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레터] '착한' 엄기준도 보고싶다
OSEN 최나영 기자
발행 2017.03.09 09: 20

'악역에만 가두긴 아까워'
배우 엄기준이 악역으로 맹활약 중이다.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에서 쌍둥이 형을 죽이고 그의 행세를 하고 있는 살인마 차민호 역을 맡아 열연 중인 엄기준은 요즘 안방극장에서 시청자들의 뒷목을 잡게 하는 일인자다. 물론 마지막에는 권선징악으로 시원한 벌을 받게 되겠지만 말이다.
이런 엄기준은 언제부터 악역을 이리 잘했을까. 우선 차갑게도 보이는 스마트한 얼굴의 느낌이 악역에 매력적으로 녹아드는 것이 사실이다. 8할은 눈빛. 안경 너머의 눈빛에는 속을 알 수 없는 강렬함이 있고 그래서 위험해보인다. 다음은 웃음과 말투. 씩 하고 입술을 움직이며 웃는 제스처를 취할 때는 어딘가 서늘하고, 태연하고 차분한 말투에서는 반대로 악랄함과 비열함이 묻어난다. 

어느덧 엄기준이 악역의 오리지널 타입처럼 느껴질 정도다.
엄기준이 처음 악역의 서막을 연 것은 2010년 개봉한 영화 '파괴된 사나이'였다. 엄기준은 첫 스크린 도전작인 이 영화에서도 냉혈한 살인마로 분했다. 뮤지컬 무대와 브라운관을 통해 깔끔하고 지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며 한창 인기를 얻고 있던 엄기준이기에 변신은 새로웠다. 
이 살인마는 '고가의 음악 시스템을 수집하는 취미'란 '엣지'를 지녔는데 이 점에서 엄기준이 참 잘 어울렸다. 그가 갖고 있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간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가의 음악 장비와 가구들로 둘러싸인 리스닝룸에서 올누드로 음악을 듣는 장면은 영화가 한껏 힘을 준 장면 중 하나이다.
영화가 큰 흥행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 중에는 김명민보다 엄기준을 더 기억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후 악역은 계속됐다. 이제는 드라마에서 그 악역 본색을 발휘했는데 '유령', '골든크로스', '복면검사' 등에서 악행을 일삼아 분노를 일으키며 좀 더 넓은 층의 남녀노소 시청자들에게 각인됐다. 물론 악역만 연기한 것은 아니나 나쁜 역할이 인상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들이 사는 세상' 속에서 그가 연기했던 속물에 자신밖에 모르는 개인주의자 캐릭터도 악역은 아니었지만 얄미운 역할이었다. 그러면서도 특유의 개성으로 매력을 잃지 않았는데, 그가 쌓은 '품격있는 악역' 이미지는 확실히 존중받을 만 하다.
그러나 '만약 이 다음에도 악역이라면?'란 물음이 간다면 다소 아쉬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의 악역이 점점 진화해 그야말로 '악역의 끝'을 보여줄 수도 있겠지만, 연기자로서 그가 가진 다양한 얼굴이 아까운 시점이다.
어느덧 '악역 전문'이라 불리는 엄기준을 두고 '악역을 점점 더 잘해 더욱 악역만 맡게 되는 것 같다'란 의견도 있다. 혹자는 "악역이 아무래도 많이 들어오니 그 중에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엄기준 역시 이에 어느 정도 동의하며 '다른 역할'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던 바다. 그는 방송에서 "솔직히 이제 악역을 그만 하고 싶다. 이제는 망가지는 역할을 하고 싶다"라며 TV 데뷔를 시트콤 ‘김치 치즈 스마일’로 했음을 언급했다. 
'평상시 (거의)아무도 할 수 없는 걸 하는' 역할을 해 온 그가 이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역할도 맡았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상찌질이'나 '귀요미'같은. 착한 얼굴의 폭발력이 분명 있을 것이다. / nyc@osen.co.kr 
[사진] SBS, '파괴된 사나이'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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