다. 김민희와 홍 감독이 서로 사랑한다면 그건 죄가 아니다. 다만 홍 감독이 훨씬 일찍 태어나 결혼했고, 김민희가 나중에 태어난 뒤 서로 만난 시차가 죄다. 그러나 간과해선 안 될 게 있다. 바로 두 사람의 사랑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자, 즉 홍 감독의 ‘전’ 가족이다.
사랑이란 감정은 시기조절이 불가능하다. ‘이혼한 뒤 사랑하겠다’는 의지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김민희를 째려보는 이유는 그녀와 홍 감독이 홍 감독의 ‘전’ 가족의 아픔에 대해 충분히 사과하거나 그들이 나을 수 있게끔 배려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못 봤기 때문이다.
이병헌은 사건의 피해자다. 따라서 그가 가해자에게 사과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스타라는 지위를 누리고 그에 따른 큰돈을 만질 수 있는 근간이 되는 대중의 분노에는 용서를 구할 필요가 지당하고 합당했다. 그런 맥락에서 김민희는 사과해야 할 대상이 이병헌보다 더 많았기에 이래저래 불리한 상황이다. 그게 힘들다고 ‘예술영화만 하겠다’는 식의 아집은 예술가로선 그럴듯할지 몰라도 여우주연상 수상자로선 그렇게 적절하다고 보기 쉽지 않은 근거는 사람 사는 세상풍토와 연예인이란 직업이다. /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싱글라이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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